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중세인'이었던 루터..종교개혁은 어떻게?

국민정책평가신문 | 기사입력 2017/10/25 [11:28]

뼛속까지 '중세인'이었던 루터..종교개혁은 어떻게?

국민정책평가신문 | 입력 : 2017/10/25 [11:28]

 뼛속까지 '중세인'이었던 루터..종교개혁은 어떻게?

 

 

종교개혁 500주년 맞아 루터, 종교개혁 관련 서적 잇따라 출간
루터, 미디어 전술의 천재? 독일 민족의 영웅?
종교 테두리 벗어나 종합적 관점에서 재평가

 
마르틴 루터의 성경.
 

━ 500년 전 그날, 비텐베르크 교회에서 무슨 일이?

 
루터의 초상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이름 없는 수도사였던 마르틴 루터(1483~1546)는 긴 문서 한장을 들고 로마 비텐베르크 교회로 걸어 들어가 이 문서를 교회 문 못 박았다. 이 문서에는 당시 가톨릭 교회의 관행에 반대하는 95개 논제가 줄줄이 적혀 있었다. 이날 루터도 몰랐을 것이다. 이날 그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종교개혁(Reformation)에 불을 댕겼다는 것을.

16세기 초에 가톨릭 교회는 유럽의 도시와 마을을 돌아다니며 정해진 가격에 면죄부를 팔았다. 『사피엔스』『호모 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당시 가톨릭 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가리켜 '구원팔이'라고 꼬집으며 이렇게 썼다.

"이런 구원팔이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도미니큰 수도회의 요하네스 테첼은 모금함에 동전이 짤랑하고 떨어지는 순간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날아오른다고 말했다." ( 유발 하라리,『호모데우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최근 국내 출판계에서 루터와 종교개혁의 의미를 조명하는 책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 "루터는 미디어 전술의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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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신의 제국을 무너트린 종교개혁의 정치학』(폴커 라인하르트 지음, 이미선 옮김, 제3의공간)은 '부패하고 무능한 교황 대 신실한 믿음의 수도사 루터'라는 기존 틀을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단연 눈길을 끈다. 저자는 르네상스 시기 교황제도를 연구해온 역사학자로, 그는 바티칸 문서고에 보관된 교황청의 회의록, 칙서, 외교관들의 보고서를 발굴해 종교개혁사를 재구성한다. 종교개혁을 권력자와 소외당한 그룹의 충돌로 본 것이다. 저자는 당시 유럽정치 문화의 최고 지도자였던 교황의 위상은 급격히 약화되고 있었고, 메디치 가문이 교황제도를 금권정치와 족벌정치를 결합해왔다며, 루터는 가톨릭 제국의 부당한 권력 배분과 약탈에 맞선 독일의 민족 영웅이었다고 말한다.

저자가 루터를 '미디어 전술의 천재'로 규정한 것도 흥미롭다. 루터는 집요할 정도로 저술, 인쇄, 배급에 매달렸다는 것이다. 유럽 기독교 문명의 변방인 북동부 출신의 일개 수도사가 상대의 모순을 신랄하게 공박한 인쇄물로 당시 독일 민중과 소외받는 지식인, 성직자들의 분노를 끌어내며 개혁을 밀어붙였다는 분석이다. 반면 교황청 사람들은 루터의 미디어 전술을 얕잡아 봤고, 뒤늦게 인쇄물 제작에 뛰어들지만 라틴어를 고집해 독일 신자들 대부분을 독자에서 제외시켜 버리는 우를 범했다.

━ 26인의 관점에서 본 종교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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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 종교개혁』(디트마르 피이퍼, 에바-마리아 슈누어 엮음, 박지희 옮김, 21세기북스)은 독일의 대표적인 시사지 '슈피겔'이 기획하고 펴낸 것으로, 집필자가 21명에 이르고 5명이 인터뷰이로 참여했다. 총 26편의 글을 통해 종교개혁의 과정부터 종교개혁이 세계사에 가져온 변화까지 그 역사와 의의를 다각적으로 분석했다. 박흥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가 감수했다. 집필자와 편집자로 참여한 에바 마리아 슈누어는 '미래로의 방향 전환'이란 글에서 "(격변의 시기에) 루터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한 것도, 혁명을 계획한 것도 아니었다"며 "종교개혁은 다양한 이해관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서 전혀 예상치 못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역동성을 만들어낸 사례"라고 했다. 루터 개인의 역사에서부터, 루터를 열렬히 지지했던 기사 지킹엔, 종교개혁 운동에 기여했던 여성들 이야기 등 다양한 읽을거리를 담았다.
━ 뻣속까지 '중세인'이었던 루터는 어떻게 근대의 문을 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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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저자의 책으로는 김덕영 독일 카셀대 사회학과 교수가 쓴『루터와 종교개혁』(도서출판 길)과 박흥식 서울대 교수가 쓴『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21세기북스)가 있다. 흔히 종교개혁 관련 연구는 신학과 역사학 분야에서 이뤄져 왔으나, 『루터와 종교개혁』은 사회학자의 관점에서 종교개혁이 갖는 의미를 살폈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루터에 의해 촉발된 종교개혁이 서양 세계 전체에 '근대'를 어떻게 새겼는지를 '개인화' '세속화' '분화' 등의 개념으로 분석한 것. 저자는루터는 전형적인 '중세인' 이었고, 루터가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생각도, 근대라는 관념도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루터의 최대 관심사도 종교적 구원에 있었던 것. 다만 루터는 '오직 성서' '오직 은총'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를 내세워 신과 인간의 직접적인 관계로 설정해 개인이 교회의 통제와 지배로부터 해방될 수 있게 되었다(개인화). 루터는 선행을 연출된 경건(그 극단적 형태가 바로 수도원)과 동일시하는 가톨릭에 반대해 인간의 모든 행위가 선행이 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는데, 이는 모든 세속적 영역, 즉 결혼, 가족, 노동, 사회 등에서의 일상적 삶과 행위가 신학적 가치를 갖게 됨을 의미한다(세속화).
━ 루터는 농민들의 현실에 왜 눈을 감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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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종교의 영역을 넘어서 통합적으로 루터를 재평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저자는 성공 신화에 갇힌 루터를 현실의 경계로 끌어올리기 위해 루터의 업적을 대표하는 사건들과 개혁을 가능케 한 시대적 요건, 루터의 성공과 실패를 모두 다뤘다. 저자는 루터를 '헌신적인 개혁가'라고 인정하지만 '완벽한 영웅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특히 농민전쟁에 대한 루터의 입장은 루터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농민들은 루터가 불의에 대한 저항을 지지한다고 오해하고 그를 지지했으며, 루터는 제후나 귀족이 권력을 남용해 농민들을 피폐하게 만드는 현실에 무관심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루터는 대다수의 농민을 배제한 채 제후들의 아량에 기대 가시적인 성과를 얻으려 노력했다. 그 결과로 후대에게 권위주의적 유산을 물려주게 되었다"고 말했다. 저자는 "수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결정적으로 시대정신에 소홀했으며 공동체가 중심이 되는 종교개혁을 배반해 자신에게 주어진 개혁의 과제를 완수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 루터의 개혁정신, 그 후 한국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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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그리고 이후 500년』(라은성·이상규·양희송 지음, 을유문화사)은 '개혁정신'의 관점에서 한국 교회를 돌아보기 위해 기획된 책이다. 종교개혁과 기독교, 한국 기독교의 역사와 당면 문제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데 집중했다. 총신대 교회역사 교수 라은성, 고신대 신학과 교수 이상규, 청어람ARMC 대표 양희송 등 세 명의 저자가 기독교의 역사에서부터 광복 직후 친일 청산의 좌절, 군부독재 시절 정치권력과 유착한 교회, 1990년대 초 시한부 종말론의 대두, 오늘날 성장 만능주의 등 한국 기독교의 여러 문제점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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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루터 사상의 핵심을 보여주는 3대 논문, 정본으로 여겨지는 독일 바이마르 판복에서 번역한 『독일 민족의 그리스도인 귀족에게 고함 외』(마르틴 루터 지음, 도서출판 길), 루터를 영웅시한 기존 역사학계의 서술 관점을 비판하며 종합적 관점에서 종교개혁사를 서술한 『종교개혁의 역사』(토마스 카우프만 지음, 황정욱 옮김) 등도 함께 출간됐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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