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주기 논란' 없는 대북 지원의 조건

서정태 기자 | 기사입력 2018/02/13 [15:25]

'퍼주기 논란' 없는 대북 지원의 조건

서정태 기자 | 입력 : 2018/02/13 [15:25]

'퍼주기 논란' 없는 대북 지원의 조건

 

 

 

 '퍼주기 논란' 없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 내렸습니다. 역사적인 제1차 남북정상회담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직접 공항까지 영접을 나오는가 하면 김 대통령 차량에 동승하는 등 남북한 두 정상의 첫 만남은 파격의 연속이었습니다. 당시 장면을 김 전 대통령 자서전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와 김 위원장은 차량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환영 인파가 일제히 꽃을 흔들었다. 함성으로 공항이 떠나갈 듯했다. 검은색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김 위원장의 안내를 받아 오른쪽 뒷좌석에 올랐다. 그런 다음 김 위원장은 뒤로 돌아 뒷자석 왼쪽에 탔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파격이었다."

 "그는 예의가 바른 사람이었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자 동양적인 관습에 따라 3년 상을 치렀다. 연장자인 나에게 깍듯했다. 정상 외교 관례를 깨고 공항까지 영접을 나왔다. 차에 동승했고 내가 먼저 탈 때까지 기다리며 세심하게 배려했다. 고별 오찬장에서는 내가 팔걸이가 있는 의자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준비해 주었다."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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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회담의 그늘 '대북 퍼주기 논란'

회담은 6.15 공동선언으로 이어졌고 남북관계는 급진전됐습니다. 회담 2개월 뒤인 8월 15일 남북의 이산가족이 서울에서 만났고 금강산 관광을 포함한 민간교류가 대폭 확대됐습니다. 하지만 이런 성과는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불거진 대북 송금 사건으로 퇴색되게 됩니다. 2003년 대북송금 특검은 현대그룹이 4억 5,000만 달러를 국가정보원 계좌를 통해 북에 지원했고, 이 가운데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금 1억 달러가 포함돼 있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10.4 선언을 이끌어낸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도 퍼주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1차 때와 같은 이면 지원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10.4 선언 합의 이행 사업 자체가 쟁점이 됐습니다. 8개항의 합의 가운데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경의선 화물철도 개통과 안변·남포 조선협력단지 건설, 백두산~서울 직항로 개설 같은 경제협력 사업에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는 통일부 자료가 논란에 불을 붙였습니다. 당시 야당이 공개한 통일부 추산 비용은 14조 4,000여억 원이었습니다.

● 지난 정상회담과 다른 점

1, 2차 남북 정상회담은 지금 추진 중인 정상회담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지난 회담들이 남북 간 고위 당국자 간에 비공개 접촉으로 추진돼 깜짝 공개된 반면, 이번 회담은 북한이 최고위급 인사를 통해 직접 공개 제안했습니다. 향후 회담 추진 과정 역시 공개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큽니다.

안건에서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1, 2차 정상회담이 열린 2000년과 2007년 북한은 각각 북미대화와 6자회담을 통해 비핵화 문제를 논의 중이었습니다. 따라서 민감한 북한 핵 문제는 남북 정상회담의 의제가 아니었고 남북 평화 협력이 전부였습니다.

공개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는 우리 정부의 부담이 크게 줄어든 셈이지만 문제는 안건입니다. 이번 회담은 익히 알려진 대로 북한 비핵화가 핵심입니다. 그나마 초기 개발단계였던 지난 2차례 회담 때와 달리 지금은 핵은 물론 투발 수단인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완성 단계에 이른 상태입니다.

회담 분위기는 더 험악합니다. 동맹국인 미국은 비핵화를 전제로 하지 않는 대화는 무의미하다며 압박하고 있고 마주 앉아 논의해야 할 북한은 핵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는 강경한 입장입니다. 여기에 더해 정상회담이 대북 퍼주기가 돼선 안 된다는 따가운 국내 여론까지 얹어져 있습니다.

● 부담만큼 목소리 낼 기회도 커져

하지만 모든 상황이 다 불리한 건 아닙니다. 지난 1, 2차 정상회담 때 우리 안보와 직결된 북한 비핵화 문제를 미국과 국제 사회에 맡긴 채 경제 지원 부담만 떠안아야 했던 것과 달리 이번 회담에서는 우리가 협상 주체로 나서면서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습니다.

최종적 해결은 북미 대화를 통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많지만 정상회담을 포함한 남북 대화가 이 과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하게 되면 북미 대화 과정에서도 자연스레 우리 입장이 반영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게 됩니다. 다시 말해 이른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 걱정은 덜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북한 핵 협상이 핵심 안건인 만큼 핵 동결이나 포기에 따른 비용 문제는 피할 수 없습니다. 경제적 보상 없이 북한의 핵을 통제하겠다는 건 불가능한 까닭입니다. 다만, 2차 정상회담 때와 달리 경제 교류 활성화라는 우회적 방법 대신 보다 직접적 방법으로 평화 혹은 비핵화를 추진하게 되는 만큼 비용-효과가 보다 선명하다는 장점은 있습니다.

● 대북 퍼주기 논란의 해법…'행동 대 행동 원칙'

SBS

 


그렇다면 대북 지원의 조건은 뭘까요? 지난 10일 스케이트 경기장에서 펜스 미국 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대화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 펜스 부통령은 국제사회가 '대화의 대가'로 북한에 양보하는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문 대통령이 생각하는 대북 관여 정책이 어떻게 다른지를 물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인 단계를 밟지 않는 한, 단지 대화 테이블에 앉는 것만으로 경제 또는 외교적 혜택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펜스 부통령은 전했습니다. 즉 비핵화 없이는 대북 지원도 없는 ‘행동 대 행동’ 원칙입니다. 이런 답을 들은 뒤 펜스 부통령도 평창올림픽 이후 평양과의 외교적 해법을 지지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외신은 전했습니다.

퍼주기와 보상은 다릅니다. 퍼주기가 북한에 대한 비위 맞추기라면 보상은 그들의 양보 내지는 포기에 대한 일종의 대가입니다. 앞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포함한 남북 대화가 지켜야 할 원칙이기도 합니다. 협상을 늘 공개적으로 진행할 순 없겠지만, 그 결과만큼은 투명하게 알리는 것 또한 대북 퍼주기 논란을 차단하는 방법일 겁니다.    는 대북 지원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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