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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역사 '금통위 회의실' 옮긴다
 
정책평가신문   기사입력  2017/06/08 [21:15]
30년 역사 '금통위 회의실'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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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17.02.23.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의사봉을 세번 두드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장소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엔 당시 이경식 총재와 최연종 부총재가 번갈아가며 수차례 대책회의를 가졌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덮쳐왔을 땐 이성태 당시 총재 주재 금융통화위원회 회의가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30년간 통화정책 결정이 이뤄진 한국은행 본관 15층 금통위 회의실이 8일 회의를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리모델링 때문에 한국은행 중구 남대문로에 위치한 본관 건물이 3년 간 사용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회의실은 리모델링 후엔 16층에 새로 자리잡게 된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IMF 외환위기를 비롯해 최근 금융위기 때 한국은행의 조치가 모두 이 곳 금통위 회의실에서 이뤄졌다"며 "은행감독 업무를 한국은행이 했던 시기에는 의안이 훨씬 많았다"고 회고했다.

 한국은행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독립성을 보장받게 됐고 대신 은행감독 기능도 지금의 금감원으로 넘기게 됐다.

 한국은행 본관 건물 15층에서 진행됐던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는 앞으로는 서울 중구 태평로에 위치한 삼성본관 17층 대체 회의실에서 갖게 된다.

 리모델링이 끝나는 2020년 하반기(예정)에는 다시 본관에서 회의를 열 수 있다. 다만 현재 있던 15층이 아닌 본관 16층에 금통위 회의실이 설치될 예정이다.

금통위 회의실 위치를 옮긴 것은 지금까지 총 5번이다. 삼성 본관으로 옮기게 되면 6번째 역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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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등이 2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금통위 회의실 이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처음 회의였던 1950년 6월 5일(1차) 회의는 현재는 화폐박물관으로 사용되는 건물(본관 앞) 2층에서 열렸다. 4차(6월14일) 금통위 회의까지 이곳에서 열렸다.

이후 6월 25일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금통위 회의가 일시 중단됐다. 당시 한국은행은 임시본부를 대전에 설치했지만 전황이 악화됨에 따라 대구, 부산을 이전하는 아픔을 겪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1950년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면서 한국은행도 다시 서울로 복귀하게 된다. 10월 1일부터 업무를 재개했지만 화폐박물관 건물이 전소돼 금통위 회의는 당시 저축은행 본점이던 SC제일은행 제일지점에서 열었다. 

 하지만 다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선이 남하하면서 한국은행은 1951년 1월 6일 본점을 현재 부산근대역사관으로 이전하게 된다. 금통위 회의도 1953년 7월 까지 이 곳에서 열렸다.

한국은행은 1953년 8월 휴전 이후 서울로 다시 복귀 했지만 화폐박물관이 복구될 때까지 현재 SC제일은행 제일지점에서 금통위 회의를 개최했다.

1958년 1월 화폐박물관 건물이 복구된 이후 부터는 약 30년 동안 이곳 2층에서 금통위 회의를 열었다.

그러다 현재 본관 건물이 준공된 1987년 금통위 회의실을 옮기게 돼 올해 6월까지 30년 간 금통위 회의를 가졌다.

현재 금통위 회의실 총재 자리 뒤에 걸려 있는 제1차 금융통화위원회 회의(1950년 6월 5일) 장면을 그린 그림은 3년 동안 사용하는 삼성본관으로 가져가지 않는다.

삼성본관의 천장이 낮아서 벽에 그림을 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3년 동안 화폐박물관 창고에 보관된다. 3년 후 마련되는 본관 16층 금통위 회의실에 걸게 된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초대 금통위 위원들이다. 회의를 주재한 최순주 당시 재무부장관을 비롯해 구용서(한국은행 총재), 장봉호, 하상용 이정재, 윤보선, 홍성하 위원 등 7명 정위원과 대리위원인 김교철, 임문환, 이종현, 김도연, 기타 참석자 송인상, 장기영 등 총 13명이 그려져 있다.

1차 회의 장면을 촬영한 사진이 사라져 당시 참석자들의 기억을 토대로 서울대 미대 김태 명예교수가 그렸다. 그림에 등장한 인물은 현재 모두 고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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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6/08 [21:15]  최종편집: ⓒ 정책평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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