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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선 사람들] 자살률 낮춘다면서 관련 예산 되레 삭감.. 예방 '헛구호'
 
정책평가신문   기사입력  2017/05/22 [09:28]
[벼랑 끝에 선 사람들] 자살률 낮춘다면서 관련 예산 되레 삭감.. 예방 '헛구호'


韓·日 예산 및 정책 비교해보니
지난 20년간 웬만한 중소도시 인구보다 많은 22만257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국가 차원에서 자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정부의 대응은 안이했다. 이에 세계일보는 대한민국이 ‘12년 연속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 ‘자살 공화국’ 등의 오명을 벗지 못한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봤다. 특히 ‘가정의 달’인 5월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 수가 가장 많은 점에 주목해 ‘벼랑 끝에 선 사람들’ 시리즈를 5회 연재한다.


‘2조1963억원’

최근 5년간(2012∼16년) 한국과 일본 자살 관련 예산의 차이다. 한국이 318억원을, 일본은 2조2281억원을 투입했다. 지난해만 놓고 보면 일본의 예산(7927억원)은 한국(85억2600만원)보다 100배 가까이 많았다. 한국의 자살 문제가 일본보다 심각한데도 이 모양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한국은 2003년 이후 쭉 자살률 1위를 기록했다. 2015년 한국의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26.5명, 일본은 2012년(19.1명) 이후 10명대로 떨어졌다.

정확히 양국 정부의 관심과 의지의 차이다. 자살의 심각성은 우리 사회에서 상식이 되었고, 정부는 항상 개선하겠다며 떠들어댔지만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자살 문제는 투자한 만큼 개선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을 전제로 하면 역대 정부에 개선 의지가 있기는 했는지 묻게 된다. 과감한 투자로 최근 10년 동안 1만명 이상 자살자 수가 낮아진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의 현실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 日, 총리실 내각부서 지휘 vs 韓, 담당공무원 달랑 2명

21일 중앙자살예방센터에 따르면, 자살예방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지난해 자살 관련 예산은 85억원에 불과했다. 쥐꼬리만한 예산인데 이마저도 2015년 89억원에서 깎인 것이다.

2008년 144억엔(한화 약 1445억원)을 자살예방예산으로 편성한 일본은 2012년 326억엔(3262억원)으로 두 배 이상 늘린데 이어 2015년(7344억원), 지난해(7927억원) 더욱 늘렸다.



조직 활용, 인력면에서도 차이가 분명하다. 복지부의 자살예방사업 담당자는 4급, 6급 공무원 2명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별도의 조직 없이 정신건강정책과 내에서 자살예방 이외의 업무들을 맡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이 이러니 범부처 협력은커녕 예산을 따오는 것도 버거운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일본은 2006년 10월 자살대책기본법 마련 뒤 후생노동성이 담당하던 자살예방사업을 이듬해 총리실 산하 내각부로 이전시켰다. 2009년 꾸려진 자살대책 긴급전략팀(내각부)에는 권위있는 연구자들을 비롯해 전 사민당 당수 후쿠시마 미즈호 특임장관 등 내각부 고위각료들이 참여했다.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주무부처의 위치가 높아졌고, 자연스레 각종 예산을 얻거나 투입하기 수월해졌다.

후생성이 지난해 다시 자살예방 주무부처가 되면서 혼란을 예상하는 목소리가 있기도 했지만 이미 인프라가 안정적으로 구축된 상황이어서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 “아직 부족하다” 日, 대대적 강화 예고

또 하나 짚어야 할 것이 자살 관련 정책의 충실성이다.

우리의 경우 2012년 자살예방법을 시행하면서 당시까지 임의로 만들던 자살예방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도록 강제했다. 하지만 2차 계획(2009∼13년) 이후 아직까지 자살에 관한 국가차원의 종합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2014∼15년 2년 동안은 아예 ‘공백’ 상태였고, 지난해에 정신질환, 중독 등 까지 포괄한 ‘정신건강 종합대책’의 하위 부분으로 자살을 포함시킨 게 전부다.



자살 문제는 지금처럼 단순히 정신건강, 의학적 접근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본 역시 2000년 후생성이 ‘21세기 국민건강 만들기 운동’에 자살예방책을 포함시켜 2010년까지 자살자를 2만2000명 이하로 줄이려 했으나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전 분야에 걸친 ‘자살종합대책대강’이 만들어졌다.

후쿠시마 원전폭발, 경제위기 등 여러 악재가 겹친 일본은 최근 수년 동안 자살예방사업을 확충하고 있다. 후생성은 최근 자살종합대책 연구보고서를 공표하며 올해 여름 자살예방 대책의 대대적인 강화를 예고했다. ‘삶의 포괄적인 지원’ 등으로 정의된 현재의 개정자살대책법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세부적인 자살요인 분석, 지역사회 연계, 인터넷 활용 방안 등 구체적인 내용을 보강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후생성은 지난해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응답이 23.6%로 나타나 2008년(19.1%), 2012년(23.4%)에 비해 높았다”며 고강도 대책 마련을 예고한 바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자살예방협회의 한 관계자는 “역대 정권마다 말로만 강조하는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국가가 정말 자살률을 낮출 의지가 있는 건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자살예방대책추진위원장을 맡았던 강지원 변호사는 “2012년 자살예방법 시행 전에는 예산을 확보할 법적근거가 없어 예산 마련 자체가 힘들었다”며 “법이 있는 지금도 예산이 턱없이 모자르다”고 지적했다. 이어 “1개 사단병력 규모의 인구가 매년 사라지고 있는 국가차원의 비상사태인데도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있다”고 질타했다.



◆ 자살 대책, 뿌린 만큼 거둔다

전문가들은 자살 문제에 대해 ‘투자=개선’이라고 진단한다. 제자리 걸음인 한국, 뚜렷한 결실을 거둔 일본의 상황은 이런 진단이 틀리지 않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10만명 당 자살자 수가 23.7명이었던 2004년 ‘1차 자살예방종합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사업이 끝난 2008년 26명으로 되레 늘었다. 2009년 ‘2차 자살예방종합대책’이 시행됐지만, 2011년 역대 최고인 31.7명을 기록하는 등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일본은 달랐다. ‘버블경제’가 붕괴되면서 맞이한 경제위기 등으로 일본의 자살 문제는 심각한 수준으로 치달았다. 1998년 자살자 3만2000명을 넘어선 뒤 2000년대 들어 10년 넘게 3만명을 웃돌았다. 자살의 심각성을 절감한 일본은 2007년 국가차원의 종합자살예방대책을 마련했고, 예산, 인력 등을 집중 투입해 자살자를 크게 줄이는 데 성공했다.

2012년 자살자 수(2만7000명)를 15년만에 2만명 대로 낮췄고, 지난해 2만2000명 아래로 떨어뜨렸다.

경희대 백종우 교수(정신건강의학)는 “일본은 투자를 대폭 늘리면서 지난 10년 동안 자살률을 크게 줄였다”며 “자살률은 한번 높아지면 낮추기가 무척 어렵다. 정부의 인식 개선, 관련 예산 증액, 범부처 협력 등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사회부 경찰팀=강구열·박현준·남정훈·박진영·김범수·이창수·배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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