"평택에바다농아원 청각 언어장애인들 입소기록 등 복원돼야"

임영균 | 기사입력 2022/12/04 [16:30]

"평택에바다농아원 청각 언어장애인들 입소기록 등 복원돼야"

임영균 | 입력 : 2022/12/04 [16:30]

 

평택에바다농아인시설(현 에바다학교) 졸업생인 청각·언어장애인들이 사라진 자신들의 학력을 인정해달라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평택에바다(농아원·농아학교)대책위는 1일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평택에바다학교뿐만 아니라 평택시, 평택교육청은 청각·언어장애인들의 학적 기록 복원에 노력해달라"고 했다. 

 

대책위 대변인이자 광주 도가니 사건을 사회에 알리는 역할을 한 이승원 목사는 "에바다학교를 졸업한 청각·언어장애인의 생활기록부가 필요한 상황에서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에바다학교 출신 A씨는 직장에서 다쳐 산재처리 신청 중 의사에게서 치료 기간 연장을 위해서는 학적 기록이 담긴 문서가 필요하다고 하여 학교를 찾았으나 서류를 챙길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 소식을 알게 된 이승원 목사가 학교를 찾아가 항의했지만 '당시 입소자와 미인가 학교 자료는 전 법인 임원들이 가져갔으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듣게 된다.

 

이승원 목사는 "누가 어떤 목적으로 개인정보와 생활기록 등의 자료를 빼돌리거나 훼손했는지 모르지만 이를 손 놓고 있던 감독하는 시나 시설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학생 학적 기록을 훼손시켰다고 의심되는 B씨에게 연락했으나 닿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 목사는 "시설과 학교, 주무관청인 평택시청과 교육청은 어떻게 해서든 입소기록과 학적 기록을 복원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지난 1년여간 평택시가 1970년경 두 개의 고아원을 인가해주며 예산 지원을 했고, 고아원 한 곳이 운영난에 처하자 이를 병합하여 현재의 에바다농아원으로 운영토록 하면서 관리·감독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또 "고아원 원생들에게 미인가 상태에서 교육을 했더라도 관리감독자인 평택시나 평택교육청이 이들의 기록을 보존했어야 한다"고 짚었다. 

 

이 목사는 "대책위는 A씨가 전달한 증거 사진을 평택시와 교육청에 제출했지만 현 법인은 계속해서 '미인가 교육을 시킨 사실이 없다'고 한다. 시, 교육청 또한 법인의 답변만 대책위에 전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과거 광주 도가니 사건 때에도 학교에서 공부한 내용을 증거로 학생들이 졸업장을 받게 됐다. 평택교육청에도 같은 내용을 요구하는데 증거가 없고, 자료를 만들 수 없다고 하니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A씨와 같은 기간 에바다 시설에 있던 C씨는 수어를 통해 "학교에서 수어를 배웠다. 사회에 나와 결혼한 후 제 학적 기록 등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너무 충격 받았다"고 했다. 

 

'학적 기록이 없을 경우 어떤 피해가 있느냐'는 질문에 이승원 목사는 "이들은 취업 등에 필요한 학력 등을 기재할 수 없어 3D 업종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고 전하고 "자녀들에게도 부모인 자신이 어떤 학교를 다녔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덧붙여 평택에바다(농아원·농아학교)대책위는 진상규명을 통해 사라지거나 훼손된 것으로 보이는 청각 언어장애인들의 학적 기록과 입소기록 등이 복원되길 바란다며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계속해서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밝혔다. 

 

평택시 관계자는 "대책위 민원에 대해 법률자문을 받아 답변 드렸고 옴부즈만을 통해서 에바다측 법인 쪽과 자리를 마련하여 문제 해결에 노력한 바 있다"고 했다.

 

다만 "행정적인 업무를 지원하는 곳이지 학력 인정은 교육청에서 해야 하는 부분이다. 에바다는 법인이 많이 바뀌었고 학력 인정이 될 만한 자료들이 있는지 검토해달라고 했는데 30~40년 전이다 보니 관련 자료들을 전 법인으로부터 받지 못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평택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학교에서는 학적이 없는 게 아니라 학교에 다닌 적 없다고 하더라, 시기적으로도 이 학교가 1986년에 개교했는데, 대변인의 주장으로 보면 64년생인 피해자가 개교 당시에 22세 정도이신데, 그 당시 학교에 입학한 게 맞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고 했다.

 

이어 "정해진 규정이 있기에 법령을 위반하면서까지 학적 인정을 할 수는 없는 부분이지만 최대한 이 문제를 들여다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학적 기록부 등이 남아 있지 않게 된 혼선이 빚어진 것은 1996년 에바다 사태와 관련이 있다. 

 

에바다 총동문회는 인터넷언론인연대 취재팀과 취재에서 "에바다학교 A선생이 1996년경 농아원에서 불만 있는 아동들을 포섭하여 에바다재단 이사들을 퇴출시키려는 음모를 하여 자기들이 이 재단을 장악하려는 사태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전에 미리 음모한 대로 9월 27일 새벽 학생들이 복면하고 보모를 세탁장에 감금하고 사전에 준비한 쇠파이프 몽둥이 각목을 들고 폭동을 일으켰다"면서 "또한 사전에 불만 있는 농아원 직원 교사들과 음모하여 농아원 서류 일체를 빼돌려 부정문제를 고발하여 농아원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고 설명했다.

 

계속해서 "A선생은 여러 시민단체들을 끌어들여 농아원 문제를 더 여론화시켜서 에바다재단을 전복하여 재단을 장악하려는 음모를 7년 동안 온갖 거짓과 폭행과 행패를 부렸다"면서 "그러나 우리 농아원생들과 총동문회 그리고 직원들의 힘으로 에바다 사태 후 7년간 싸워 농아원을 지켜왔다"고 강조했다.

 

또 "무참하게 짓밟고 점령하여 쫓겨난 지금 우리들은 병들고 갈 곳도 없어 제2의 농아 고아가 되어 살고 있다. 30여 년 지난 오늘 우리들은 다시 내 고향, 우리 집, 우리 학교를 찾고자 호소드린다"면서 "여러분 도와주십시오. 에바다의 진실을 밝혀 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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