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에서도 게리맨더링이 나타날까

국민정책평가신문 | 기사입력 2019/03/30 [18:18]

내년 총선에서도 게리맨더링이 나타날까

국민정책평가신문 | 입력 : 2019/03/30 [18:18]

 선거구 획정 ‘게리맨더링의 미학’

패스트트랙 안대로면 지역구 크게 줄어… 게리맨더링 논란 커질 듯



이번 총선에서도 ‘게리맨더링’이 나타날까. 게리맨더링이란 특정 정당이나 특정 후보자에게 유리하도록 자의적으로 선거구를 획정하는 것을 말한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는 선거일 13개월 전까지 자체 의결한 선거구획정안을 국회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내년 21대 총선일인 4월 15일을 기준으로 하면 올해 3월 15일까지다. 이미 시한을 넘겨버렸다.

국회가 지역구 의원 정수 등의 기준을 획정위에 제출하지 못함에 따라 추후 일정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 국회는 여전히 선거제개혁안을 놓고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느냐 마느냐로 논란 중이다. 국회는 원래 국회의원 지역구를 선거일 1년 전까지 확정해야 한다. 4월 15일까지다.

지난 총선에서 선거구획정위에 위원으로 참여한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인들은 자기 지역 선거에서 불리해지면 게리맨더링이라고 하지만 선거구 획정이 쉬운 일이 아니다”라면서 “게다가 획정위의 획정이 늦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회에서 지역구 의원 정수를 늦게 정하기 때문에 충분히 검토할 시간도 갖지 못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2015년 19대 국회에서 여야 농어촌 지방주권 지키기 모임 소속 의원들이 국회에서 선거구획정위 발표로 농어촌 지역구 의석이 감소되는 데 따른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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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구 획정 복잡해 정치인 이해충돌

패스트트랙 안대로라면 현재 지역구는 253석에서 225석으로 크게 줄어든다. 지역구가 246석에서 253석으로 늘어났던 20대 총선에서도 게리맨더링 논란은 여지없이 불거졌다. 만약 지역구 의석이 크게 줄어들면 게리맨더링의 가능성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선거구 획정도 더욱 복잡해지고 지역 정치인들 간 이해충돌이 한층 심해지기 때문이다. 20대 총선에 국회 관계자들이 기억하는 게리맨더링의 대표적인 예는 서울 강서구 지역구이다.

2016년 3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그 해 4월 20대 총선의 선거구 획정안을 확정짓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표결을 앞두고 있었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시 비례대표)이 반대 토론자로 본회의 발언대에 섰다. 진 의원이 출마하는 서울 강서구의 지역구는 갑·을 지역구에서 갑·을·병 지역구로 늘어났다. 이 지역구 획정이 게리맨더링이라는 주장이었다.

“강서구는 행정동과 법정동을 일치시키는 안을 선관위에 제출했습니다. 1구역은 화곡동, 2구역은 가양동과 등촌동·염창동, 그리고 3구역은 방화동과 공항동·발산동·우장산동으로 각각 나눈 안입니다. 주민들이 선거구를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동별로 나눈 것입니다. 그러나 선거구획정위원회는 화곡동과 가양동·등촌동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습니다. 화곡1·2·3·8동은 갑으로, 화곡본·4·6동은 병으로 쪼갰습니다. 가양1·2동은 을, 가양3동은 병으로 나눴습니다. 등촌1·2동은 병, 등촌3동은 을로 나눠 버렸습니다. 뭐가 뭔지 모를 지경입니다.”

강서구는 원래 생활권이 공항대로를 중심으로 나누어져 있어 선거구도 이 길을 기준으로 갑·을로 구분했다. 하지만 새로운 병 선거구가 늘어나면서 공항대로를 넘나드는 새로운 선거구 획정선을 그은 것이다. 상대당의 지역구 의원이 19대 총선에서 자신이 승리한 동만을 자신의 지역구인 ‘강서을’로 넣고, 패배한 동을 ‘강서병’에 넣은 게리맨더링이라고 진성준 의원은 주장했다. 진 의원은 “승리한 지역만을 을로 끌어모은, 그야말로 ‘김성태 맨더링’”이라고 표현했다. 당시 국회 본회의석상에서는 “실명 거론은 너무 하잖아”라는 목소리도 나와 회의록에 기록됐다.

실명이 거론되자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본회의 발언대에 올라 진 의원의 발언을 반박했다. “행정구역 및 지정학적으로 가양IC에서 강서구청을 잇는 대로가 부천까지 연결되는 큰 대로입니다. 그 대로를 기준으로 강서병 지역구가 신설되었습니다.”

경북 영주를 지역구로 두었던 장윤석 새누리당 의원과 경기 남양주 병에 출마한 최민희 의원(당시 비례대표) 역시 이날 본회의에서 선거구획정안이 게리맨더링화됐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모두 반대표를 던졌으나 이 법안은 재석 244인 중 찬성 174인, 반대 34인, 기권 36인으로 가결됐다. 4월 13일이 총선일이었지만 불과 40여일 앞두고 선거구 획정마저 다급했던 탓에 반대의 목소리는 곧 잊혀졌다. 이날 반대토론에 나선 의원들은 20대 총선에서 모두 떨어졌다. 서울 강서구의 결과는 극명하게 나타났다. 강서을에서 김성태 의원이 진성준 의원을 누르고 승리했다. 반면 진 의원이 주장했던 것처럼 김 의원에게 불리한 동을 넣은 강서병 지역구에서는 민주당 의원이 승리하는 결과를 낳았다.

실세의원 지역구 위주로 개편 부작용

게리멘더링 논란에도 불구하고 20대 총선의 선거구 획정은 역대 국회의 획정보다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전 국회에서는 선거구획정위원회에 이해당사자인 국회의원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20대 총선에서는 모두 외부 인사들로 구성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에 독립적인 기구로 설치한 것이다.

획정위원들은 각 정당과 시민단체의 추천을 받았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처음에는 각계 추천이었는데, 강경 우익 위원이 일부 추천돼, 결국 여당인 새누리당의 추천을 받은 인사를 위원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때문에 나중에 특정 여당 실세 의원의 입김이 선거구획정안에 반영됐다는 비판도 나왔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선거구획정위가 발간한 백서를 보면 선거구 획정 인구기준일을 두고도 격론이 벌어졌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인구기준일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특정 선거구가 없어지는 경우도 발생했기 때문이다. 선거구 획정을 놓고 ‘장시간 회의 끝에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다’는 표현도 등장한다. ‘여야의 대리전’이었다는 비판적인 문구도 있다.

백서는 최종 획정안을 앞두고 경북 6개 선거구의 구역 조정과 10개 선거구에 대한 경계 조정이 난제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 지역 대부분이 게리맨더링 논란에 휩싸였다. 경북은 인구수가 대폭 감소함에 따라 19대 총선 때의 15석에서 2석을 줄여야 할 상황에 처했다. 지역에는 모두 새누리당 현역 의원들이 있었다. 이 중 ‘실세 의원’이 있는 지역구는 기존의 지역구에 다른 지역을 덧붙이고, 비실세 의원의 지역구는 쪼개지거나 다른 의원의 지역구와 경쟁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얼마 전 지역구 의원을 225석으로 줄이는 패스트트랙 안이 나오자 자유한국당 김재원 의원은 “수도권 10석, 충청권 4석 감소, 강원 1석 감소, 호남 6석 감소, 영남 7석 감소가 예상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패스트트랙에 참여하지 않은 채 지역구 270석으로의 증원을 주장하는 한국당으로서는 패스트트랙 안에 대한 지역구 의석 감소를 과장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225석 기준의 각 지역 감소 예상치는 대강 맞아들어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도시와 농촌 간 인구격차가 더욱 커지면서 도시 지역구는 계속 쪼개지고 농촌 지역구는 계속 통·폐합되고 있다. 이 경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이 공직선거법 제25조 1항의 ‘구·시·군 분할 금지’ 조항이다. 이준한 교수는 “구·시·군 분할 금지 조항을 고치지 않는 한 선거구 획정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면서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도 지역구 정수 등이 하나도 결정되지 않은 만큼 이 조항까지는 개정할 시간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선거구 획정의 변수는 대폭 늘어났다. 하지만 구·시·군 분할 금지 조항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게리맨더링 시비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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