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정명훈 사태, 여기에 '음악'은 없었다

연합타임즈 | 기사입력 2015/12/30 [08:49]

[초점]정명훈 사태, 여기에 '음악'은 없었다

연합타임즈 | 입력 : 2015/12/30 [08:49]
이재훈 기자 = 정명훈(62) 예술감독이 29일 서울시립교향악단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그 배경에 대해 궁금증이 일고 있다. 

지난해 말 박현정(53) 전 서울시향 대표이사가 막말·성희론 논란으로 서울시향 사무국 직원·단원들과 갈등을 빚으면서 동시에 박 전 대표가 제기한, 정 감독에 대한 고액 연봉 논란과 항공료 횡령 의혹 등이 불거졌다. 박 전 대표와 서울시향 직원들 간 반목이 박 전 대표와 정 감독의 반목으로 변질된 것이다. 

정 감독이 이에 대해 수차례 해명하고 서울시가 "정 감독 위법 없음"으로 결론내렸으나 일부 시민단체 등이 정 감독을 횡령 의혹으로 고발(수사 진행)하면서 여진이 이어졌다. 

정 감독은 이에 대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8월27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가만히 있었더니, 엉뚱하게 일이 돌아갔다"고 했다. 지난해 말 1년 연장 계약을 해 올 연말 계약 기간이 끝나는 예술감독 직의 "재계약 서류에 사인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꾸준히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단원들 역시 그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쓰면서 재계약을 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정 감독이 재계약 조건 중 하나로 내걸었던 서울시향 전용 콘서트홀 건립을 위한 용역 공모 예산(7억원)이 우여곡절 끝에 서울시의회가 내년 예산안에 반영한 점도 정 감독과 재계약하겠다는 서울시의 의지로 읽혔다. 서울시향 이사회가 28일 오전 세종문화회관 사무동에서 정 감독이 임기 3년의 예술감독직을 이어가는 내용의 '예술감독 추천 및 재계약 체결(안)'을 상정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계약에 힘이 실렸다. 

그러나 27일 부인 구모(67)씨가 서울시향 일부 직원들을 통해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도록 지시한 혐의(명예훼손)로 지난 21일 불구속 입건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부정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구씨는 정 감독의 매니저다. 외부와 통신할 수 있는 기기를 잘 이용하지 않는 정 감독의 눈과 귀였다. 정 감독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이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흘러간 것이다. 

그래도 일부에서는 그의 재계약 가능성이 점쳐졌다. 3년 계약기간이 무리가 따르니 1년 재계약이 유력했다. 하지만 그에게 호의적이던 서울시와 서울시향 이사회에서도 난기류가 흐르면서 재계약이 무산되리라는 관측도 흘러나왔다. 이를 떠나 서울시향 이사회가 내년 1월 재계약을 논의하겠다고 밝힌만큼 그의 재계약 여부는 다음달로 넘어가는 사안으로 보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 감독이 서울시향 단원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돌연 사퇴의사를 밝힌 것이다. 평소 음악밖에 모르는 것으로 알려진 정 감독은 마음에 상당한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와의 갈등을 '인권 침해'로 규정했던 정 감독은 편지에 "우리의 서울시향의 경우처럼 전임대표에 의해 인간으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인간의 존엄한 존재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한 17명의 직원들"을 언급하며 "지금 발생하고 있고, 발생했던 일들은 문명화된 사회에서 용인되는 수준을 훨씬 넘은 박해였는데 아마도 그것은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허용될 수 있는 한국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썼다. 

정 감독은 결국 재계약 여부와 상관 없이 청중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며, 여러 비난 여론에도 지휘하기로 했던 내년 서울시향 정기공연(9차례)도 모두 취소했다. 낮 12시께 서울시향 최흥식 대표를 만나 의사를 직접 전했다.

클래식계에 따르면 정 감독의 서울시향 예술감독 직은 조국에 대한 봉사의 의미가 컸다.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그는 467년 전통을 자랑하는 독일의 오케스트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SKD)의 2012~13 시즌부터 이 악단이 처음 제정한 수석 객원지휘자, 지난 6월에는 15년 간 잡아온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봉을 내려놓으면서 이 악단 역사상 처음으로 명예 음악감독으로 추대됐다. 

정 감독은 "내가 여태껏 살아왔던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결국에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나는 절대적으로 믿는다"고 전했다. "여러분의 음악감독으로서의 일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유감스럽다. 그렇지만 내가 앞에서 얘기했다시피 음악보다 중요한 게 한 가지 있으니 그것은 인간애다. 이 인간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여러분과 함께 음악을 계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이달 31일 임기가 끝나는 정 감독은 30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서울시향의 '정명훈의 합창, 또 하나의 환희'를 끝으로 서울시향을 완전히 떠난다. 2005년 예술고문으로 영입된 뒤 2006년부터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맡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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