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 연기' 초유 사태…학부모 "교육부-한유총 모두 잘못" 비판

권오성 | 기사입력 2019/03/01 [11:04]

'개학 연기' 초유 사태…학부모 "교육부-한유총 모두 잘못" 비판

권오성 | 입력 : 2019/03/01 [11:04]

 비리 사립유치원 공개로 촉발된 정부와 사립유치원단체의 갈등이 '개학 무기한 연기'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불러왔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감에서 불거진 사립유치원 문제는 해를 넘겨 벌써 6개월째를 맞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사립유치원 간 '강대강' 대치가 계속될 경우 자칫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부모와 아이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6개월째 접어든 교육부-한유총 갈등…'개학 연기' 사태 불러와 = 1일 교육계에 따르면 국내 최대 규모의 사립유치원모임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는 전날 기자회견을 열어 4일로 예정된 유치원 개학을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선언했다. 한유총은 "전체 회원 유치원 2274곳(68%)이 개학연기를 요구해왔다"며 "끊임없이 정부에 대화를 요구했는데도 교육부가 거부해 정부의 입장 변화가 있을 때까지 개학을 미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유총은 개학 연기 철회 조건도 제시했다. 한유총이 제시한 사항 가운데 △사립유치원 사유재산권 인정 △'유치원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과 유아교육법 시행령·시행규칙개정안 유보 △유치원 회계에서 시설사용료 비용처리 인정 등이 핵심이다. 이는 한유총이 그동안 교육부에 한결같이 요구했던 사항이다. 한유총은 "개인이 만든 사립유치원은 사유재산"이라며 "국가가 사실상 공공 목적인 '학교'로 사용하기 때문에 공적사용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적사용료는 토지나 건물 등 사유재산을 국가가 공적 용도로 사용할 때 지급하는 시설사용료다. 한유총은 정부가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교사 인건비를 전액 지급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사립유치원은 60만원에 이르는 교사 처우개선비만 지원받고 있다.

◇유은혜, 긴급회의소집…'돌봄 공백 차단' 논의 = 한유총의 이번 개학연기 선언은 교육부와 대립하면서 나왔다. 교육부는 지난해 10월 비리 유치원 공개 이후 파문이 일자 부랴부랴 '사립유치원 종합대책'을 내놨다. 대책에는 유치원 회계투명성·공공성 강화를 위해 △에듀파인 의무 도입 등을 골자로 한 유치원3법이 담겼다. 그러나 여야 합의 처리가 불발되면서 유치원3법은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돼 최장 330일 간의 심의 기간에 놓여 있다.

대신 교육부는 국회 절차가 필요없는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원아 수 200명 이상 대형 사립유치원에 에듀파인 도입을 의무화했다. 유아교육법 시행령은 △내년까지 모든 사립유치원에 에듀파인 의무 도입 △폐원 때 학부모 3분의 2이상 동의 의무화 △각종 위반행위에 대한 행정처분 강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한유총은 "유아교육법 시행령은 사립유치원을 향한 사망선고"라며 크게 반발했다. 설세훈 교육부 교육복지정책국장은 "사립유치원을 포함해 비영리 교육기관은 법적으로 공적사용료 지급대상이 아니고 초중학교와 달리 유치원은 의무교육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사립유치원에 인건비도 지원할 수 없다"며 한유총의 시설사용료·교사인건비 지원 요구를 거부했다.

교육부는 한유총의 개학 연기 선언 직후 긴급브리핑을 통해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학생과 학부모를 볼모로 삼는 개학 연기는 불법"이라며 "사실상의 집단 휴업을 강행할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교육부는 개학 연기에 동참하는 유치원에 대해 우선 감사하고 감사 거부 땐 즉각 형사 고발키로 했다. 사립유치원 개학 연기에 대응해 국공립유치원, 초등돌봄교실, 어린이집 등을 총동원하는 '긴급돌봄' 체계도 가동키로 했다. 교육부는 또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교육시설재난공제회에서 유 장관 주재로 '유아교육 공공성 강화 추진단회의'를 열어 '돌봄 공백 차단'을 위한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논의키로 했다.

◇학부모 "사태 키운 한유총-교육부 모두 잘못" 비판 = 학부모·학생을 볼모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한유총도 문제지만 사태를 키운 정부의 책임도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유총의 주장은 이미 여러 차례 되풀이됐고 지난달 총궐기대회 전후로 '개학 연기' 목소리가 나왔는데 정부가 이른 사전해 간파하지 못하고 결국 늑장 대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은영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사립유치원에 다니는 원아 수가 70%가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립유치원과 접점을 찾으려는 정부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유총 소속 사립유치원 2000여곳 이상이 개학을 연기한다는 소식에 학부모들은 패닉에 빠졌다. 특히 당장 아이 맡길 곳이 마땅치 않은 맞벌이 부부는 아이돌봄을 찾기에 분주하다. 인터넷에선 "유치원 개학 연기가 현실화하면 부부 가운데 한 명이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걱정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교육부의 긴급돌봄 체계에 대해서도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다. 과거에 비슷한 사례를 겪었다는 정모씨(39)는 "기존 유치원이 아닌 다른 곳에 보낼 경우 아이가 잘 적응하지 못한다"며 "유아학원이나 병설유치원을 보내는 엄마들을 봤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오는 5일 한유총을 공정거래법·유아교육법,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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