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왜 김정일의 ‘금강산 관광’ 비판했을까

서정태 기자 | 기사입력 2019/10/24 [08:32]

김정은은 왜 김정일의 ‘금강산 관광’ 비판했을까

서정태 기자 | 입력 : 2019/10/24 [08:32]

 유훈사업에 이례적으로 “매우 잘못된 의존 정책”

수령 무오류론 건드려, 시대에 맞는 변화 시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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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쉽게 관광지나 내주고 앉아서 득을 보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금강산이 10여년간 방치돼 땅이 아깝다. 국력이 여릴 적에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 매우 잘못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관광지구를 현지지도하며 한 말이라고 <노동신문>이 23일 1면에 전한 내용이다.

김 위원장이 “매우 잘못된 의존정책”의 당사자로 지목한 “선임자들”이란, 궁극적으로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가리킨다. 형식논리상 현대그룹과 금강산관광 협력사업에 합의(1998년 10월29일 발표)한 북쪽 주체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의 고 김용순 위원장 등을 가리킨다고 퉁칠 수도 있지만, 군부의 반대를 물리친 김정일 위원장의 ‘결단’이 없이는 금강산관광이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김정일 위원장은 1998년 10월 소떼를 몰고 방북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면담했고, 그해 11월19일 첫 관광선이 금강산에 도착했다. 남쪽 관광객들에게 낯익은 온정각 앞마당엔 김정일 위원장의 금강산관광지구 현지지도를 기리는 기념비석이 서 있다.

북한 헌법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를 “주체조선의 영원한 수령”이자 “민족만대의 은인”이라 서문에 명시하고, “김일성-김정일 주의를 국가건설과 활동의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3조)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은 왜 ‘무오류의 선대 수령’인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챙긴 ‘유훈사업’에 직격탄을 날렸을까?

실마리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당 초급 선전 일군대회 참가자들에게 보낸 서한’(<노동신문> 3월9일 1면)에서 “수령의 혁명 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우게 된다”고 지적했다. ‘수령 신비화’ 비판의 형식을 빌려 ‘수령 무오류론’에 변화를 기하려는 의중이 읽힌다. 김 위원장은 4월11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차 회의에서, 김일성 주석이 교시한 불변의 당 우위 공업정책인 ‘대안의 사업체계’와 농업정책인 ‘청산리방법’을 삭제하고 생산 현장의 자율성을 높이는 ‘시장 요소’를 도입하는 헌법 개정을 ‘지도’했다. 김 위원장은 이미 할아버지의 교시조차 시대 변화를 반영해 변화를 준 셈이다. 김 위원장은 최근 경성군 중평남새온실농장과 양묘장 건설장 현지지도 때도 “10여년 전에 건설한 미곡협동농장마을이 지금에 와서도 농촌문화주택의 본보기가 될 수 없다”며 ‘김정일 시대 농촌마을 모범’에 변화를 주라고 지시했다(<노동신문> 18일치 1면).

김 위원장의 이런 행보는 중국 개혁개방 과정에서 덩샤오핑이 관철한 ‘마오쩌둥 지도노선의 상대화’를 연상케 한다. 덩샤오핑은 마오의 후계자인 화궈펑과의 논쟁 때 “마오 주석은 ‘공이 7, 과가 3이면 성공한 인생’이라 하셨다. 나는 공이 6, 과가 4면 성공한 인생이라 여긴다”며 ‘진리의 상대화’와 개혁개방을 추진했다. 전직 고위관계자는 “‘정상국가, 정상지도자’를 추구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현실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자, 의도가 무엇이든 결과적으로 ‘진리의 상대화’를 향하는 것”이라며 “귀추가 매우 주목되는 중대한 변화 징후”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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