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청소년 절반 학교 다닌적 없어.. "진도 못 따라가요" [청소년 氣 살리자]

국민정책평가신문 | 기사입력 2019/01/04 [19:55]

탈북 청소년 절반 학교 다닌적 없어.. "진도 못 따라가요" [청소년 氣 살리자]

국민정책평가신문 | 입력 : 2019/01/04 [19:55]

 <21> 탈북 청소년 교육 현주소 / 국내 탈북 청소년 약 3000명 추정 / 남북 교육제도 등 차이로 어려움 커 / 영어·수학 애로.. 국어도 이해 부족 / 사교육 필요하지만 대부분 못받아 / 상급학교 갈수록 학업 중도포기 급증 / 공부방 활성화 등 '맞춤형 대책'절실

#.탈북 청소년 A씨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고민이 많았다. 또래 아이들이 사용하는 은어(특정 집단에서만 쓰는 말)를 알아듣지 못해 대화하는 게 쉽지 않았다. 탈북 과정에서의 학습 공백으로 영어와 수학, 과학은 물론 국어 수업도 따라가기 힘들었지만, 교육에 관심이 낮은 부모는 A씨를 학원에 보내지 않았다. 한국 학생들과 비슷한 유년 시절을 겪지 못해 과거의 경험에 대한 공감대가 없다 보니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탈북 청소년들의 고민을 담은 단편영화 `잘 되길 바라(Comrade)`

◆한국 생활 어려움 겪는 탈북 청소년들

현재 국내 정규학교와 대안 교육시설 등에서 공부하고 있는 탈북 청소년들은 약 3000명으로 추산된다.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 한국에 정착한 탈북 청소년들은 △탈북과정에서의 교육공백 △서로 다른 남북 교육제도 △문화적 차이에 따른 적응 등의 문제로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남북하나재단(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의 ‘2016 탈북청소년 실태조사’에 참가한 탈북 청소년 857명 중 학교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으로 ‘학교 수업 따라가기’를 호소한 청소년은 전체의 48.5%인 415명에 달했다. ‘친구관계’(8.1%, 69명), ‘문화·언어적응’(7.6%, 65명), ‘교사들과의 관계’(2.2%, 18명) 등을 꼽은 청소년들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탈북 청소년 중 상당수는 1990년대부터 지속한 경제난으로 북한에서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해당 실태조사에서 탈북 청소년 10명 중 5명이 북한에서 학교에 다닌 경험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에서 기초학습능력을 쌓지 못한 탈북 청소년들은 수업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학생 수가 많은 학교에서는 진도에 맞춰서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학업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탈북 청소년들이 공부하기 힘들어하는 부분은 영어와 수학이지만 국어도 읽는 속도가 느리거나 이해력이 부족한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 명동 여명학교에서 이동식 수학문화체험공간인 ‘찾아가는 수꿈이 수학버스’를 찾은 탈북청소년들이 수학체험을 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부족한 기초학습능력을 보완하고 학교 수업 진도를 따라잡으려면 사교육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조차도 쉽지 않다. 해당 실태조사에서는 탈북 청소년 10명 가운데 6명이 학원 등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힘든 경제적 요인도 있지만 “공부해봐야 얼마나 잘하겠냐”며 자녀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 부모에게도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 이탈 주민 특례 전형을 통해 대학에 진학할 길이 열려 있는 것도 부모의 자녀 교육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장애가 된다는 지적이다.

탈북 청소년의 기초학습능력 부족은 학업 중도 포기 등으로 이어진다. 특히 수업 내용이 어려워지는 상급학교로 갈수록 중도 포기 가능성이 커진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16년 발간한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 사업 평가’ 보고서에서 “탈북 청소년 초등학교 학업중단율은 0.2%, 중학교는 2.9%지만 고등학교는 7.3%로 상급학교로 진학할수록 학업중단율이 높다”며 “2015년 기준 탈북 청소년의 학업중단율은 2.2%로 일반 학생 학업중단율(0.8%)보다 2.7배 정도 높다”고 지적했다.

수업 진도를 따라가지 못해 학업을 중단하거나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탈북 청소년들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청소년기를 소모해버린다. 탈북 청소년 지원활동에 참여하는 한 관계자는 “북한에 비하면 한국은 아르바이트라도 할 수 있으니 북한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지금 상황을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발휘하는 대신 현재에 만족하며 사는 모습을 보게 되어 안타깝다. 꿈이 없으니 도전도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탈북 청소년 지원 패러다임 전환 필요

정부도 탈북 청소년의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과 교육부가 운영하는 탈북청소년교육지원재단 등을 중심으로 △아동 대상 방문 학습지 지원 △영어 화상 교육 △대안학교 지원 △멘토링 확대 등 다양한 탈북 청소년 교육 지원 사업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현재의 지원 시스템이 탈북 청소년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탈북 청소년이 거주하는 지역 특성과 환경 등을 고려한 맞춤형 대책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동(洞)별로 소규모 공부방을 활성화, 한국 학생들과 탈북 청소년들이 함께 공부하도록 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공부방에서 탈북 초·중학생은 한국 고등학생, 탈북 고등학생은 한국 대학생을 멘토로 삼아 공부하면 탈북 청소년들은 10대 학생들의 문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자신보다 상급생인 멘토의 도움을 받아 더욱 성숙한 학습 태도를 갖출 수 있다. 한국 학생들도 탈북 청소년들을 이해하면서 탈북민에 대한 편견을 버리는 효과가 있다. 탈북 청소년 부모가 함께하는 학습 프로그램을 운영, 자녀 교육과 진로를 가족들이 함께 고민하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2011년 7월 현인택 당시 통일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이 강원 화천군에서 열린 제2하나원 준공식에 참석하고 있다. 하나원은 북한 이탈주민의 초기 정착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현재 경기 안성시와 강원 화천군 등에 설치되어 있다.
화천=연합뉴스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인 경쟁 체제에서 탈북 청소년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학습량과 시험을 늘려 학업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를 위해 북한 이탈 주민 대입 특례 전형 재검토 등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학 진학을 위한 고등학생 지원과 더불어 초·중학생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탈북 청소년 중 초·중학생의 비중이 높은 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북하나재단의 2016년 ‘탈북 청소년 실태조사’에 응한 탈북 청소년 857명 가운데 초·중학생은 전체의 68.4%인 586명에 달했다. 초·중학생 시절 자아 정체성을 확립해야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점에서 초·중학생 지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 탈북민 지원단체 관계자는 “탈북 청소년들을 사회·연령 등으로 세분화해 통일시대 인재로 양성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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