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모르쇠·발뺌 전략…헬기사격 사전 인지 여부 공방

김석순 | 기사입력 2019/03/12 [09:07]

전두환 모르쇠·발뺌 전략…헬기사격 사전 인지 여부 공방

김석순 | 입력 : 2019/03/12 [09:07]

 

‘사자 명예훼손’ 재판 쟁점은/ 全씨 헤드셋 쓴 채 질문에 답변 / 檢 “회고록 내용은 허위사실…헬기 사격 실체 알고 있었다” / 변호사 “당시 조종사들 부인…조 신부 진술 사실 인정 안돼” / ‘허위사실·고의성’ 입증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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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11일 광주 법정에 처음 출석한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은 헬기 사격 사실을 쟁점으로 몰아가면서 명예훼손 혐의를 벗어나려는 전략을 폈다. 전씨는 지난해 5월 검찰의 기소 이후 두 차례 재판을 미루다 이날 처음 광주지법에 출석했다.

광주지법 형사 8단독 장동혁 부장판사는 201호 법정에서 피고인 전씨의 생년월일을 확인하면서 재판을 시작했다. 전씨는 생년월일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죄송하다며 재차 물었다. 전씨가 재판장이 피고인의 진술거부권을 고지하는 과정에서 “재판장님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재판부는 헤드셋을 제공했다. 헤드셋을 착용한 전씨는 생년월일과 주거지 주소, 기준지 주소 등을 확인하는 질문에 모두 “네 맞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전씨는 이후 재판 내내 직접 발언을 하지는 않았다. 변호인의 모두 진술 도중 꾸벅꾸벅 졸다 깨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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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는 전두환씨의 재판이 11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예정된 가운데 전 씨가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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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왼쪽 세 번째)이 법정에 들어서기 전 취재진이 심경을 묻자 “왜 이래”라며 답변을 거부하고 있다. 광주=남정탁 기자


피고인 확인 절차가 끝나자 검사는 전씨에 대한 공소사실을 낭독했다. 검찰은 공소사실을 재판장에 설치된 모니터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여줬다. 재판장이 피고인에게 공소사실 인정 여부를 물으면서 검찰과 변호인 간의 치열한 법리 공방이 이어졌다.

재판의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사자 명예훼손의 핵심은 헬기 사격이 사실인지 여부를 놓고 검찰과 전씨 측의 공방이 치열했다. 전씨가 헬기 사격 사실을 알고도 모른 척하고 고 조비오 신부를 거짓말쟁이로 지칭한 것과 회고록의 헬기 사격 부정은 개인의 표현 자유 영역이라는 점이 쟁점으로 부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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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전일빌딩 부근을 비행중인 헬기. 특조위는 '군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사진=5·18 기념재단


검찰은 2017년 4월 전씨가 발간한 회고록 1권 ‘혼돈의 시대’의 한 대목이 사자 명예훼손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광주사태 당시 헬기 기총소사는 없었던 만큼 조 신부가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것은 왜곡된 악의적 주장이다. 조 신부는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다”라고 밝힌 대목을 적시했다. 5월 단체와 유가족은 이 부분을 문제 삼아 같은 해 4월 전씨를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검찰은 전씨를 지난해 5월 불구속기소 했다.

검찰은 이 내용이 사실과 달라 사자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논리를 폈다. 계엄군과 군 내부의 다수가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전씨의 변호인 정주교 변호사는 서울지검과 국방부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헬기 사격이 없었다고 부인했다. 정 변호사는 “당시 헬기 조종사들은 조 신부가 잘못 본 것 같다는 진술을 했다”며 “서울지검과 국방부가 이를 조사했지만 조 신부의 주장을 사실로 확인할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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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과 전씨 측은 전씨가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실체를 알고도 고의로 조 신부를 비난했을 가능성에 대해 법리 논쟁을 벌였다. 검찰은 전씨가 회고록을 출판하기 석 달 전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헬기 사격 사실을 확인하고 발표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검찰은 국과수가 회고록 출판 전인 2017년 1월 광주 금남로 전일빌딩에서 헬기 사격 탄흔 150개를 확인해 전씨가 이 같은 사실을 모를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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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심판을 받으라” 사자 명예훼손 혐의를 받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광주시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한 가운데 5월 단체 회원과 시민들이 법원 후문에서 ‘전두환은 5·18 영령 앞에 사죄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광주=남정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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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마친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전씨 측은 검찰의 주장을 반박했다. 정 변호사는 “회고록 발간 전에는 국가기관에서 헬기 사격 사실을 발표한 적이 없다”며 “회고록 첫 머리말에 전씨는 개인 기록물과 재임 중 기록물, 서울지검 수사 결과를 근거로 하고 있다고 해 고의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향후 재판에서도 쟁점 부분에 대해 치열한 법적 공방이 이어질 전망이다. 사자 명예훼손은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고인에 대한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에 성립하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헬기 사격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한다. 전씨의 처벌을 위해서는 적시된 내용이 허위 사실이며 작성자에게 적시된 허위 사실에 대한 인식(고의성)이 있었는지를 입증하는 것도 재판부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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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유관 단체 및 학생들이 11일 광주광역시 동구 광주법원 정문 앞에서 피켓을 들고 인간띠를 만들고 있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다음 재판일(4월 8일)을 공판 준비 기일로 지정했다. 검찰이 증거 신청에 대한 목록을 제출하지 않아 증거 정리를 위해 공판 준비 기일이 필요했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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