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할리우드 영화 데이브와 75% 유사"…서사
연합신보 | 입력 : 2012/11/13 [20:46]
"광해, 할리우드 영화 데이브와 75% 유사"…서사
이재훈 기자 = "소설의 21개 장에 많은 모티브를 넣었습니다. 스릴러와 추리, 판타지, SF 등 4가지 장르를 동시에 집어넣는 등 지금까지 봤던 익숙한 모티브에 익숙한 이야기죠. 하지만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겁니다."
2004년 '하비로' 이후 8년 만에 신작 소설 '지옥설계도'를 펴낸 작가 이인화 교수(46·이화여대 대학원 디지털미디어학부)는 "8년 동안 게임 폐인으로 살았다"면서 "게임 속에서 늘 접했던 말 못할 무의식과 꿈, 희망을 전달해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베스트셀러 '영원한 제국'으로 한국적 팩션의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은 이 교수는 2003년 온라인게임 '리니지'를 통해 디지털 세계에서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디지털미디어학부를 창설하는 등 지난 10년 간 디지털 시대의 서사와 문학을 융합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소설과 게임의 본질을 동시에 꿰뚫고자 한 '지옥설계도'는 그러한 모색의 하나다. 내년 초 미국 크루인터랙티브가 출시하는 웹전략게임 '인페르노 나인(Inferno Ⅸ)'의 원작소설이기도 하다.
"2003년 디지털미디어학부를 만들 당시 뉴미디어는 PC였습니다. 이제는 모바일이죠. PC가 올드미디어가 됐어요. 당시에는 온라인게임이 주류였는데 이제는 모바일의 '팡'류 게임이 주류가 됐습니다. 너무나 빨리 매체가 변하는 시대죠. 종합베스트셀러 차트에 소설이 없는 시대에 어떻게 하면 소설이 읽힐 수 있을까 고민하다 이란 작품을 내놓게 됐습니다."
소설은 대구의 호텔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사건을 다룬다. 한때 정예요원이었으나 퇴출 직전으로 내몰린 담당 수사관 '김호'는 현장에서 정교한 조작의 흔적을 간파한다.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보통사람보다 10배 이상의 지능을 가진 강화인간과 범국가적 조직 공생당이 배후에 있음을 알게 된다.
강화인간들에 대한 연쇄테러에서 심각한 위험을 감지한 '안준경'은 살인범의 단서를 찾기 위해 죽은 '이유진'이 만들어낸 최면 세계 '인페르노 나인'(지옥 9층)으로 내려간다. 인페르노 나인의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반란군의 혁명을 이끌게 된다. 그러나 이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인페르노를 파괴하지 않고 현실로 돌아가려면 '지옥의 설계도'가 필요하다.
"모든 악을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개혁세력의 등장에 대해 미국과 중국 등 기존의 국민국들이 어떻게 대응할 지 생각한 것이 상상의 시작이었습니다. 관찰자인 한국의 시각을 담으려 했죠."
독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소설을 쓰고자 했다. "이번이 열아홉번째 작품인데 남들이 쓰지 않은 소설을 써보려고 했어요. 독자들이 전개를 추측할 수 없는 소설이요. 그러다 4개의 장르가 복합적으로 섞이게 됐죠. 보통 소설 하나를 쓰는데 18개월 정도가 걸리는데 이번 소설은 9개월 밖에 안 걸렸어요. 작가로서 쓰는 동안 행복했던 작품입니다."
'지옥설계도'는 이 교수가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에서 개발 중인 디지털 스토리텔링 저작 지원도구 '스토리헬퍼'를 활용했다. 내년 3월에 한국어를 쓰는 작가들을 위해 무료로 배포할 이 프로그램은 205개의 스토리 모티프와 2300여편의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철저히 분석, 추출한 3만4000여개 모티프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저작도구다. 각각의 모티프를 입력했을 때, 전개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보여준다.
"영화·게임 스토리를 만들기 위한 도구인데 소설에도 적용시키려고 연구 중입니다. 스토리헬퍼에서 제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와 55% 이상 비슷하다고 하면 쓰지 않았어요. 55% 이하로 나올 때만 썼죠."
이 프로그램에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와 할리우드 영화 '데이브'(1993)를 적용시켰더니 약 75%의 서사가 비슷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아바타'와 '늑대와 춤을'은 87%가 비슷했으니 '광해' 같은 경우는 양반이죠. '최종병기 활'과 '아포칼립토'도 79%가 비슷했어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스타워즈 에피소드 4'는 80% 이상이 비슷하다고 나왔죠."
이 교수는 이러한 분석 결과를 통해 서사 패턴은 결국 한정됐다면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 '맥베스' 같은 불멸의 캐릭터가 새로운 것이라고 여겼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자체에는 독특한 플롯이 없다. 그 시대에 대한 작가의 독창적인 디테일과 사회와 인생에 대한 통찰이 작품을 새롭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발상의 전환을 이뤘으나 다소 거친 미국 SF 작가 필립 K 딕의 '유빅', 너무 아름다워서 우리 세계 이야기 같지 않은 영국 작가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조화시켜 자신의 작품이 "좀 더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어내려고 했다"고 알렸다.
이 시대의 매체는 심리 예술를 파고드는 '예술가의 초상'의 아일랜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풍이 아닌 '채털리 부인의 사랑' 같이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영국 작가 데이비드 허버트 로런스풍의 작가를 요구한다고 봤다. "콘텐츠보다 데이터 베이스를 파는 시장입니다. 공짜로 게임을 할 수 있지만 아이템은 돈 내고 사야하잖아요. 이런 흐름 속에서 공간성과 실제성이 보장이 안 되면 독자에게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독자들은 완결된 것에 대한 내면의 공포가 있어요."
이 시대의 문제는 일국에 한정된 것이 아닌 행성 전체의 문제라고 판단했다. "우리나라만 잘 되면 되지라는 마음을 버려야 해요. 8년 간 온라인게임을 하다보니 제 동생이 한국뿐만 아니라 싱가포르에도 있고 두바이에도 있는데 빈부격차 등 다들 느끼는 것이 똑같더라고요. 그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그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무늬가 보이는데 그 부분을 표현하는 것이 소설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515쪽, 1만5000원, 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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