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로제타 플랜' 청년고용촉진, 어디까지 왔나

연합타임즈 | 기사입력 2015/11/10 [09:44]

'한국판 로제타 플랜' 청년고용촉진, 어디까지 왔나

연합타임즈 | 입력 : 2015/11/10 [09:44]
【서울=연합타임즈】최동영 기자 = '로제타 플랜(Rosetta Plan)'. '청년고용할당제' 또는 '청년의무고용제'라고도 불린다.

1999년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벨기에 영화 ‘로제타’(감독 장-피에르 다르덴, 뤼크 다르덴)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즈음 벨기에는 졸업생 50%가 취업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실업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정부는 청년 실업 문제를 고발한 ‘로제타’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자 이듬해 ‘종업원 50명 이상 기업은 의무적으로 고용 인원의 3%를 청년으로 채워야 한다’는 정책을 펼친다.

효과는 있었다. 제도 시행 첫해 벨기에는 5만여 건의 고용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이를 지키지 않은 기업에 미채용 청년 1인당 하루에 3000프랑의 벌금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대신 할당량을 채운 기업에는 건강보험료와 고용보험료 등 사회보장기여금을 감면해줬다.

◇공공기관 4곳 중 1곳, 청년고용할당제 안 지켜

한국에서도 로제타 플랜이 가동되고 있다. 공공기관 및 지방공기업이 정원의 3%를 청년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청년고용촉진 특별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원래는 노력 규정이었는데 2013년 5월 의무 규정으로 바뀌었다. 다만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한국도 ‘당근’과 ‘채찍’을 내세우고 있다. 청년고용 할당량을 채운 공공기관에 조세 감면이나 보조금 지원을 해줄 수 있다. 반면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공공기관에 대해 명단을 공표하고, 경영실적 및 경영평가에 반영한다.

한국판 로제타 플랜의 효과를 따지기는 이르다. 의무 대상에 민간 기업이 빠져 있는 데다 정작 공공기관조차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의무 대상 공공기관·지방공기업은 391곳이었는데 이 중 할당량을 채운 곳은 291곳(74.4%)이었다. 법적 의무규정인데도 이를 지키지 못한 곳이 100곳(25.6%)에 달했다. 특히 지방공기업의 의무 이행 기관 비율은 54.5%로 공공기관 83.3%에 비해 매우 부진했다.

그나마 예년보다는 나아진 것이다. 2012년엔 401곳 중 193곳(48.1%), 2013년엔 413곳 중 212곳(51.3%)만이 청년고용 할당제를 지켰다. 절반 안팎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제도가 본격 시행된 지난해 공공기관·지방공기업 4곳 중 1곳이 법을 어기고 청년고용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청년고용의무 미(未)이행 기관으로 공표한 곳은 울산항만공사, 한국관광공사, 한국마사회, 한국조폐공사, 한국철도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기업 6곳을 비롯해 대한지적공사, 도로교통공단, 한국시설안전공단 등 준정부기관 12곳, 한국건설관리공사, 대한체육회, 코레일유통, 코스콤, 한국정책금융공사,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기타공공기관 27곳 등이다. 지방공기업 중에선 일부 지역 도시공사와 개발공사, 시설공단 등 지방공사 29곳과 지방공단 26곳이 포함됐다.

◇"청년고용절벽 해소 기여" vs "역차별" 

이 제도를 바라보는 시각은 양분된다. 청년실업 해소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와 중·장년층, 다른 응시자 등을 역차별한다는 평가가 공존한다.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쪽은 의무 대상을 넓혀 제대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지난 4월 ‘고용할당 비율을 5%로 확대하고 300인 이상 대기업도 적용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의 특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과의 여야 대표 5자 회동에서 특별법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대기업도 청년 고용을 늘리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쪽은 역차별 문제를 제기한다. 이 법에서 정한 공공기관 고용 대상 ‘청년’의 나이는 15세부터 34세 이하다. 공공기관 정원을 100명이라고 가정한다면 채용 인원이 3명을 넘어야 35세 이상 응시자에게 기회가 돌아간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에 취업하려던 35세 이상 구직자들은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과 직업 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같은 맥락에서 중·장년층, 더 나아가 장애인,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역차별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9월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청년실업 해소는 매우 중요한 공익”이라며 “제도가 일정 규모 이상 기관에 한시적으로 적용되고, 전문직 채용 등에서 예외를 두고 있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재판관 4명은 “일자리 창출 없이 한정된 일자리를 청년층으로 채우는 것에 불과해 청년실업 해소의 근본 대책이 되지 못한다”며 “고용에서 연령으로 차별하는 것은 헌법에 반한다”고 반대 의견을 냈다.

◇“민간기업·할당량 확대해야…사회적 합의 필요”

통계청의 ‘9월 고용동향’ 조사를 보면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올해 최저치인 7.9%대로 나타났다. 그러나 일자리의 질은 낮아졌다. 한 달 이상 취업 활동을 하지 않아 ‘구직 포기자’로 분류된 인원도 48만8000여명에 이른다. 시간 관련 추가취업자, 잠재취업가능자, 잠재구직자 등 통계에서 누락된 인원도 상당수다. 어떤 조사에선 청년 체감실업률이 20%를 훌쩍 넘는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3포 세대’, 여기에 내 집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하는 ‘5포 세대’, 꿈과 희망마저 내려놓는 ‘7포 세대’…이것도 모자라 모든 것을 포기하는 'n포 세대'까지 등장했다. 자신을 n포 세대라고 생각한다는 2030세대가 70%에 육박한다는 조사결과까지 나온 상황이다. 이 모든 것이 고용절벽이라는 불안감, 그리고 현실에서 출발한다.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으며 한 달이 멀다고 청년일자리 정책을 내놓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민간 기업에도 청년고용 창출을 독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청년의무고용제가 청년 고용절벽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적용 대상을 민간 기업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사회적 합의는 필요해 보인다. 저성장·고령화 속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는 방식이어선 안 된다는 설명이다. 또 여건을 만들어주지 않은 채 무작정 강제 할당을 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주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동계 관계자는 “정부가 다양한 청년일자리 정책을 내놓고 있으나 실효성 있는 제도를 힘 있게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그는 이어 “공공기관과 공기업이 정책을 이행하는 데 앞장서는 한편 세제 혜택 등으로 민간 대기업의 자발적인 참여를 우선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필요하다면 한시적으로 노동시장에 개입해 강제 할당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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