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길 따라 ② 흙돌담이 아름다운 달성 인흥마을

오은서 | 기사입력 2021/04/08 [09:43]

돌담길 따라 ② 흙돌담이 아름다운 달성 인흥마을

오은서 | 입력 : 2021/04/08 [09:43]

 남평문씨세거지로 지역 문화의 중심지…인근 마비정마을도 가볼만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흙돌담은 흙과 돌을 섞어 견고성을 높인 형태의 담장이다. 원시적이고 허술해 보이지만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이 담장은 수백 년의 세월이 흘러도 건재한 곳이 많다.

    대구시 달성군에는 전남 나주 남평을 본관으로 한 남평문씨세거지(南平文氏世居地) 인흥마을이 있다. 직선으로 뻗은 흙돌담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여행의 참맛은 우연에 있다. 당초 목적지는 돌담길이 아름다운 경북 군위의 한밤마을이었으나, 막상 도착해 이곳저곳을 다녀보니 꽃도 없고 왠지 모르게 썰렁한 느낌이었다.

    여기저기 수소문한 결과 안테나에 걸린 것이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의 남평문씨세거지인 인흥마을이었다. 익히 소문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정작 여행을 목적으로 가본 적은 없는 곳이다.

    특정 성씨의 집성촌이어서 여행지 리스트에서 비껴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남평문씨세거지인 인흥마을에 핀 홍매화 [사진/성연재 기자]
 


    ◇ 소박한 목화밭, 화려한 매화밭
    서둘러 차를 몰고 인흥마을에 도착했다. 조선 후기 건축양식으로 지은 70여 채의 살림집, 고서를 보유한 문고(文庫) 등으로 이뤄진 전통미 가득한 마을이다.

    한 집이 여러 채의 건물로 이뤄진 한옥의 특성상 현재 가구 수는 9개에 불과하다. 문익점 선생의 18대손인 문경호가 1861년에 처음 터를 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을 앞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큰 목화밭이다. 목화밭 앞에는 문익점 동상이 세워져 있다. 문익점 선생은 고려 말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목화씨를 국내로 들여와 보급했다.

    그전까지 우리 선조들은 엄동설한에도 삼베나 칡 등으로 짠 갈포만으로 겨울을 나야만 했지만, 선생의 노력 덕분에 겨울에도 따스한 솜옷을 입을 수 있게 됐다.'

매화가 핀 인흥마을 전경 [사진/성연재 기자]
 


    후손들은 그런 선조의 뜻을 기리기 위해 목화밭을 조성한 것이다.

    목화밭 오른쪽에는 하얗고 붉은 매화꽃이 활짝 핀 매화밭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저 남쪽 매화꽃 명소로 알려진 전남 광양이나 경남 하동보다 나무가 훨씬 컸다.

    무엇보다 마음에 든 것은 30여 대를 댈 수 있도록 널찍하게 조성된 주차장이었다. 문씨 집성촌이지만 한 문중만의 마을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

    다행히 공휴일이 아니어서인지 여행객이 많지 않아 천천히 마을을 돌아볼 수 있었다.

    매화밭 한가운데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름 모를 새들이 붉은 홍매화 속에 그림처럼 앉아 있다. 어디선가 날아온 벌들이 붕붕거리며 꿀을 따기에 여념이 없다.'

인흥마을 앞의 목화밭 [사진/성연재 기자]
 


    이렇게 꿀 따는데 열중인 벌들은 전혀 위험하지 않다. 꿀에만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이다.

    매화밭을 왼편에 두고 난 오솔길로 접어드니 새파란 부추밭이 반갑다. 잘 살펴보니 밭 위로 홍매화 꽃잎이 떨어져 있다.
    부추밭을 지나니 마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곧이어 가지런히 죽 뻗어 족히 60m는 돼 보이는 흙돌담길이 등장했다.
    그 길의 끝자락에는 진분홍 매화 한그루가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 양반마을 상징하는 높은 흙돌담
    흙돌담은 돌이나 흙으로만 쌓은 담과 달리, 양쪽의 단점을 극복한 선조들의 지혜가 서린 유산이다.

    담은 영역표시의 수단이자, 재산과 신변의 방어 역할을 해 왔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문씨세거지의 높은 흙돌담은 후자의 의미가 좀 더 큰 느낌이다.

    집 내부는 볼 수 없지만, 집 위로 피어오른 산수유꽃은 신비로움과 함께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인흥마을의 특징은 좁고, 고불고불하지 않고 네 방향으로 길게 죽죽 뻗어있다는 것이다. 대략 50m가량 될까. 서울 종로 등지에서 볼 수 있는 골목길과는 확연히 달랐다.'

한복디자이너 강민정 씨가 직선으로 뻗은 인흥마을 흙돌담길을 걷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길을 묻기 위해 마침 지나가던 여성 2명에게 말을 걸었다. 알고 보니 2019년 인흥마을로 이사와 사는 서예가 고서영 씨다.

    그는 남평 문씨 문중의 배려로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문씨 문중은 서예가 고씨의 글씨가 마음에 들어 이사를 권했다는 것이다.

    그는 인흥마을 가장 남쪽의 수백당(守白堂) 앞쪽 기와집에 살고 있다. 옛날 양반댁에서 시인과 묵객들을 초청해 머무르게 했던 것과 닮아있다.

    고씨는 이곳 텃밭에서 작품 활동과 더불어 농사를 짓는 '농부작가'다. 제초제를 치지 않고 유기농 채소를 가꾸기 때문에 하루라도 쉴 틈이 없다.

    다음날 고씨 일행의 초대를 받아 광거당(廣居堂)을 방문했다. 광거당은 학생들을 가르치던 학교 역할을 한 건물이다.

    광거당을 방문한 것은 고씨와 함께 만났던 한복 디자이너 강민정 씨가 이곳을 배경으로 자신이 디자인한 한복을 피팅해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씨는 지난해 근처로 이사와 디자인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는 한복 관련 강의를 광거당에서 진행한다. 인흥마을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고씨는 이곳에서 매일 밤 서예 교실을 열고 있다. 그의 안내로 서원이었던 광거당을 비롯해 여러 건물을 둘러봤다.

    역시 서예가답게 글씨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쏟아냈다. 수백당은 소나무와 향나무를 비롯해 철마다 피는 화초가 아름다운 정원이 멋스럽다.'

길게 뻗은 흙돌담 위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수백당 뒤쪽 복도 위에 내걸린 쾌활(快闊)이란 글자다. 말 그대로 글자가 날아갈 듯 쾌활하게 보였다. 알고 보니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이다. 인흥마을에는 김정희의 글이 모두 6점 있다.

    마을에는 이 밖에 민간문고로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도서를 갖춘 인수문고도 있다.

    초저녁을 맞은 인흥마을을 하릴없이 거닐다 보니 한 집의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온다. 양해를 구하고 들어갔더니 한 중년 남성이 장작불을 때고 있다. 불을 지펴 난방을 한다고 한다.

    두서없이 얘기를 나눴다. 서울에서 한평생 직장생활을 하고 귀향했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어봤더니 손사래를 치는 그는 대신 자신이 촬영한 사진을 보여줬다. 얼핏 한두 장을 봤는데 예사로운 솜씨가 아니다. 아마추어 사진작가라고 한다.

    사진 속 길게 죽 뻗은 돌담길 위로 흐드러지게 핀 능소화의 모습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능소화 사진이 그렇게 돋보이는 것은 길게 일직선으로 뻗은 흙돌담길이라는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능소화가 필 때가 가장 아름답다며 6월에 꼭 다시 오라고 말했다.'

마비정마을의 상징 천리마 조형물 [사진/성연재 기자]
 


    ◇ 마비정마을의 돌담길
    인흥마을에서 비슬산 기슭 쪽으로 2㎞만 올라가면 마비정(馬飛亭)마을을 만날 수 있다.

    주차장 입구에 서 있는 흰색 말과 검은색 말 조형이 늠름하다. 조형물은 '천리마'인 수말 비무와 암말 백희를 형상화한 것이다.

    비무가 천리마란 소문이 널리 퍼져 전쟁에 군마로 뽑힐 처지가 되자 백희가 비무 대신 죽었다는 슬픈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비무가 백희 무덤에 약초와 꽃을 둔 덕분에 이 마을은 역병을 비껴갔다고 한다.

    35가구 70여 명이 사는 마비정마을은 인흥마을과 달리 담벼락이 돌담으로 되어 있다. 돌담이 아닌 벽은 1960년대 우리 삶의 모습을 그린 벽화로 장식되면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다.

    2018년 농협중앙회에서 주관한 '제1회 깨끗하고 아름다운 농촌 마을 가꾸기' 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벽화도 벽화지만 상당수의 집 지붕이 초가로 꾸며졌다. 그래서 기와 일색인 인흥 마을이 귀족적이라면 이곳은 서민적인 느낌이 강하게 든다.

    산기슭에 집들이 들어선 덕분에 지대가 낮은 곳을 흙으로 채운 뒤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돌로 옹벽을 쌓았고, 이 옹벽이 자연스럽게 돌담이 됐다. 그래서 한쪽 벽은 낮고, 반대쪽 벽은 높다.'

마비정마을의 돌담벽 [사진/성연재 기자]
 


    마비정마을에는 한복디자이너 강씨 등 3명이 힘을 합해 마련한 작은 마비정 공방이 있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천연 재료로 염색한 한복 등 다양한 제품이 판매된다.

    마비정 공방 맞은편에는 신선한 식자재를 활용한 메뉴를 내놓는 마비정 황토방 식당이 있다. 20년이 넘은 식당이라고 한다.

    이 집 메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부추전이다. 보통 밀가루가 두툼한 다른 식당의 전과 달리, 이곳의 부추전은 밀가루 반죽 비율이 적은 대신 부추가 듬뿍 들었다. 직접 만든 두부도 고소하다.'

인흥마을 주변에서 손님들이 미나리를 삼겹살에 구워 먹는 모습 [사진/성연재 기자]
 


    마을 올라가는 길에는 수십 곳의 미나리 생산 농가가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한 농가로 들어섰더니 마침 손님 서너 명이 삼겹살과 미나리를 구워 먹고 있다. 구수한 삼겹살 냄새와 상큼한 미나리가 익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농부의 안내를 받아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갔더니 초록색의 미나리가 더없이 싱싱하다. 해마다 봄이면 미나리와 삼겹살을 맛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천리마의 약초 덕분에 역병을 이긴 마비정 벽화마을의 스토리를 듣고 푸른 미나리를 보니 상큼하기 그지없다.

    어쩌면 이 신선한 미나리를 먹고 이번 팬데믹도 잘 이겨 나갈 힘을 길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미나리 한 단을 사 들고 차에 올랐다.'

사문진 나루터의 피아노 조형물 [사진/성연재 기자]
 


    ◇ Information
    인흥마을과 마비정마을을 여행하려면 인흥마을에서 3㎞ 거리의 화원자연휴양림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마비정마을에도 군불을 때 방을 덥히는 황토방이 있어 두 마을을 오가는 데 편리하다.

    인흥마을에는 음식점과 숙소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피아노가 최초로 전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낙동강 사문진 나루터, 인흥마을 인근에 있는 대구수목원도 한번 들러볼 만하다.

    또 수목원 앞의 베이커리는 전국의 '빵지순례' 코스에 들 정도로 인기가 높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4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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