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 규제완화 땜질식으론 '소재부품' 국산화 요원

최윤옥 | 기사입력 2019/07/18 [10:20]

화학물질 규제완화 땜질식으론 '소재부품' 국산화 요원

최윤옥 | 입력 : 2019/07/18 [10:20]

 

정부, 화학물질 관리와 관련된 규제 완화를 검토 중

문제는 산업 환경 조성…"지나친 화학물질 규제로 혁신 생태계 키우기 어려워"

                                     

정부가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응해 장기적으로 핵심 부품 및 소재 국산화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업들은 강력한 화학물질 관련 규제를 해결하는 게 먼저 선행돼야 한다고 호소한다.

18일 여당과 정부 관계부처에 따르면 환경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화학물질 관리와 관련된 규제 완화를 검토 중이다.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와 포토레지스트(감광액),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화학물질을 일본에서 들여오기 어려워지자 국내 기업들은 '제3국을 통한 우회수입'을 모색하는 등 대안을 찾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이 각종 규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면 환경부는 규제를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방식으로 기업들을 지원할 계획이다.

다만 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평법),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등 법 골간을 건드리거나 수정하지는 않을 방침이다.

이같은 조치는 당청이 대기업들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됐다.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등 기업인들은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첨단 소재로 갈수록 화학물질의 배합이 중요해지는데 한국은 화학물 관련 규제가 까다로워 아예 시작부터 어렵다. 국산화 및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건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간담회 이후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은 "화학물질에 대한 안전 관리도 중요하지만 이미 사용되고 있는 것이나 안전성이 확보된 곳에 대해서는 여러 규제를 개선해볼 여지가 있다는 건의가 있었다"며 "이 부분은 적극 검토하고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환경부 관계자는 "아직 당청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지시가 내려온 것은 없다"면서도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관련해 기업들을 도울 수 있는 게 있으면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기업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규제 때문에 어려움이 있는지 설명을 해줘야 일부 완화를 검토할 수 있는데 이같은 설명이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헤럴드경제

 


올 1월 개정·시행된 화평법은 화학물질을 연간 1t 이상 제조·수입하는 기업에 모든 화학물질을 사전에 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100kg 미만의 신규화학물질을 제조 또는 수입하려는 경우에도 신고해야 한다. 화관법은 유해 화학물질 취급 시설의 배치, 설치의 관리 기준을 강화한 제도다. 법 시행에 따라 유해물질 취급 공장이 충족해야 할 안전 기준이 79개에서 413개로 불어났다. 2012년 정부는 경북 구미공단의 불산 누출 사고를 계기로 환경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환경부는 일단 기업들이 당장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응하는 데는 큰 장애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나 대만 등 제3국에서 고순도 불화수소를 들여오더라도 같은 물질이라는 게 증명만 되면 별도 등록·신고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화학물질이 바뀌거나 추가되면 이같이 비용, 시간을 추가로 들여야 한다. 같은 불화수소라도 일본산과 러시아산은 물질정보가 달라 별도의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할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장기전으로 양상이 번졌을 때다. 정부는 핵심 부품 및 소재 국산화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지만 이같은 강력 한 화학물질 관련 규제가 존재하는 상황에선 상당한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법 규제를 모두 지키려면 사업장마다 최소 수억 원씩의 시설 개선 비용이 든다. 또 연구개발(R&D)을 위해 신규 화학물질을 들여오더라도 등록·신고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한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핵심소재 중견·중소기업에게는 큰 장벽으로 작용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연간 1t 이상의 새로운 화학물질을 들여오거나 개발하면 등록해야 하는데, 사실 연간 1t이라는 게 1t 트럭이 싣는 양에 불과하다"며 "이를 위해 국내 독성학자들에게 화학물질 하나당 2억원씩 주고 동물실험을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같은 규제 때문에 부품 및 소재 산업을 키울 수 있는 바탕이 되는 정밀화학 산업이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헤럴드경제

 


아울러 유해·위험 작업의 사내 도급을 금지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내년부터 시행된다. 화학물질을 다루는 작업을 모두 대기업 안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하게 되면서 도급업체들은 성장할 기회를 잃게 됐다. 대기업 입장에서도 핵심기술이 아닌 탓에 자체적으로 굳이 기술개발을 할 필요가 없는 부분이다.

김태기 단국제 경제학과 교수는 "위험 화학물질을 다루는 작업은 필수적이지만 물량이 많지 않아 소규모 전문기업이 처리하게 된다"며 "하지만 도급 금지에 따라 전문기업이 설 수 없는 환경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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