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진보의 몰락 민주당이 만든 치명적 버그"

오은서 | 기사입력 2020/11/18 [07:24]

"윤석열은진보의 몰락 민주당이 만든 치명적 버그"

오은서 | 입력 : 2020/11/18 [07:24]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신간 낸 진중권 심층 인터뷰

/박상훈 기자 16일 서울 연남동 독립서점에서 인터뷰중인 진중권.

현정권에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는 진중권(57) 전 동양대 교수가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천년의상상)라는 책을 냈다. “조국 사태로 진보는 파국을 맞았다”고 주장하며 진보 좌파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최근 서민 단국대 교수 등과 함께 장안의 베스트셀러가 된 정권 비판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일명 ‘조국 흑서’를 내기도 한 진중권은 이번 책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은 민주당 프로그램의 치명적 ‘버그(오류)’”라고 표현했는가 하면, “문재인 대통령의 우상화에는 팬덤 문화 외에 NL(민족해방)의 개인숭배 문화가 있는데 북한식 정치문화가 남한의 부르주아 정치에까지 투영된 것”이라 분석했다. “지식인이 정치와 결탁하면 어용으로 변하며 ‘기생충’ 되는 것”이라는 독설도 잊지 않았다. 16일 반팔 티셔츠에 청바지, 항공점퍼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 진중권을 서울 연남동 한 독립서점에서 만났다.

◊ “윤석열은 민주당 프로그램의 치명적 ‘버그’”

-당신더러 사람들이 ‘제1 야당’이라는데 투사로 사는 것, 힘들지 않나.

“욕 먹는 게 힘든 게 아니다. 옛날엔 소수여도 ‘지성적 동지’라는 그룹이 있었다. 이제 그들이 없다. 완벽한 고독감 때문에 육체적·정신적으로 힘이 든다.”

-진보 좌파의 다른 부패·비리 사건도 많은데 유독 ‘조국 사태’에 실망한 까닭은.

“그 전엔 부패나 비리 사건이 나오면 사과나 반성을 한다든지 사과하는 척은 했는데 이번엔 그 기준 자체가 무너졌다. 조국은 평소 소셜미디어를 통해 진보적이고 정의로운 이야기 하면서 자신의 상징자본을 쌓았다. 그 친구를 굉장히 신뢰했었다. 한 때 같이 트위터의 쌍포 떴었는데… 사람이 별 반성 없이 살다 보면 저렇게 될 수 있다고 친구로서는 용서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이후의 행동이다. 그가 진실을 말해야 내가 도와줄 수 있다.”

-책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민주당 프로그램의 치명적 ‘버그’라 지칭했다. 윤석열은 어떤 사람일까.

“정치적인 사람은 아니고 검찰 조직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본다. 사회의 거악을 척결하는 것이 검찰의 의무이고 이 쪽이든 저 쪽이든 공정하게 칼을 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검찰에 너무 많은 권력이 모인 건 사실이지만 그 부분에 대해 문제의식 같은 게 있는 사람은 아니다. 금태섭 의원은 검찰에 대한 사명감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윤 총장 임명을 반대했는데 조국 전 장관이 적폐청산 때문에 억지로 관철시켰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치려면 날카로운 칼이 필요하니 썼는데, 다음에 그 칼에 자신을 향하니 감당이 안 된 거다. 그들의 프로그램에선 버그(오류)였던 것이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공격할수록 윤석열의 지지율이 올라간다.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 건 의미 없다. 그렇게 몰고 나가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 윤석열은 검사고 끝까지 남아 정의의 사표가 되어야 한다. 그가 검찰로서 권력의 압력으로부터 자신들의 수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퇴임하느냐가 시민사회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유일한 관심사다. 그 사람이 후에 정치를 하느냐 마느냐는 그 때 따지면 된다. 검찰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나도 동의하지만 지금 저 사람들의 목표는 검찰 독립성 자체를 없애 자신들이 통제하려는데 있다. 독립성 아니라 중립성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독립성 없이 어떻게 중립성이 있나.”

-이번 책에 작년까지만 해도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다고 썼다. 모든 사태가 못된 참모들이 착한 대통령의 눈을 가려 생긴 일이라 믿었다고 했는데.

“그랬다. 그런데 대통령은 재미있게도 철학이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화에 대한 비전과 남북통일에 대한 비전이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민주주의를 성숙한 단계로 끌어올리기 위한 자기만의 비전 있었다. 생각해보니 이 분은 비전이 없다. 자기가 대통령하려고 했던 분이 아니다. 친노세력이 폐족 상태에서 화려하게 부활할 때 필요한 카드로 사용했고 지금도 거기 얹혀 가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 보니 대통령이 역할이 없다. 윤리적 이슈를 놓고 사회가 분열됐을 때 통합하고 기준을 세워주는 기능을 대통령이 해야 하는데 조국 때는 오히려 기준을 무너뜨렸고, 윤미향 때도, 이번 추미애 장관의 휴대전화 비밀번호 공개 강요 때도 정리를 해주지 않는다. 국민을 통합시켜야 하는데 갈라치기 한다. 대통령이 없는 거다.”

-왜 그럴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철저하게 수평적 네트워크적인 대통령이었다. 그렇지만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은 NL의 개인숭배 문화를 답습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수령님 문화’ 비슷한 것이다. 문 대통령 숭배는 전대협 ‘의장님’이 행사장에 가마 타고 입장하던 봉건적 문화의 습속이 낳은 일종의 문화지체 현상이다. 이걸 대통령 본인이 알아야 하는데 거기에 대한 감 자체가 없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박상훈 기자 16일 서울 연남동의 독립서점에서 만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 “민주당,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학습 없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게도 많이 실망한 것 같다. 최근엔 그가 밀의 ‘자유론’을 거론하며 광복절 집회 금지를 위한 차벽을 옹호한 걸 공격하기도 했다.

“그 전부터 많이 싸웠다. 그 후론 친해지기도 했다. 그 분이 원래 자신을 ‘소셜 리버럴’이라 했는데 소셜하지 않다는 건 진작에 알았다. 이번에 딱 보니 리버럴하지도 않더라. 상당히 저 쪽으로 가 버린 것 같다. 존 스튜어트 밀이 말하는 ‘위해 원칙(harm principle)’은 남에게 해만 끼치지 않으면 사람은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걸 가지고 집회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나. 그러면 헌법 위반이 되는 건데. 밀의 자유론을 제약론으로 만드는 것이다. 사이비 종교 교주가 성경서 한 구절만 딱 따다가 제멋대로 해석해 써먹는 양상이다. 재미있는 건, 지금까지 민주당이 해온 일련의 입법들이 다 반자유주의적이란 거다. 친일파 파묘법, 역사왜곡금지법,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문제, 박형순 금지법부터 최근의 한동훈 금지법까지 하나같이 반자유적이다. 민주당의 당 정체성이 반자유적으로 바뀌었다. 그걸 계속 지적했더니 변명하려고 ‘자유론’을 들고 나온 것 같다.”

-민주당에 어떤 말을 하고 싶나.

“너희들이 표방하고 있는 정치이념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경고를 하고 싶다. 그건 너희들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학습이 없기 때문이라 말하고 싶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학교 다닐 때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주아’라며 우습게 알았다. 민중주의와 민족주의 같은 전체주의나 집단주의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었다. 그걸 반성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라진 다음에 민주당의 리버럴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이 무너져버렸다. 자유주의적 가치라는 것은 우리나라가 진보든 보수든 중도든 기본적으로 합의한 규칙이다. 일단 그걸 지킨 다음 진보와 보수가 합리적으로 논쟁하고 경쟁해야 한다. 그 기반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게 위기라 본다. 지금 웃기지 않나. 내가 좌파인데, 자유주의적 가치의 한계가 아니라 자유주의적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으니 이게 뭐야, 도대체. 지금 내 심정이 옛날 레닌이 이야기했던 그거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일반 민주주의 투쟁의 전위가 되어야 한다’. 하하하!”

-책 서문에 당신의 역할을 ‘논객’으로 규정하며 “나는 내가 맞서 싸우는 그 사람들을 증오하지 않고, 내가 위해서 싸우는 그 사람들을 사랑하지도 앟는다”는 예이츠의 시구를 인용했다. 궁극적으로 뭘 위해 싸우는 건가.

“먹물의 의무. 먹물은 기본적으로 객관성과 보편성을 지켜야 한다. 노동자들이 해주는 옷을 입고 농민들이 해 주는 밥을 먹고 있는데 밥값 해야 한다. 다들 자기 영역에서 자기 일들만 하면 사회가 잘 굴러가게 돼 있다. 지식인이 갑자기 정치와 결탁하면서 기득권 공유하며 어용으로 변해간다든지 하면 ‘기생충’이 되는 거다. 나도 인생이 서너 개 되면 조국처럼도 한 번 살아보고 싶고, 그놈의 사모펀드도 한 번 해 보고 싶고, 여자 나오는 술집 가서 카드도 한 번 긁어보고 싶다. 그렇지만 인생은 한 번밖에 없는데 자기를 배려해야지.”

-좌파 지식인의 대표주자인 진중권이 태극기 세력의 열렬한 성원을 받고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그 사람들이 내게 환호하는 건 저 쪽을 때리기 때문이다. 좋아해주는 것까지 말릴 수 없다. 다만 진정으로 보수가 잘 되기를 바란다면 쓴소리를 들어야 한다. 가장 훌륭한 비판은 대안이니까. 자기들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반성하고 개혁해야 한다. 맨날 정치싸움하는 게 야당 역할인가. 지금 ‘국민의 힘’은 자기개혁을 해야 한다. 기존 보수 전략의 문제가 무엇이며 새로운 주체 새력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성경 말씀대로 입을 막으면 돌들이 일어나 외치게 되어 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진중권이 나오고 내가 잠잠하니 조은산이 나오지 않나. 저 쪽을 까는 건 시원하지만 사람이 사이다만 마시고 살 수는 없다. 냉정하게 보수에 대한 비판을 들어보고, 유튜브 보며 속 푸는 게 아니라 젊은 보수 중 탁월한 아이들 발굴해 장학금 주며 키워야 한다. 사회라는 것이 한 쪽이 잘 나간다 해서 잘 되는 것이 아니다. 보수가 망가지면 진보도 망가지고 보수가 정신 차리고 잘 하면 저 쪽도 잘하려고 경쟁하게 된다.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 쪽도 진리를 독점할 수는 없다.”

◊ 아직도 主流라 착각하는 대한민국 보수

-보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뭔가.

“지피지기가 안 된다는 거다. 아직도 자기들이 메이저라 생각한다. 그 시대는 지났다. 옛날에 보수는 ‘집에다 돈 벌어주는 아버지’였는데 지금은 ‘돈 쓰는 할아버지’가 된 거다. 아마도 대한민국 보수 중 최상층은 1% 정도일 거다. 나머지는 저소득·저학력·고령층이고, 더 이상 주류가 아닌데 아직도 다수자 전략을 쓴다. ‘빨갱이’라 낙인 찍으면 저들이 고립될 거라 생각하는데 이젠 오히려 자신들이 고립된다. 저들이 ‘토착왜구’라며 그 전략을 쓴다. 무조건 세금은 줄여야 하고 규제는 풀어야 하고, 법질서는 세워야 한다는 옛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시장만능주의와 권위주의, 극우반공주의 세 개를 결합해 고집하며 보수의 정체성으로 생각하는데 이제 먹히지 않는다. 실제로 보수의 역사는 그렇지 않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민연금, 의료보험, 그린벨트, 고교 평준화를 도입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냉전 이데올로기를 스스로 해체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역사 바로세우기를 했다. 국가에 필요한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하는 유연함과 역동성이 있었는데 그게 없어지고 정책의 ‘이름’만 남았다. 이걸 하면 보수고 안 하면 빨갱이라 하다 보니 정체성의 덫에 걸려 버렸다. 보수의 새로운 상을 그려내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버스 중앙차선 만들었지 않나. 이는 좌파적 정책이다. 이런 식의 정책적 상상력을 내야 하는데 무슨 정책만 내면 이념 딱지를 붙이니 할 수 있는 게 없다. 집권층은 거꾸로다. 자신들이 거악 앞에서 늘 정의로울 수밖에 없었던, 사소한 악 정도는 용서가 됐던 야당 시절 생각을 계속 한다. 집권해 주도권을 잡았는데도 주위가 기득권층으로 포위된 것처럼 이야기한다.”

-총체적 난국이다.

“그렇다. 보수든 진보든 상관 없이 진영을 떠나 자기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개인으로서의 시민들을 키워야 하는데 멀쩡했던 시민마저도 정당의 신민을 만들어 버리니까. 사실 나는 보수에 대한 애정은 없다. 그 쪽에 속해본 적도 없고 그 정서도 내게 없다. 진보적 가치가 무너져버린데 대한 절망감을 굉장히 느낀다. 보수 쪽에선 ‘진중권 쟤는 우리 편 아니야’ 하더라.맞아, 니네 편 아니다.그러니까 너무 좋아하지 마라. 너무 좋아해 주면 나중에 당신들 뒤통수 때릴 때 미안하니까. 하하하!”

-책에서 ‘코로나 독재’를 우려하고 K방역의 인권침해 소지를 비판했다.

“코로나 사태라는 건 각국 지도자들에게는 굉장히 좋은 상황이다. 외계인의 침공을 받은 거기 때문에 지도자 정치로 갈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가 볼 땐 전생에 나라를 세 번 정도 구한 거 같다. 촛불 때문에 사실은 거저 대통령 되고 두번째 지지율 떨어질 때 되니 갑자기 김정은이 만나자 하질 않나, 그리고 또 다시 떨어질 때쯤 되니 코로나가 들어와 버리고…. 코로나에 사실 잘 대처한 것도 실은 전 정권에서 당해서 그렇다. 메르스, 사스 하면서 쌓였기 때문에 잘 대처할 수 있었던 건데 어쨌든 그 공은 그들이 차지할 수밖에 없는 거다. 어쩔 수 없는 거고, 그건 우리가 뭘 한다 해서 바꿀 수 있는 변수는 아닌 것 같다. 상수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코로나 같은 문제는 정쟁화해서는 안 된다. 자꾸 언급해서 정치적 쟁점 만들면 아무래도 방역을 하는 사람들이 유리하다. 우리나라 방역이라는 게 성공적인 거고 그건 인정해야 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자꾸 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거니까… 아예 모든 사람들이 강력하게 모두가 협력함으로써 이 사안이 정치 쟁점이 아니게 만들어야 한다. 이슈를 중립화해야 한다. 무조건 때리면 좋다고 생각하는데 때리고도 욕 먹을 수 있다. 정부를 무조건 때린다고 지지율 오르는 게 아니다. 때로는 과감하게 협력하는 게 지지율 오를 수도 있고 때리면 때릴수록 지지율이 떨어질 수도 있다.”

-'미학 오디세이'(1994) 등 베스트셀러 미학 책을 내며 유명해졌고,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 등을 비판한 정치평론집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1998)를 출간하며 정치평론가로서 본격 주목받았다. 안티조선 운동도 했다. 이번에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출판사에서 하라면 해야지. 출판사가 시켜서 나왔다고 꼭 써 달라.(웃음) 조선일보에 대해서는 자유주의 원칙에 따른 비판은 좋은데, 많은 부분의 기사가 정치적 비판이라 부담스럽다. 한겨레와 조선일보를 안 보는 이유가 정치성이 부담스러워서다. 기자는 팩트만 주면 된다. 팩트가 가장 위대한 비판이라 생각한다. 기자가 하는 최대의 비판은 팩트이고 그 다음 나 같은 논객들이 비평하고 판단하는 거다. 약간은 쿨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을 만한 보수적인 점잖음이 있었으면 좋겠다. 진보지는 날카롭고 보수지는 둔탁하고 묵직하게 가는 맛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너무 날카롭다는 느낌이 있으니 선뜻 인터뷰하는 것이 꺼려지는 거다.”

/박상훈 기자 16일 서울 연남동의 독립서점에서 만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 “어릴 때부터 혼자 노는 것 좋아해… 자정부터 새벽 네 시까지 글 써”

진중권은 서울 강북의 17평 빌라에서 7년 전 입양한 고양이 ‘루비’와 둘이 산다. 아내와 아들은 독일에 있다. 야행성이라 자정부터 새벅 네 시까지 글 쓰고, 야식으로 라면에 밥 말아먹고 네시에서 여섯 시 사이 잠든다. 열 시에서 정오 사이에 기상해 1500원짜리 김밥 한 줄과 다이어트 콜라로 점심을 해결하고 저녁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먹는다. 드물게 사람을 만나지만 보통 종일 집에 있는다. 최근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스페인에 가서 한두 달 살며, 20년 전부터 호기심을 가져온 18세기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솔로 고야’(오로지 고야만을)라는 책 제목도 이미 정해놨다.

-진중권은 한국 특유의 패거리 문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평이 있다.

“어릴 때부터 다락방서 혼자 노는 걸 좋아했다, 또래 친구들이 짖궂고 무지막지하다 느꼈다. 전화해 먼저 연락하는 사람들이 손가락 안에 든다. 가족들도 거의 안 만난다. 누나들(음악평론가 진회숙, 작곡가 진은숙)이 독일서 왔다는 건 신문 보고 안다. 고등학교(양정고) 친구들을 작년 봄 사십 몇 년만에 우연히 만났다. 요즘은 그 팀에 합류했다. 역시 친구는 고등학교 친구다. 대학 친구와는 ‘이 새끼, 저 새끼’가 안 된다. 처음엔 서먹했는데 두 번 세 번 만나며 소소한 재미를 느끼고 있다.”

-조국 사태 이후 정의당에 탈당계를 내고 동양대에도 사표를 냈다. 가장이 할 법한 선택은 아니다.

“성경 말씀에 (하나님이) 들판의 백합과 하늘의 새도 돌보시는데 너 하나 돌보지 못하겠느냐는 구절이 있다. 나는 어떻게 보면 무신론적 유신론자인데, 꼭 기독교적 입장이 아니더라도 옳은 일을 옳은대로 하면 그 다음엔 모든 게 다 풀릴 거라는 믿음이 신앙이라 생각한다. 굳이 하얀 수염 단 존재가 있어서 나쁜 놈 지옥 보내고 착한 사람 천당 보내고 하는 판타지를 믿는 게 아니라, 신앙이라는 게 하나님을 존재하게 만드는 거니까. 그런 관점들과 함께 돈 쓰는 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어디 갖다 놓아도 번역하건 원고 쓰건 이 정도로는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그런데 나보다 더 영웅적인 것은, 그런 대책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가족을 위해 조직에서 갖은 더러움을 다 참고 견디는 분들이라 생각한다.”

-586은 자기들이 죽인 아버지보다 더 ‘나쁜 아버지’가 되었다고 책에 썼다. 당신도 586(서울대 미학과 82학번)인데 운동은 좀 했나.

“지도부가 되거나 감옥을 간 건 아니었지만 지하서클에도 있었고 데모는 열심히 했다. 명함을 내밀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사회주의가 멸망했을 때 우리가 갖고 있던 이론이 실증적으로 반박됐다는 걸 알았다. 우리가 마르크스를 종교적으로, 예수 대하듯 했다는 걸 깨달았다. 독일 유학 가서 좌파 리버럴이 됐다. 자유민주주의적인 기본 질서를 인정하고 유럽식 사회주의를 배웠다. 그럼에도 아직은 혁명적 열정이라는 게 남아있다. 인터내셔널가를 들으면 피가 끓고 가끔씩 혁명가도 부른다. 대의를 위해 내 인생을 바쳐야겠다는 순수한 혁명적 열정이 있었는데, 그런 나도 벌써 부르주아 속물이 다 되어 버렸지만… ‘진짜 586’들은 다 죽었다. 운동하다 죽고 고문하다 맞아서 죽었다. 지금 정치권 586이라 하는 사람들은 물론 운동을 했고 기여도 있겠지만 권력을 누렸던 사람들이다. 조국 사태 나고 옛 친구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찾아 페이스북에 들어가봤다. 자기 생활하면서 인권운동 한다든지 가난한 사람들 도운다든지 곳곳에서 자그마한 실천들을 하며 말짱한 정신으로 살고 있더라. 나는 이 사람들이 진정한 586이라 생각한다. 저들이 아니라 이들과 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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