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서 받은 상장 7개, 가방에 쑤셔넣은 아이의 슬픔

최윤옥 | 기사입력 2019/02/20 [10:23]

졸업식서 받은 상장 7개, 가방에 쑤셔넣은 아이의 슬픔

최윤옥 | 입력 : 2019/02/20 [10:23]

 송미옥의 살다보면(76)

중앙일보

요즘 졸업식장에서 가장 큰 상은 개근상이다. 손자는 이 유치원에 5살부터 7살까지 다녔는데 3년 개근한 아이에게는 큰 선물과 트로피 금메달을 주어 아이들의 기를 살려주었다. 지난 주말 졸업식장에서 찍었다.

 


 2월은 졸업시즌이다. 날씨도 봄날인데 꽃집마다 형형색색 꽃다발이 장관이다. 두 번째 외손자도 지난주 유치원 졸업식이라고 온 가족이 분주했다.

몇 년 전까지 내가 살던 산골은 초등학교 졸업식이 있는 날이면 동네 잔칫날 같았다. 학생 수보다 축하객 수가 더 많은 날이었다. 어느 날 학교 앞 고깃집 사장님이 내게 식당일을 한 달만 거들어 달라고 부탁하셨다. 베트남에서 시집온 며느리가 친정에 다니러 갔다며 말이다. 그때도 이맘때여서 어느 하루는 졸업식 날이었다.

졸업하는 학생 수는 다섯 손가락을 다 채우지 못하지만, 그 몇 배나 되는 관공서 직원들과 기관에서 참가하여 성대하게 치러진다. 졸업식이 치러진 후 당연히 고깃집 홀도 기관장을 접대하는, 접대받는 장소가 되어 버린다.

그런데 잠시 후 할아버지와 졸업생인 한 학생이 들어왔다. 나는 조용한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아이의 표정이 시무룩하고 입이 쑥 나온 걸 보니 무언가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할아버지는 손주에게 맛있는 돼지고기로 축하 턱을 내신다고 큰소리로 주문하셨다. 학생은 이 식당의 단골손님이다. 어느 땐 외할아버지와 함께 오고 어느 땐 친할아버지가 데리고 와서 식사하고 가는 조손가정 학생이다. 고깃집 사장님도 고기를 듬뿍 담아주시며 축하 덕담을 아끼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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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날, 할아버지와 심통난 표정의 졸업생 아이가 고깃집에 들어왔다. 나는 상장과 꽃다발을 만지작 거리며 시무룩하게 있는 아이에게 슬그머니 말을 걸었다.

 


이 아이는 부모의 이혼으로 일찌감치 할머니 내외의 손에 넘겨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할머니가 쓰러져서 몇 년째 누워 계셔 할아버지가 손주 셋을 힘들게 보살피고 있다. 시골은 특히 외국인 며느리가 많아 언어 차이와 습관 차이에서 오는 불화로 아이를 두고 떠나버린 가정이 많다.

친구들과 자장면을 먹고 싶었을까? 할아버지는 졸업한 주인공의 시무룩한 표정은 모른 척하고 객의 허무한 인생사를 소주 한 잔과 고기 한 점으로 달래셨다. 내가 일하던 그 식당도 며느리가 친정 가서 돌아올 때까지 잠을 못 이루신다고 하셨다. 다행히 나는 한 달 후에 돌아온 며느리에게 바통을 잘 넘겨주었다.

 



할아버지는 손자가 중학생이 되면 교복도 사야 하고 이런저런 지출계산에 술 한잔하며 혼잣말을 하시고, 아이는 가방 가득 받은 상장과 꽃다발을 꺼냈다 넣었다 하며 자랑할 이 없는 이곳이 짜증 나고 심심해 보였다. 나는 아이 옆자리를 비집고 앉았다. 고기를 뒤적여주며 아이 가방에 눈길을 주고 슬그머니 말을 걸었다.

“가방에 무슨 상장이 저래 많노? 네가 다 탄 거야? 구경 좀 시켜주라.” 아이가 입을 꾹 다문 채 가방을 홀라당 뒤집어엎었다. 쫙 펼쳐 놓으니 상장만 7개다. 축하금 형식의 장학증서 금액을 보니 다 합치면 100만원이 넘는다. 장학금 형식으로 온갖 기관에서 기부한 것이다.

“대단하네~ 단상을 도대체 몇 번을 올라갔다 내려왔다 한 거야? 난 졸업식 때 개근상도 한 개 못 탔는데…. 부럽다, 야.” 나는 호들갑스럽게 주절거렸다. 아이는 무뚝뚝하지만 자랑스럽게 졸업식 풍경을 말로 그려주는데 그 모습이 짠했다. 나가면서 내게 “이거 드세요~”하며 사탕 봉지를 쑥스럽게 내밀고는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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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상장을 구경 시켜달라 했더니, 가방을 엎어 온갖 상장을 자랑했다.

 


시골 내려와 외딴집에 살면서 남편이랑 심하게 다투고 가방 하나 메고는 집을 나오는데 키우던 강아지가 눈치를 보며 앞장서서 나갔다. 몽둥이로 때리는 시늉을 하며 소리 질러 올려보내길 몇 차례 실랑이하고, 긴 골짜기 내려오며 저 인간이랑 두 번 다시 안 살 거라고 울며 내려오는데 저 앞길 고목 둥치 뒤로 작은 모가지가 얼핏 보이다 안 보이다 했다.

아...! 그것은 몽둥이질하며 쫓아 올려보낸 강아지였다. 이놈이 가시덤불을 넘고 산을 가로질러 먼저 내려와서는 슬픈 눈망울로 나무 뒤에 숨어서 나를 훔쳐보는 거다. 이름을 부르니 꼬리를 떨구고 벌벌 기어 나왔다. 짐승도 눈으로 말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강아지를 끌어안고 맨땅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던 기억이 새롭다. 다시 돌아 집으로 올라가는 길을 토끼같이 깡충거리며 앞장서 달리던 어린 강아지….

짐승을 떨궈 놓고도 떠나기 힘든 게 어미인데 하물며 사람 자식을 떼어놓고 떠나는 어미의 애끓는 마음은 오죽했으랴. 그 아이가 잘 자라 주기를 기원하던 그때가 5~6년 전이니 이제 또 그 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겠구나…. 아무쪼록 이 험한 세상 멋진 청년으로 커 주길 마음속으로 축하 꽃다발을 한 아름 보내며 기억해본다.

하늘은 슷로 돕는자를 돕는다 지성이면 감천 민심이 천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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