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칼럼]달라이라마 리스크, 감수해야할 이유 있을까

연합신보 | 기사입력 2013/07/03 [14:58]

[하도겸 칼럼]달라이라마 리스크, 감수해야할 이유 있을까

연합신보 | 입력 : 2013/07/03 [14:58]

[하도겸 칼럼]달라이라마 리스크, 감수해야할 이유 있을까
 
 
 
 
 
 
하도겸 박사의 ‘히말라야 이야기’ <16>

2011년 7월 티베트 망명정부의 여성 지도자 린첸 칸도(66) 총재는 2007년 8월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을 찾았다. 1984년 티베트여성연합(TWA)을 창립해 티베트의 여성, 어린이, 교육, 환경, 복지, 망명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티베트 망명정부에서는 장관이 된 두 번째 여성이다. 1993년 내무부와 보건부 장관, 1995년부터 2001년까지 교육부 장관으로 10여 년간 정부 내각에서 활동했다. 지금도 티베트 여승들의 ‘대모’로 티베트여성수행자프로젝트(TNP: Tibetan Nuns Project) 총재로 티엔피 사원에서 700여 명의 여승과 수행하고 있다.

지난해 5월 19일 그녀는 여성 승려에게도 불교학박사에 해당하는 게시마(Geshema Degree)를 수여할 수 있게 하는 역사적 결정을 달라이라마 존자를 비롯한 비구 스님들에게 받아내기도 했다. 명실상부한 달라이 라마의 참모로서 최초의 여성 수행자 사찰인 돌마링을 비롯해 여성 수행자 절 5곳을 건립하는 등 스님들 이상의 활동을 했다. 여성의 자비심으로 만드는 평화로운 세상을 역설하며, 여성 수행자 교육과정을 만들어 가부장적 종교 전통 속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여성 수행자의 비구니 지위를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지금으로부터 20년 전만 해도 티베트에서 넘어온 여성수행자들은 자고 먹을 수 있는 곳, 교육받을 수 있는 곳도 없이 열악한 생활을 해야 했다. 자신의 이름조차 쓸 수 없는 여성수행자들이 많았다. 저는 단지 한 명의 ‘어머니’로서 그들을 돕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그녀는 말한 바 있다. 이는 단지 티베트 망명한 여성수행자들만의 현실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이유는 지금도 티베트 불교 내에는 여승을 위한 교육체계가 제대로 없을 뿐만 아니라 여승에게 주는 계율인 비구니계조차도 도입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지금도 일부 티베트인 가정은 가부장적 전통이 강해 대부분 티베트 여성은 제대로 교육도 받을 수 없다. 집안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것으로 강요받고 있기도 하다.

2011년 7월 6일 오후 서울 AW 센터(옛 하림각)에서 열린 달라이라마의 생일 축하연과 티베트 하우스 개관식 행사에 맞춰 달라이라마의 막냇동생이자 자신의 남편인 텐진 최겔 나리 린포체와 함께 그녀가 출석했다. 결국, 부인이 없는 달라이라마를 염두에 둔다면 그녀는 여전히 티베트망명정부의 사실상의 퍼스트레이디인 셈이라고 해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주인공 없는 생일 파티’를 아쉬워하며, “달라이 라마는 한 나라가 아니라 온 인류 전체에 속해 있는 존재로 그를 만날 기회를 주는 것은 인권 차원에서 고려돼야 한다. 한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가 중국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느꼈다. 달라이라마는 위협적 존재가 아니다. 정치가가 아니며 종교지도자고 정신적 지주일 뿐이다. 한국은 달라이라마의 메시지가 필요하다. 한국정부가 좀 더 용기를 내줬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하지만 달라이라마를 초청하면 최근의 영국의 예처럼 한국정부는 ‘달라이라마 리스크’를 각오해야 한다. 지금처럼 우경화하고 있는 일본정부를 정신 차리게 하면서 북 핵 등에 대해서 독도문제와 같이 단호한 모습을 견지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협조가 매우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중국에 있어서 우리 독도문제와 같은 티베트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성과로도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외교에서 충분히 G2로 성장한 중국의 무게감을 실감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제14대 달라이라마 정말 훌륭한 수행자이며 종교지도자임에도 정치적, 경제적으로 중국의 협조를 받아야 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매우 위험한 사람임은 부정할 수 없다.

매년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나 가까운 일본으로 수많은 한국인 불자가 전세기까지 빌려 이른바 ‘달라이라마의 한국인을 위한 티칭’을 들으러 가고 있다. 그러한 사적이고 종교적인 만남을 한국정부는 막을 이유가 없다. 달라이라마를 한국에서 못 만난다는 사실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우리 정부에게 용기를 더 내라고 하면서 인권침해까지 운운하는 것은 오버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 우리는 앞으로 통일을 향한 한반도신뢰프로세스의 진전과 한중간의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달라이라마를 못 부르는 게 아니라 달라이라마 스스로 우리가 부를 수 없게 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구분해서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아니 통일을 향한 중차대한 시점에서 굳이 달라이라마를 불러서 달라이라마 리스크를 감수해야 할 이유는 없다. 지난해 11월 대만까지도 달라이라마의 방문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어쩌면 티베트망명정부가 아닌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위해서 달라이라마는 우리나라도 달라이라마 리스크를 걱정하지 않고 부를 수 있게 먼저 변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역설적으로 주장하고 싶다. 티베트를 비롯한 소수민족의 독립은 중국의 분열 없이는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을 중국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이미 충분히 배웠다.

이처럼 지금과는 다른 코페르니쿠스적인 입장변화를 하지 않는 한 달라이라마는 아무리 티베트망명정부의 수반을 이미 그만뒀다고 외치더라도 중국에 그것은 표면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지난 6월 29일 중국 국가종교사무국은 “달라이 라마에 대한 우리의 정책은 분명하고 일관되며 변하지 않았다. 달라이 라마가 중국 정부와의 관계를 개선하려면 분리주의자로서의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우리나라도 달라이라마 방한 문제로 여러 번 고민을 한 바 있다. 특히 2009년 5월에는 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주최하는 세계종교지도자대회와 김대중도서관 주최의 노벨평화상수상자 광주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주인도 한국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했으나 발급이 거부됐다고 한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자국 언론을 통해 한국을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정책에 적극 협력한 모범 사례’로 평가했다고 전한다. 누구나 쉽게 ‘씁쓸한 외교 현실’이라고 한마디 할 수 있다. 하지만 근대 조선 시대 명과 청 사이에서 성공적인 중립·실리 외교로 광해군은 폭군이 아닌 개혁군주로 역사상 재조명되고 있다.

달라이라마를 부르지 않는 것이 정말 인권침해이며, 인류 보편의 가치를 저버리는 것이며, 또한 외교적인 굴욕인지 다시 살펴봐야 한다.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우리 정부가 국익을 위해서 판단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전혀 틀리지도 않았는데 왜 그리 비난받아야 하는지 되묻고 싶다. 달라이라마 방한을 통해 우리가 얻는 것과 잃을 것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저울에 재고 나서도 계속해서 그렇게 외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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