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사회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사법부 위기, 공동체 존립 위협"…양승태 조사일에 취임한 조재연 법원행정처장
 
김석순   기사입력  2019/01/11 [11:17]

 

"한번 무너진 사법신뢰 다시 세우는 것 지난한 일"

"서로 원망하고 탓하는 것, 문제 해결 도움 안돼"

"고인물 썩기 마련…사법부, 더 개방하고 혁신해야"

중앙일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이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조재연 대법관의 법원행정처장 취임식이 11일 오전 10시 대법원에서 열렸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원장이 검찰에 출석한 지 불과 30분 뒤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날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조 처장은 “사법부는 지난해 사법부 역사상 없었던 시련을 겪으며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며 “그 시련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며 취임사 포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무릇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라며 “사법부는 더 개방하고, 더 미래지향적이 되고, 더 혁신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른 때와 달리 이날 취임사는 ‘뼈아픈 질문’과 질책으로 시작했다. 조 처장은 “우리는 지난 시절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잘못에 대해 과연 진정으로 통렬한 자기반성과 성찰을 하였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오랜 세월 사법부의 닫힌 성 안에 안주해 사회변화와 시대정신을 외면해 왔던 것은 아닌가”라며 “개인의 성향과 법관의 양심을 혼동하거나, 국민의 인권보호를 위해 부여된 법관의 독립을 특권으로 인식하며 기댄 적은 없나”라고 꼬집었다.

중앙일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이 취임식에 참석해 직원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그는 “한번 무너진 사법신뢰를 다시 세우는 일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지난한 일이 될 것”이라며 “국민들에게 ‘믿어 달라’고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조 처장은 사법부의 ‘역할론’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사법부의 위기는 단지 사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재판에 승복하지 않고 사법제도를 불신하는 풍조가 만연하게 되면 당장 사회적 갈등을 폭력이나 악다구니로 또는 사법절차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이러한 문제들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례적으로 조 처장은 ‘법원 내부 갈등’을 거론하며 판사 개인의 돌발 행동에 대해 사실상 자제해줄 것을 당부했다. 조 처장은 “우리가 서로를 원망하고 탓하는 것으로는 문제 해결과 극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충심에서 하는 말이라도 조금 더 목소리를 낮추어 부드럽게 하고, 정당한 요구라도 조금 더 참고 양보하며, 바쁜 걸음이더라도 조금 더 천천히 가자”고 했다.

마지막으로 조 처장은 “국회에 제출돼 있는 법원조직법 개정의견은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사법행정회의 등을 설치하는 내용”이라며 “그러니 어쩌면 나는 마지막 행정처장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공직자는 국민의 공복으로서 언제, 어느 자리에서나, 맡은 소임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끝까지 배에 남아 항구까지 무사히 배를 인도하는 선장의 자세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중앙일보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이날 취임식은 양 전 대법원장의 검찰 출석을 의식한 듯 무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전·현직 대법관의 행보가 이렇게 극명하게 갈리는 모습을 단 몇 시간 안에 보게 될 줄은 몰랐다"며 "조 처장도, 양 전 대법원장도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사자굴'에 들어가는 듯한 어렵고 막막한 느낌은 같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아래는 조 처장 취임사 전문.

존경하는 법원 가족 여러분,

먼저, 어려운 시기에 법원행정처장으로서 헌신하신 안철상 대법관님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또한, 과중한 업무에도 맡은 일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법원 가족 모두에게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법부는 지난해 사법부 역사상 없었던 시련을 겪으며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시련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사법행정의 중책을 맡게 되어 참으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사법부가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크나큰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하여 사법부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머리 숙여 깊이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법원 가족 여러분,

개개인을 놓고 보면 법관을 비롯한 사법부 구성원들은 대한민국에서 어느 누구 못지않게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밤낮없이 최선을 다해 맡은 바 업무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책임감에 몸을 아끼지 않고 업무에 매진하다 과로로 유명을 달리한 동료 법관을 떠나보낸 것이 불과 얼마 전 일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사법부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고 이처럼 불신과 비난에 직면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분쟁 해결 기관인 법원이 오히려 분쟁의 중심에 서서 국민들의 걱정어린 시선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이 자리를 빌려 감히 여러분께 뼈아픈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절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잘못에 대하여 과연 진정으로 통렬한 자기반성과 성찰을 하였습니까? 오랜 세월 사법부의 닫힌 성 안에 안주하여 사회변화와 시대정신을 외면해 왔던 것은 아닙니까? 개인의 성향과 법관의 양심을 혼동하거나, 국민의 인권보호를 위하여 부여된 법관의 독립을 특권으로 인식하며 기댄 적은 없습니까?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시민의 참여가 확대되고 있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으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포용하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공동체의식이 고양되고 있습니다. 지난날 사법부가 이러한 사회변화와 시대정신에 둔감하였던 것은 아닌지, 진지한 반성과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무릇 고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사법부는 더 개방적이 되고, 더 미래지향적으로 혁신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시각과 관점은 우리 내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국민들의 시각과 눈높이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사법제공자가 아닌 사법이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국민들에게 우리 사법부가 공정하고 적정한 최선의 사법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니 믿어달라고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법제도에 대한 평가는 이를 접하는 국민들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법원에는 세상천지의 온갖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죄를 지은 혐의로 법정에 선 형사피고인들, 재산문제로 법원까지 오게 된 사람들, 부부의 인연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다며 찾아오는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사연들을 안고 법원을 찾습니다.

우리는 법대 위에서 이들을 내려다보아만 왔습니다. 그러다 보면 이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인지 잊기 쉽습니다. 이들이 없다면 재판도 필요 없고, 법원도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법원은 이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마땅히 모든 사건관계인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당사자를 대변하고 변호하는 소송대리인과 변호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은 법대 위에 있어도 마음은 법대 아래로 내려가야 합니다.

한번 무너진 사법신뢰를 다시 세우는 일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지난한 일이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는 제도와 의식의 개혁도 필요하지만, 법관들이 처리하는 사건 하나하나에서, 법원 직원들이 마주하는 민원인 한 사람, 한 사람으로부터, 즉 가까운 곳과 작은 일에서부터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법정의와 사법신뢰는 소액사건 심판 법정에서부터 세워져야 합니다. 시·군 법원을 찾아와 호소하는 서민 대중들로부터 가장 먼저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법원 가족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지금 법원행정처가 당면한 중요한 과제가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현재 추진 중인 사법행정개혁 방안을 입법화하는 일입니다. 그동안 법원 내·외부의 의견을 수렴하고 중지를 모아 마련한 법원의 의견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국회 논의 과정에서 많은 토론과 보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는 법원과 국민 모두를 위하여 최선의 개혁 입법이 이루어지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둘째는, 사법부 내부 구성원의 소통과 치유 문제입니다. 최근 일련의 일들로 사법부의 위상은 끝모를 정도로 떨어졌고, 법관들과 법원 가족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는 너무도 깊습니다. 법복을 입고 법정에 들어설 때의 경건한 자긍심이 전과 다르지 않다고 어느 누가 자신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의견을 모으고 화합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국민들로부터 더욱 더 외면받고 영원히 신뢰를 회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함께 손잡고 일어나야 합니다. 서로 원망하고 탓하는 것으로는 문제해결과 극복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충심에서 하는 말이라도 조금 더 목소리를 낮추어 부드럽게 하고, 정당한 요구라도 조금 더 참고 양보하며, 바쁜 걸음이더라도 조금 더 천천히 함께 갑시다. 저부터 대법원장님을 보좌하여 대화와 소통에 앞장서겠습니다.

셋째는, 사법제도의 개선 문제입니다. 사법행정은 공정하고 효율적인 재판시스템을 구축하고, 법관들이 오로지 재판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에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사실심과 상고심 구조 개편, 법관 임용 방식과 충원 문제 등 사법부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논의들을 계속해 나가야 하고, 가시적인 대책들을 마련해야 합니다. 지금같이 과중한 사건 부담 속에서는 법관이 사건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할 시간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논의하고 추진해나가는 방식도 과거와는 달라져야 합니다. 사법부가 일방적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하면서 이에 따라달라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국민들의 호응을 얻을 수 없습니다. 저부터 사법부 내·외부를 망라하여 지혜와 중지를 모으고, 국민들의 참여를 통해 공감과 지지를 얻는 방법으로 제도개선을 추진해나가도록 힘쓰겠습니다.

사법부의 위기는 단지 사법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재판에 승복하지 않고 사법제도를 불신하는 풍조가 만연하게 되면, 당장 사회적 갈등을 폭력이나 악다구니로 또는 사법절차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법원의 판결을 불신하게 되면 확정된 판결을 정당한 절차가 아닌 방법으로 뒤집으려는 시도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이러한 문제들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여야만 합니다. 과거의 잘못들이 법을 지키지 않고 원칙에서 벗어난 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를 시정하고 단죄하는 일도 반드시 법과 원칙에 따라야 합니다.

법원 가족 여러분. 현재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법원조직법 개정의견은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사법행정회의 등을 설치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니 어쩌면 저는 마지막 행정처장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공직자는 국민의 공복으로서 언제, 어느 자리에서나, 맡은 바 소임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저는 끝까지 배에 남아 항구까지 무사히 배를 인도하는 선장의 자세로, 제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법부 내외 모든 분들의 진심어린 협조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끝으로, 법원 가족 여러분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감사합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9/01/11 [11:17]  최종편집: ⓒ 정책평가신문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