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뇌 빼앗는 기생생물 등장한 한국 배경…내달 5일 넷플릭스 공개 독자적인 이야기 펼쳐낸 연상호 신작…평면적인 캐릭터는 한계
이해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이유로 자주 폭력을 행사하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정수인(전소니 분)은 불행이 익숙하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가 손에 오만 원권 두 장을 쥐여주며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당부했을 때도, 마트에서 만난 진상 고객이 칼을 휘둘렀을 때도, 불행은 역시나 때 되면 돌아오는 것이라고 정수인은 받아들였다. 버텨내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위기에 대처해야 하는 상황 역시 익숙하다. 10살이었을 때 아버지를 아동학대로 신고해 스스로를 구했고, 29살이 된 현재는 몸속에 들어온 기생생물과 공생하며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 내달 5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새 시리즈 '기생수: 더 그레이'는 인간을 숙주로 삼아 세력을 확장하려는 기생생물들이 등장한 한국을 배경으로 한다.
이와아키 히토시의 만화 '기생수'를 원작으로 하지만, 사람의 뇌를 빼앗는 기생생물들이 등장했다는 설정만 가져와 독자적인 이야기를 펼쳐낸다. 평범한 남자 고등학생이었던 원작 주인공 신이치와 달리 '기생수: 더 그레이'의 주인공은 삶에 지쳐있는 29살 마트 직원이다. 기생생물과 숙주의 공생 관계도 원작과는 다르게 묘사된다. 신이치의 오른팔을 차지한 '미기'는 은근히 귀여운 말투와 왕성한 호기심을 가진 캐릭터였지만, 정수인의 머리 반쪽을 차지한 '하이디'는 훨씬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풍긴다. 하필 죽음의 문턱에 서 있던 정수인의 몸속에 들어온 기생생물 하이디는 숙주를 살리다가 뇌를 완전히 빼앗는 데 실패한다. 둘은 결국 하나의 몸을 공유한 채 일정 시간 의식을 나눠 갖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별종이 돼버린다.
총 6부작 중 언론에 미리 공개된 1∼3화는 정체를 숨기려던 정수인이 결국 인간과 기생생물의 치열한 싸움에 휘말리게 되는 과정을 속도감 있게 펼쳐냈다. 영화 '부산행', '정이',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선산' 등을 만든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기생수: 더 그레이'는 감독의 색깔이 뚜렷하게 묻어나는 편이다. 작품마다 고발적이고 강렬한 메시지를 담아낸 연 감독은 이번에 개인과 조직의 상호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정체를 숨기고 살아남기 위해 인간을 모방하는 기생생물은 "인간들도 기생하는 존재"라고 꼬집는다. 그들은 "조직을 위해 충성하는 태도가 인간을 우리보다 강한 힘을 갖게 만든다"며 "우리도 조직을 만들고, 조직을 위해 각자의 재능을 합치는 것이 지속적인 생존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인간을 흉내 내며 조직을 이뤄 세력을 확장하려는 기생생물들, 그리고 서로의 정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분열돼가는 인간들의 모습은 대조를 이루며 극 중 메시지를 강조한다. v한국적 색채가 강한 장르물로 자기 세계를 구축해온 연 감독은 이번에도 특유의 연출로 극의 음산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쌓아 올린다. 장르적 색깔이 뚜렷하고, 인간의 뇌를 차지하는 기생생물이 한국에 등장했다는 설정 자체는 흥미를 끌지만, 딱 거기까지다. 어디서 본 듯한 평면적인 캐릭터들은 제 자리에서 딱 필요한 만큼만 기능하고, 이야기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게 흘러간다. 경쟁조직의 추적을 피해 돌아온 고향에서 갑자기 사라진 동생과 어딘가 낯선 누나의 행적을 좇는 폭력조직원 강우(구교환), 남편을 빼앗아 간 기생생물에 강한 적개심을 가진 '더 그레이' 팀의 팀장 준경(이정현) 등은 배우들의 호연과 별개로 입체적인 생명력이 부족하다. 기생생물들을 구현한 어색한 컴퓨터그래픽(CG)도 아쉽게 느껴지고, 점프 스케어(갑자기 놀라게 하는 기술) 같은 전형적인 공포 장치도 호불호가 갈릴 법하다. 하이디는 극 중반부인 3화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능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기생생물들을 저지하려는 전담팀 '더 그레이'가 자신들과는 다른 별종인 정수인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하이디와 정수인은 어떻게 서로를 지켜낼지, 세력화를 시작한 기생생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어떤 생존 전략을 꾀할지 등이 앞으로의 전개에서 기대해볼 만한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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