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복구? 구리선 쓰는 우리 가게 전화는 아직도 먹통"
김동수 | 입력 : 2018/11/29 [10:12]
KT, 99% 복구율 집계서 구리선 이용자 누락 구리선 복구율 10% 수준 주민들 "싼 거 쓴다고, 고쳐주지도 않네"
"어제는 손님이 가게로 쫒아왔더라니까. 왜 전화 안 받냐고. 자기네들은 전화(휴대폰)가 되니까 깜빡 잊는거야. 여기는 불 나고 아직도 전화(유선)가 안 되는데..."
지난 28일 오전 10시 충정로역 부근에서 제미니 슈퍼를 운영하는 성영환(73)씨는 오전 내내 가게에 있는 유선전화 수화기를 들었다놨다 했다. 한숨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24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3가 KT아현지사에서 큰 불이 난 이후 닷새째 전화기가 ‘불통’이기 때문이다. 성씨는 "근처 사무실에서 음료수 주문 전화도 자주 왔는데 전부 못 받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라며 "진짜 우리처럼 작게 장사하는 사람들은 걱정이 태산"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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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충정로역 근처에 있는 제미니 슈퍼는 아직도 가게 전화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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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세상인들 "우리 가게 전화는 닷새째 먹통" 통신대란 닷새째인 이날 KT는 "무선(이동통신) 98%, 인터넷·IPTV(인터넷TV) 99%, 유선전화(광케이블) 99%를 복구했다"고 밝혔다. 거의 100% 복구됐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선 아직도 "전화기가 먹통"이라고 아우성이다. 대부분 광케이블이 아닌 구리선이 깔려 있는 낙후된 동네 주민들이거나 좁은 골목 사이사이에 자리잡은 영세상인들이다. 구리선 설치 지역의 유전전화 복구율은 10% 수준. 하지만 KT 측은 복구율 집계에서 구리선 이용자·피해자 수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화재의 피해지역인 서대문구와 마포구, 중구 일대에서 구리선 이용자는 약 1만여명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9000여명은 아직까지 ‘통신 두절’ 상태다. 이들은 1990년대 말 이전에 구리선을 쓰는 유선전화를 설치했다가 2000년 이후 도입된 광케이블로 교체하지 못한 채 계속 쓰고 있는 사람들이다.
화재 현장 인근에 사는 이모(75)씨는 "며칠 동안 답답했었는데 딸이 휴대폰을 하나 주고 가서 그제서야 전화국에 불이 난지 알았다"며 "돈 아낀다고 이것저것 바꾸라고 전화국서 연락와도 그냥 쓰던거 썼더니 이제 잘 고쳐주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KT 관계자는 "광케이블로 교체하면 여러 서비스가 결합돼 상대적으로 요금이 인상된다"며 "아직까지 동케이블(구리선)을 쓰고 있는 사람들은 연세 많은 노인 등 IT 취약 계층이나 영세상인들이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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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로역 근처 떡집은 27일 오후가 지나서야 무선 카드 결제 단말기가 설치돼 카드결제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유선전화는 여전히 먹통이어서 주문전화를 못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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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로역 근처 중림떡집을 운영하는 방점식(55)씨는 전화가 두절되면서 매출이 뚝 떨어졌다. 방씨는 "원래 전화주문이 많아 하루 100만원씩 팔고 그랬는데 전화가 안되니, 매출이 절반 밑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광케이블 우선 복구, 구리선 복구는 後순위 구리선 이용자에 대한 KT측 대응은 ‘땜질식’이었다. 직원들을 투입해 가게로 걸려오는 전화를 주인들이 휴대폰으로 받을 수 있도록 설명하고 다녔다. 또 카드 결제기가 먹통이 된 상인들에게는 무선결제가 가능한 단말장치를 임시로 설치해 줬다.
이 조차 숫자가 턱없이 부족했고, 조치도 뒤늦게 이뤄졌다. 화재 현장과 가까운 충정로역 부근에도 KT 직원들은 불이 난 지 사흘이 지난 27일에서야 찾아왔다고 한다. 무선결제 장치를 지원받은 세탁소 주인 전영선(60)씨는 "임시장치도 무선으로 연결하는 것이라 제대로 작동이 안 된다"면서 "구리선이라서 (복구가) 늦을 수밖에 없다고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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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로역 근처 세탁소 역시 아직도 전화기가 되지 않고 있다. 무선결제 장치를 단 카드단말기는 작동이 됐다가 안됐다를 반복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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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재 소상공인 연합회 회장은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출이랑 연결돼 생계가 흔들릴 정도의 재앙"이라면서 "인터넷 전화 쓰는 가게는 바로 복구됐다는데, 구리선 쓴 곳은 일주일 가까이 영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 구리선 쓴 게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자연재해처럼 당하고 있다"고 했다.
KT는 구리선 설치 주민이나 상인들의 피해 복구를 위해 ‘100’번으로 전화하면 현장대기조를 보내 불편을 해소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구리선 복구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KT 측은 "동케이블(구리선)은 광케이블에 비해 굵고 무거워 맨홀 위로 빼내야 수리가 되는데 아직까지 불이 난 통신구(맨홀) 진입부터 불가능한 상태"라며 "복구에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했다.
이번 화재는 지난 24일 오전 11시쯤 서대문구 충정로 3가 KT아현지사 지하 통신구에서 발생, 같은 날 오후 9시 26분쯤 꺼졌다. 이 여파로 서울 중구, 용산구, 마포구, 서대문구에 있는 KT 휴대전화 기지국 2833개가 작동을 멈췄다. 가입자 21만5000명의 유선 인터넷 서비스도 중단됐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서울 은평구와 경기도 고양시 일부 지역도 통신 장애를 겪었다.
지난 26일 진행된 2차 합동 감식 결과 "방화나 담배꽁초 등에 의한 실화 가능성은 낮다"는 진단이 나온 상태다. 국과수는 현재 환풍기 등 잔해물 감정을 맡겨 기계적 결함이나 기타 요인 구체적 발화원인을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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