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권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인사 관행 무늬만 요란한 청문회였다. 최근 이인영 통일부 장관과 박지원 국정원장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있었지만,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현 정권 들어 야당 동의나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장관이 25명에 달한다.
이제는 야당 동의는 별 신경 쓰지 않고 청문회라는 ‘요식행위’만 끝나면 임명하는 것이 일종의 관례가 된 것 같다. 2017년 12월 21일 최재형 감사원장의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감사원같이 중요한 감찰기관은 강골 공무원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내가 옷을 벗을지언정 부당한 지시나 압력은 이겨내겠다는 공직자가 많아야 국민이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2년 반이 흐른 지금, 여당 의원들은 다른 말을 하고 있다. “감사원장이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고, 특정 원전 마피아의 입장을 반영하고 여러 가지 법률 위반과 위헌적 발상을 하고 있지 않나”라며 “감사원장이 대통령 국정 운영 방향에 대해 불편하고 맞지 않으면 사퇴하세요”라고 소리친다. 2년 반 전에는 정권에 협력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했으면서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향에 맞지 않으면 사퇴하라”고 한다.
감사원은 법률상 대통령 직속이지만 직무와 관련해서는 독립적인 지위를 지닌 헌법기관이다. 지금 여권 주장을 보면 감사원 역시 행정부의 일원이어야 하고 행정부의 시녀여야 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7월 30일 더불어민주당은 이른바 ‘임대차 3법’을 통과시켰다. 더불어민주당이 부동산 관련 법안 11건을 국회 상임위원회에 일방 상정하고 표결 처리를 강행했을 때, 민주당은 많은 절차를 ‘생략’했다. 국회법에 규정된 소위원회 법안 심사, 축조 심사, 찬반 토론 등도 건너뛰었다. 이런 ‘속전속결’식 야당 무시는 지난 8월 3일 재현됐다. 민주당은 단독으로 부동산과 공수처 후속법을 강행 처리했다. 야당이 필요 없는 국회가 일상화되고 있다는 느낌이다.3가지 사례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무엇보다 제도가 무력화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입법부가 행정부 인사권을 견제하는 중요한 수단인 청문회가 무력화되고, 행정부에 대한 견제 주체인 국회 본연의 의미가 퇴색하고, 감사원을 비롯한 주요 기관의 본래 역할이 희미해지고 있다. 두 번째, 이 과정에서 형식적으로는 ‘법을 위반’한 사안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합법’적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를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인 가치는 훼손됐을 수 있다. 대한민국을 유지하는 가장 근본적인 가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다.
그런데 민주당의 정치 행위 중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게 많다. 법은 지키고 있지만, 대한민국 최상위 가치는 훼손하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제를 권력구조로 갖고 있지만, 대통령도 직선으로 뽑고 국회의원도 직선으로 뽑아 각각 국민을 대표하게 하면서 서로를 견제하게 만드는, 2중적 정통성(dual legitimacy) 구조를 통해 민주적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구조로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야당도 목소리를 내며 권력을 견제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를 정치적 결과물에 반영시킬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점은 국회는 합의제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 운영마저 다수제로 밀어붙인다면, 야당 목소리는 사라진다. 당연히 앞서 언급한 2중적 정통성의 의미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 ‘다수’ 의견에 의해 어떤 사안을 결정하는 ‘다수결 원칙’은 민주주의를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런 ‘수단’을 두고 민주적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면 곤란하다. 그나마 다수결이 제대로 작동하면 또 모르겠다. 우리나라처럼 당론으로 뭔가를 결정하면 이탈자가 생기기 어려운 정치구조에서 다수결은 별 의미가 없다. 다수결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집단 이성’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집단 이성이 개인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집단주의’로 전락하면 ‘집단 이성’의 본래 의미가 사라진다. ‘집단 이성’은 다양함 속에서 타협한 결과물이다. 결국 현재 우리나라 정치판처럼 다수결의 본래 의미도 살릴 수 없는 상황에서 숫자로 밀어붙이면, 소수나 반대 의견을 정치적 결과물에 담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그렇게 되면 민주주의 근본 가치도 사라진다. 청문회 무력화 현상이나, 작금 국회에서의 ‘1당 정치’ 등이 전형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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