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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어머니 "수많은 촛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아"
 
정책평가신문   기사입력  2017/06/08 [21:22]
이한열 어머니 "수많은 촛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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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울삶에서 '6.10항쟁 그날을 회상하며' 뉴시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배은심 여사 인터뷰···30년 아픔 사그라들지 않아 눈시울
촛불집회 수차례 참석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울컥"
"한열이 죽음 얘기할 때마다 내겐 고문이지만 기억해주길"
영화에서 이한열 역 맡은 강동원에 "이제 내 아들 다름없다"
"반성없는 전두환 짐승만도 못해···용서할 마음 추호도 없어"
"文정부, 국민 무서워하며 정치해야···촛불이 지켜보고 있다" 


"작년 겨울 광화문에 나가보니 한열이 또래 사람들이 많았어. 난 특히 20대, 50대들이 유독 눈에 보이더라고. 아마 한열이가 떠났을 때 나이가 20대였고, 지금 살아있다면 50대여서 그랬나봐. 수많은 촛불을 보니 '우리 한열이 죽음이 헛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에 울컥했지."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민주화유가족협의회(유가협) 사무실인 '한울삶'에서 만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77)여사는 "촛불집회에 참석할 때마다 아들 생각이 더 많이 났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자식을 먼저 앞세운 부모의 설움은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도 거둘 수 없는 한(恨)으로 남아 있다.

 "집회 분위기가 80년대와는 확연하게 달라졌더라고. 놀라울 정도로 평화로웠으나 사람들의 염원은 어느 때보다 강하게 느껴졌지. 그 옛날 한열이와 같이 최루탄을 마셔가면서 투쟁했던 젊은이들이 어느덧 머리가 희끗해진 중년이 돼서 참석했더라고. 내 아들은 이 세상에 없지만 많은 이들의 가슴에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살아있는 것에 너무나 감사했어."

 ◇'네 원수는 내가 갚아 줄게'··· 정의감 남달랐던 이한열
 
 배 여사는 아들이 떠난 지 30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6월의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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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서울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30주기 특별기획전에서 이한열 열사의 피격 전후의 상황이 담긴 미공개 사진이 전시돼 있다.  '2017이 1987에게'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전시는 다음 달 8일까지 연세대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되며 이 열사의 최루탄 피격 전후의 모습이 담긴 컬러사진이 최초로 일반에게 공개된다.


1987년 6월9일 연세대 경영학과에 다니던 이한열(당시 21세)열사는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서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쓰러졌다. 이 사건은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어 그해 6월29일 대통령직선제 개헌의 초석이 됐지만 그는 7월5일 끝내 숨졌다.

 2남3녀를 둔 배 여사는 넷째 자식이자 큰 아들인 이 열사를 향한 사랑이 남달랐다. 그는 이 열사가 어릴 적부터 아들, 형 역할을 톡톡히 하고 타고난 리더십과 사교성으로 친구들이 많이 따랐다고 회상했다.


 "한열이는 어릴 때부터 불의를 보면 못 참았어. 남편은 다섯 형제 중 한열이가 유독 자신을 빼닮아서 그리 예뻐했는데···. 남편이 한열이 먼저 보내고 화병으로 앓다가 5년 만에 뒤따라갔어.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이 한 순간에 풍비박산이 돼버렸지."


 1980년 5월 광주 거리는 온통 민주화를 외치는 사람들의 외침과 최루탄·실탄 연기로 가득했다. 배 여사는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아들이 시위에 동참할까봐 방문을 걸어 잠그고 지켰다고 한다. 그러나 아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계속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학교에 입학한 뒤 셋째누나와 함께 서울에서 자취하면서 5·18 민주화 운동 관련 서적과 영상을 접한 것이다.

 "한열이가 5·18때 아무 것도 안했던 자기 자신이 구차하게 느껴졌나 봐. 한열이 떠난 후에 일기장을 보니까 자기 또래였던 중학생 묘비 앞에서 '네 원수는 내가 갚아 줄게'라고 하는 글귀가 적혀 있더라고. 대학교 때 한열이가 시위했던 것은 눈치 챘지. 그래서 남자가 안 하면 부끄러운거니 할 거면 뒤에 서서 하라고 신신당부했건만. 그때마다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놓고선 나한테 거짓말을 했어···."

 ◇최루탄 피격 전후 사진 공개···쓰러진 순간에도 친구들과 다음날 집회 걱정

 지난달 민주항쟁 30주년을 맞아 이 열사가 최루탄을 맞기 직전과 직후의 모습을 담은 사진 2점이 최초로 공개돼 많은 이들을 숙연케 했다. 당시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기자였던 네이선 벤이 88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을 취재하던 차에 찍게 된 사진이었다. 배 여사도 신문에서 아들의 사진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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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7월 10일 서울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집회에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아들의 사진을 손에 쥔 채 오열하고 있다. (사진=정태원 제공)(* 위 사진은 재배포, 재판매, DB 및 활용을 금지합니다.)


"한열이가 전경들이 코앞에 있는 교문 밖에서 시위를 하고 있더라. 우리 아들이 도망가다 최루탄에 맞은 것은 아닐 거라고 믿고 있었지만 사진을 보니 분명해졌어. 한열이가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에 가슴이 찢어졌으나 그래도 이제 볼거 다 봤으니 죽어도 되겠구나 싶어."

 이 열사가 쓰러지는 순간 "내일 시청(6·10 대회)에 나가야 하는데···"라고 말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얘기다. 배 여사는 최근 한 기자로부터 당시 이 열사가 응급실까지 부축한 이종창씨를 비롯해 6명의 친구들에게 "나 무거워서 너희가 힘들테니 좀 쉬었다 가자"라고 말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최루탄을 맞아 죽을 만큼 아팠을 텐데 친구들 걱정과 내일 집회를 나갈 생각을 했다는 게 너무나 가슴이 아파. 정신력이 굉장히 강한 아이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래도 얼마나 아팠을까라는 생각만 하면 억장이 무너져."

 ◇평범한 주부에서 투사로 인생 바뀐 모친···가족 잃은 사람들 아픔 '위로'

 배 여사는 1987년 아들이 응급실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인생이 180도 달라졌다.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전국 곳곳 시위현장을 누비는 투사가 된 것이다.

 "연세대에서 한열이가 위급하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내 세상은 마비가 됐어. 한열이가 떠난 후 먹지도 자지도 못해 한 달 만에 체중이 15㎏이 빠졌지. 정신 놓고 지내다가 주위에서 유가협에 한번 가보라는 말에 그해 8월12일 유가협 창립 1주기 행사에 참석하러 서울에 왔어. 여기 와보니 나처럼 국가에 의해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수백 명이나 있더라고. 그때부터 30년 간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지."
 
 그는 세월호 참사와 백남기 사태가 남일 같지 않다. 세상을 떠난 사람보다 남은 가족들이 더 걱정된다는 배 여사는 실제로 유족들을 찾아가 위로하곤 했다.

 "누구도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지는 않잖아. 죽은 사람은 몰라. 난 남아있는 가족들이 더 불쌍해. 그 아픔을 내가 먼저 겪었으니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까 싶어 만나곤 해. 지금도 시위현장에서 분신하거나 투신자살했다는 뉴스를 보면 너무나 안타깝지. 그런 행동을 하기 전에 나를 한 번이라도 찾아왔으면 좋겠어. 죽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어. 죽을 힘으로 싸워서 세상을 바꿔야 해."

 ◇"전두환 용서할 마음 없어···처벌 받아야"

 배 여사는 민주화를 외친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평가했다. 전 전 대통령은 최근 회고록에서 민간인 학살 책임을 부정하고 자신을 광주의 비극 치유를 위한 '제물'로 표현해 비난을 받고 있다.

 "지금 국민들은 바보가 아닌데 전두환은 실감하지 못하나봐.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자신이 희생자라고 하는 거보니 사람인가 싶다. 짐승만도 못한 거지. 사람들은 전두환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하는데 난 사과 가지고는 안 돼. 용서할 마음 추호도 없어. 가족을 잃은 아픔을 겪어보면 용서하라는 말 쉽게 할 수 없는거야. 잘못한 만큼 법적으로 처벌 받아야지. 일 저질러놓고 사과만 하면 면죄부가 되는 거냐. 난 가해자가 억지로 사과하는 모습만 봐도 역겨워."

 이 열사는 사망한 지 14년 만인 김대중 정권 때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아직 국가유공자로는 인정받지 못해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증서'를 발급받은 것 외에 혜택은 전혀 없다.  배 여사는 "수많은 정치인들이 필요할 때만 한열이 이름을 앞세운다. 정치인들의 잇속 다툼에 들러리만 서다 끝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울삶 벽면에는 민주화를 외치다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젊은이들의 사진으로 가득했다. 박종철·이한열 열사와 달리 이름조차 생소한 이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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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울삶에서 '6.10민주항쟁 그 날을 회상하며' 뉴시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왜 국가유공자가 안 되고 있는지 물어봐도 30년 간 정부는 묵묵부답이야. 이 사람들이 국가유공자가 된다 해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서 혜택을 받을 자식도 없어.  보상이 아니라 민주열사에 대한 예우를 바랄 뿐이야. 민주화 과정에서 의로운 죽음을 당했는데 이렇게 방치하는 것은 말도 안 되지 않나."

 ◇민주항쟁 다룬 영화 제작···"한열이의 죽음 잊혀지지 않길"

 배 여사는 지난 30년 간 '한열이 어머니'로 살면서 아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대변해 수많은 집회 선두에서 '평등'을 외쳤다. 그는 몸과 마음이 지칠 때마다 아들 묘지에 찾아가면 힘이 난다고 했다.

 "내 육신과 정신의 절반은 한열이가 차지하고 있어. 내가 죽으면 그때 비로소 한열이도 죽은 거겠지. 솔직히 나를 알아봐주는 건 귀찮지만 우리 한열이의 죽음이 잊혀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수십 년간 목소리를 내고 있어. 틈만 나면 한열이 묘지에 가서 '한열이 네가 보고 싶어서 오는 게 아니라 내가 살려고 오나봐‘라고 읊조리다보면 한열이가 ’엄마, 그래‘라고 답하는 것 같아. 한열이 생각만 하면 힘이 절로 나서 버틸 수 있어."

 올해 말에는1987년 민주화 항쟁 이야기를 다룬 '1987'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열사 역할은 배우 강동원씨가 맡았다. 최근 강씨의 외증조부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강씨가 이 열사 역할을 맡은 것에 대한 자질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러나 배 여사는 "본인이 성실하게 잘 살아왔고 열심히 하겠다고 하니 전혀 문제가 안 된다"고 일축했다.

 "처음에는 조금 고민도 했어. 근데 조부도 아니고 외증조부인데다가 시대가 바뀌었는데 연좌제는 말도 안 되지. 어제(4일) 영화 촬영지에 찾아가 강동원과 밥도 같이 먹었어. '네가 내 아들 역할을 맡았으니 이제는 내 아들이나 다름없다'고 얘기하니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고 답하더라. 나에겐 누가 연기하냐가 아니라 영화로 인해서 사람들이 한열이를 많이 기억해줬으면 할 뿐이야. 한열이 죽음을 얘기할 때마다 나에게는 고문이지만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수십 년간 계속 외친거니까."

 배 여사는 수많은 촛불로 인해 어렵게 이룬 정권교체이니 만큼 새 정부는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뜻을 귀하게 여기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줬으면 해. 무엇보다 정부는 국민을 무서워해야 한다. 국민이 무섭다는 것을 촛불로 보여주지 않았나.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굉장히 많으니 촛불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늘 염두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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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6/08 [21:22]  최종편집: ⓒ 정책평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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