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교사 34만명…교단서 '미투' 잠잠한 까닭은

권오성 | 기사입력 2018/03/22 [09:42]

女교사 34만명…교단서 '미투' 잠잠한 까닭은

권오성 | 입력 : 2018/03/22 [09:42]

 女교사 34만명…교단서 '미투' 잠잠한 까닭은

 

머니투데이

지난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범시민행동' 출범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피켓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교장이 찾아 교장실에 뛰어 올라간 적이 있어요. 막상 가보니 급한 지시사항은 아니고 교장이 옆에 앉아 제 손을 잡아당겨 손금을 보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회식 술자리·노래방 등에서 러브샷이나 블루스 강요를 받기도 했어요. 블루스를 추자는 청을 거절하기라도 하면 곧바로 분위기도 못 맞춘다고 핀잔을 듣기도 했어요."

일선 학교에서 만났던 여교사들로부터 우연찮게 들은 얘기다. 지난 1월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촉발된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사회 각계로 확산하면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유독 교단에서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조용하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 전체 교원 수는 48만2000명이다. 이 가운데 여성 교원은 70%(34만명)에 달한다.

최근 만난 교육계 인사는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있겠느냐'며 교단 내 특유의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문화를 지적했다. 그는 "서울 등 대도시도 그렇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모두 같은 대학을 나온 선후배로 얽혀 있다"며 "숫자가 많아 보이지만 오히려 좁은 게 교사 사회이고 쉬쉬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성희롱·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할 경우 그 소문이 삽시간 퍼져 교단 내에서 평생 뗄 수 없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미투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때론 피해자가 인사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교원 사회가 다른 조직보다 수평적이라고들 하지만 그래도 위계 서열이 여전하고 신고를 해도 가해자가 제대로 징계를 받지 않거나 다시 교단에 돌아오는 경우도 많아 피해 사실을 고백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실제로 한 여교사는 "교단 내 성비위 문제는 교사들 간에도 서로 꺼려한다"며 "성희롱·성폭력 문제와 관련해 주위 동료 교사와 상담을 하더라도 (피해자에게) 입단속을 시키기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이런 교단 내 분위기는 흡사 2005년 개봉한 영화 '노스 컨츄리'를 보는 듯하다. 이 영화는 1984년 미국 최초 직장내 성폭력 승소 사건(젠슨 대 에벨레스 광산 소송)을 소재로 했다. 영화는 여주인공 조시 에이미스(샤를리즈 테론 분)가 일하는 광산에서 벌어지는 성차별·성폭력을 그렸다. 시시때때 여성을 멸시하거나 모욕하던 광부는 성폭행을 저지른다. 조시는 이를 고발하는 과정에서 여성 동료들로부터 “얼굴에 철판을 깔고 견뎌라”며 외면 받고 어려움을 겪지만 집단소송을 벌여 결국 소송에서 이기게 된다.

영화에서 배우가 던진 "나는 그냥 우리를 '존중'해 달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야"라는 메시지는 비단 영화 속 얘기 만은 아니다. 교사도 미투에서 예외일 순 없다. 사회에서 가장 깨끗하고 올 곧은 사명감으로 늘 깨어 있어야 할 표상으로서가 아니라 미래세대를 키워내는 교육자로서 '아닌 건 아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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