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비 ‘역대 최대 증가’라고? 문제는 고등학생이야!

김석순 | 기사입력 2019/03/14 [09:45]

사교육비 ‘역대 최대 증가’라고? 문제는 고등학생이야!

김석순 | 입력 : 2019/03/14 [09:45]

 

KBS

 



'지난해 사교육비 지출 급증' 뉴스, 보셨습니까? 교육부와 통계청 조사를 보면 사교육비 총액이 1년 만에 4.4%, 8천억 원이나 늘어 19조 5천억 원이 됐습니다. 지난해 교육 예산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규모입니다. 1인당 사교육비 지출액도 한 달 29만 1천 원으로 1년 전보다 7%나 증가했죠. 2007년 조사 이래 가장 가파른 오름세입니다. 사교육비가 부담스럽다는 데는 대부분 동의 하시겠지요. 그런데 뉴스를 보면서 좀 이상하다고 느낀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7% 올라서 29만 천 원? 정말 이 정도밖에 안 된다고요?

"한문학원 16만 원, 영어학원이 한 달에 18만 원 정도 되고요. 바이올린 개인교습이 한 번에 6만 원씩 한 달에 24만 원 들어요. 수영은 구립 문화센터에서 한 달에 2만 4천 원에 저렴하게 가르치니까... 더하면 60만 4천 원이네요? 그래도 수학이나 논술 같은 건 안 가르쳐요. 다른 애들은 그것도 하는데..." (초3 학부모)

"자세한 비용은 모르지만, 카드 고지서를 보니까 수학 한 과목만 가르치는 학원이 60만 원이더라고요. 이게 말이 되느냐고 했더니 아내가 이 동네선 다 이렇게 가르친다고 합니다. 다른 과목이랑 컨설팅 비용까지 하면 얼마일지.. 모르는 게 속 편할 것 같습니다." (고2 학부모)

한 달 29만 천 원의 함정…서울에서 사교육 시키는 가정만 보면?
짐작하시는 대로 실제 체감 사교육비는 '한 달에 29만 1천 원'보다 훨씬 많습니다. 해당 통계는 사교육을 아예 시키지 않는 집까지 모두 통계에 집어넣어 평균을 냈습니다. 사교육을 하는 집만 따로 뽑아 평균을 내보면 39만 9천 원으로 훌쩍 뜁니다. 지역별 차이도 큽니다. 서울 지역만 따로 떼 보면 29만 1천 원이 아니라 41만 1천 원입니다. 증가율도 5.2%로 전체 증가율 4.4%보다 더 높습니다. 서울 지역에서 사교육을 하는 집만 따로 뽑아 통계를 내면, 이보다 더 올라가겠지요? 한 달에 50~60만 원 정도 지출하는 것 같다는 초등학생 학부모의 말이 현실을 반영하는 셈입니다.

초·중·고 모두 올랐다지만…실제로는 고등학생 크게 '휘청'
통계만 보면 초, 중, 고 모두 올랐습니다. 각각 5.2%, 3.5%, 3.9%씩 증가했죠. 그런데 함정이 있습니다. 1년 간 초등학생 수는 3만 7천여 명 증가했습니다. 반면 중학생은 4만 7천여 명 줄었고, 고등학생은 무려 13만 1천여 명 감소했습니다. 이제 고등학생에 눈길이 갑니다. 학생 수는 13만 명 넘게 줄었는데, 총액은 4% 가까이 증가했으니까요. 실제로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를 보면 고등학생이 12.8% 증가했습니다. 이 영향으로 고등학생의 한 달 사교육비 지출은 중학생, 초등학생을 모두 꺾고 1등이 됐습니다. 이렇게 된 건 통계 작성 이래 이번이 처음입니다.

혹시 '입시 코디' 상담비용 때문에?
왜 올랐을까요? 일단 올해부터 처음 통계에 포함한 '진로·진학 학습상담 비용'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통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입시 코디'를 떠올리시면 됩니다. 고등학생은 진로, 진학 상담을 가장 많이 하니까 이 비용 때문에 부담이 늘어난 건 아닐까요? 교육부 설명은 "아닌 것 같다" 였습니다. 총액 규모가 616억 원, 통계에 그 정도 영향을 줄 만큼 크지 않습니다. 물론 영향을 줬겠지만, 일 년에 두세 번 받는 상담 때문에 1인당 사교육비가 급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몰라서 묻나요? 해야 할 게 너무 많아요!"
학부모들은 입을 모아 "해야 할 게 너무 많아졌다"고 합니다. 주요 과목 위주로 학원에 보내면 되던 예전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학생부 관리하려면 각종 교내대회 나가야 하는데, 이것도 다 사교육이 필요하고요. 내신 대비해야죠, 수능 챙겨야죠, 게다가 논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공부뿐인가요? 학생부에 들어갈 내용도 교사 대신 학생이 써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화된 사교육 시장에서 돈을 주고 매끈하게 내용을 다듬습니다. 교과목도 '수학, 영어'만 주야장천 파던 예전과는 다릅니다. 이번 통계에서 보면 국어 과목 사교육비 총액이 6천488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18.2%나 늘어났습니다. '불수능, 불국어' 얘기가 나오면서 책 좀 읽으면 되는 줄 알았던 국어에도 돈을 써야 하는 상황입니다.

"손 놓기도 쉽지 않아요. 애가 둘인데, 큰 애는 눈치가 안 할 거 같길래 그냥 나도 마음을 놨어요. 애랑 싸우기 싫기도 하고 '안 하려나 보다' 했죠. 그랬더니 작은 애는 원망하더라고요. 왜 엄마는 다른 엄마들처럼 나서서 안 시켜주느냐고. 요즘은, 애들이 챙겨주길 원해요." 취재 중 만난 한 학부모의 얘기입니다. 교육 현실, 입시 제도가 이런 이상 학부모에게 마음을 비우고 합리적으로 사교육을 하라고 '자제'를 권하기는 어렵습니다. 학부모들은 통일성 있고, 단순한 입시제도가 먼저 정착되기를 바랍니다.

교육부 대책, 어디서 많이 봤는데?
이런 현실에서 교육부가 발표한 대책은 아쉽습니다. 그대로 옮겨볼까요? "대학의 평가기준과 선발 결과 공개를 확대하여 대입 과정의 투명성을 높인다. 대입 과정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입학사정관 회피·제척 제도를 추진한다. 사교육 유발 요인이 크다고 지적되는 논술전형·특기자 전형 축소를 지속 추진하여 대입전형 방법을 단순화하며.."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입 투명성 및 공정성 차원에서, 재정지원과 연계하여 대학입학 평가기준 공개" "입학사정관 회피·제척 의무화로 평가 신뢰도 제고" "사교육 유발이 우려되는 논술전형은 단계적으로 폐지 유도" 지난해 8월에 교육부가 냈던 '2022 대입제도 개편방안'에 담긴 내용입니다. 이 정도면 재탕이 아니라 복사 수준이죠. 때마다 새롭고 기발한 대책을 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듣기 민망합니다. 이 밖에 교육부가 발표한 대책에는 관계부처와 함께 학원비 초과 징수 단속, 교육의 희망 사다리 강화 등이 담겼습니다.

어떤 완벽한 제도를 만들어도 부작용은 생기고, 특히 사교육을 없앤다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통계가 가리키는 바는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실은 사교육에 더 지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학교 내 경쟁이 심해지고, 학생 혼자서는 소화할 수 없는 정보를 알아야 합니다. 수시 비율을 다소 축소해 70%에 묶어둔 2022 대입제도 개편안만 착실히 이행하면, 사교육비 증가세를 잡을 수 있을까요? 교육부조차 확신하지 못할 겁니다. 내년 치 사교육비 통계가 나올 때까지, 씁쓸하게 기다려야만 할까요?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