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가 만든 작고 예쁜 과자가 300년간 사랑받은 이유

이은경 | 기사입력 2019/09/18 [08:40]

소녀가 만든 작고 예쁜 과자가 300년간 사랑받은 이유

이은경 | 입력 : 2019/09/18 [08:40]

 슬기로운 제빵생활(1)

5년간의 백화점 MD 생활을 뒤로하고 르꼬르동 블루 영국으로 유학을 결심했다. 그곳에서 제과·제빵사를 꿈꾸는 청춘들을 만나며 '베이킹'으로 새로운 삶의 꿈꾸게 됐다. 씁쓸한 아메리카노 같은 삶에 달콤함을 더해줄 빵과 디저트의 이야기를 레시피와 함께 전한다. <편집자>

중앙일보

마들렌과 따뜻한 차 한잔. 행복한 기억의 한 순간을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지요. [사진 밀로베이킹스튜디오]

 



요즘 카페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디저트 중의 하나가 바로 마들렌(madeleine)입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구운과자 마들렌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디저트입니다.

18세기 프랑스에서는 점심과 저녁 사이 출출한 시간에 작은 디저트와 티를 함께하는 티타임, 구떼(goûter)를 가졌는데요. 이 시간에 빼놓을 수 없는 디저트가 마들렌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심 후 잠깐 출출하고 피곤한 오후에 커피를 한 잔씩 하는 문화가 일상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18세기 프랑스 귀족의 문화와 유사한 형태로 마들렌을 만나고 있습니다. 우아한 그 모습은 아주 살짝 다를 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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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들렌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가 할머니의 레시피로 축제에 내놓은 조개모양 과자가 마들렌의 탄생 배경이라는 설이 가장 유명합니다. [사진 밀로베이킹스튜디오]

 



마들렌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1700년대 프랑스 북동부의 로렌(Lorraine)지역에서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가장 유력합니다. 마들렌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소녀가 로렌지역의 축제에 할머니의 레시피로 내놓은 조개 모양의 과자를 맛본 어느 공작이 프랑스 왕실에 전파하면서 파리와 프랑스 전역으로 알려졌습니다.

1700년대에 만들어진 이 귀엽고 작은 과자가 지금까지도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소설 속의 마들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920년대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매개체로서 마들렌을 소설 속에 등장시킵니다. 홍차에 적셔 먹는 마들렌을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잃어버렸던 시간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과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람이 느끼는 맛과 향은 그 순간의 기억을 마치 사진을 찍듯이 우리의 뇌 속에 각인시키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사진첩을 꺼내어 보면서 추억하듯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환기해줍니다.

이 과정을 심리학적 용어로 ‘프루스트 효과(Proust effect)’라고 부릅니다. 과거 우연히 접한 맛과 향, 그리고 소리로 인해 무의식 속 자리 잡았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작가 프루스트도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맛과 향에 대한 회상의 심리를 '마들렌'으로 표현하면서 마들렌이 주는 따뜻하고 행복한 정서를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영화 속의 마들렌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중앙일보

영화 속에서 추억을 낚는 낚싯바늘 역할을 하는 마들렌. 영화 '마담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의 한 장면.

 



지난 7월 한국에서 재개봉한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에서도 마들렌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을 오마주하고 있습니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이름은 영화 속에서 주인공 폴 마르셀, 마담 프루스트 두 인물로 묘사됩니다.

작가는 우리 무의식 속 가라앉은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장치로서 차와 마들렌, 그리고 음악을 등장시킵니다. 인간의 오감 중 미각과 후각은 차와 마들렌으로, 청각은 음악으로 감각의 자극이 될 수 있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영화는 과거의 사건으로 말을 잃게 된 폴 마르셀이 마들렌 덕분에 기억을 되찾고 마음을 치유해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 레몬 마들렌(12개)

준비사항

계란 2개 108g

설탕 80g

꿀 10g

박력분 130g

베이킹파우더 5g

버터 84g

레몬제스트 5g

레몬즙 11g

<레몬아이싱>

슈가파우더 30g

레몬즙 6~8g

버터는 중탕으로 녹여 42~45도까지 식힌 뒤 사용한다.

레몬은 베이킹소다로 깨끗이 씻은 뒤 제스터로 레몬 겉면을 갈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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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밀로베이킹스튜디오]

 



1. 볼에 계란, 설탕, 꿀을 넣고 휘퍼로 섞어준다.

2. 거품이 생기기 않게 천천히 저어준다.

3. 박력분 베이킹파우더를 체쳐서 넣고 섞어준다.

4. 녹인버터와 레몬즙, 레몬제스트를 넣고 섞어준다.

5. 랩을 씌워 냉장고에 30분~1시간 휴지시킨다.

6. 오븐을 190도로 예열한 다음 160도로 낮추고 10~12분간 굽는다.

7. 마들렌이 식은 후, 슈가파우더와 레몬즙을 섞은 아이싱을 마들렌에 발라준다.

마들렌의 재료는 크게 계란, 버터, 밀가루, 설탕 네 가지입니다. 버터를 녹여서 반죽에 섞어주는 마들렌은 어떤 버터를 사용하는지가 맛을 크게 좌우합니다. 저는 주로 버터의 풍미가 좋고 깊은 맛이 있는 발효버터를 사용합니다.

레몬 마들렌은 마들렌의 고소하고 폭신한 맛과 질감에 레몬의 상큼한 향을 더해 더욱 깊은 기억의 장치를 두고자 만들었습니다. 레몬을 손질하면서 제스트를 내는 순간부터 부엌 공간은 레몬 향으로 가득 차 만드는 내내 어떤 마들렌이 나올까 설렘을 더합니다. 특히 오븐 속에서 뜨거운 열과 만나 하나가 된 레몬과 마들렌 향은 한 입 베어 무는 순간에 더없이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 줍니다.

베이킹은 아날로그적 감성과 온라인이나 디지털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후각적, 촉각적 자극을 더해줍니다. 다소 번거롭고 귀찮은 과정일 수 있지만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 돈을 주고 사 먹는 것과는 다른 새로운 경험과 자극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함께 마들렌 베이킹해보실까요?

정도를 걷는 얼론인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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