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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하는 팔레스타인, 이슬람권 침묵이 더 아프다
 
고종만   기사입력  2018/05/16 [15:36]

 

- 이슬람권, 유혈사태에 미온적 반응

사우디는 이란에 맞서기 위해 이스라엘과 암묵적 밀월 유지

美와 협력 UAE·이집트도 소극적

- 팔레스타인이 자초한 면도

아라파트 이후 유력 지도자 없어… 정부도 온건파와 과격파로 분열

 

14일(현지 시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접경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시위대 61명이 숨지고 2700여명이 부상한 사건에 국제 사회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스라엘군 저격수들이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에 항의하며 분리 장벽으로 접근하는 시위대에 실탄을 발포하면서 사상자가 속출했다. 사망자 8명은 어린이였으며 그중 한 명은 생후 8개월 아기였다.

참사에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사망자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대신 그는 트위터에 "이스라엘의 엄청난 날, 위대한 날. 축하를!"이라는 글을 올렸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미 대사관 예루살렘 이전은 트럼프 대통령의 중대한 약속 이행"이라는 성명을 냈다. NBC방송 등 미 언론들은 이번 총격 사태를 '가자 학살(massacre)'이라고 불렀지만, 미 정부는 유혈 사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의 이런 태도보다 팔레스타인을 더 절망시키고 있는 것은 이슬람권의 변심이다. 과거 팔레스타인을 '피를 나눈 형제'로 부르며 이·팔 충돌 때마다 똘똘 뭉쳐 이스라엘에 대항했던 이슬람 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외면하고 있다. 몇몇 국가가 이번 사태에 입장을 내놓기는 했으나 그야말로 형식적인 '립서비스'였을 뿐이다. 로이터 통신은 "이슬람권의 침묵으로 팔레스타인이 좌절하고 있다"고 했다.

대표적인 '변심 국가'는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다. 사우디 외교부는 이·팔 충돌 직후 "이스라엘군의 살상 행위를 비판하고, 형제와 같은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사태의 도화선이 된 미 대사관 이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가 아예 없다.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존립 자체를 부정해온 적대 관계였다. 그러나 최근 사우디는 팔레스타인보다 오히려 이스라엘과 더 가까운 형국이다. 사우디의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달 미국 방문 때 유대인 단체 간부들과 만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과의) 협상 테이블로 나오든지 아니면 입 닥치고 불평 좀 그만할 때"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런 변심은 이슬람권에서의 적국인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사우디는 이슬람 시아파 맹주 이란이 이라크와 시리아로 세력을 확장하는 것을 경계한다. 이스라엘도 이슬람권에서 이란을 가장 주적으로 삼고 있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논리가 성립된 셈이다.

과거 1~4차 중동전쟁에 적극 참전하고 1990년대 이·팔 평화협상에 참여하며 팔레스타인에 막강 영향력을 과시했던 시리아는 8년째 이어진 내전으로 개입할 여력이 없다. 다른 이슬람 국가들도 소극적이긴 마찬가지다. 아랍에미리트(UAE)도 이날 외교부 성명을 발표하고 "이스라엘 점령군의 무력 사용을 규탄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우디와 마찬가지로 미 대사관 이전 문제에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UAE는 호르무즈해협(너비 50㎞)을 두고 마주한 이란을 최대 안보 위협으로 간주해왔다. 자국에 주둔하고 있는 1700여명의 미 공군 병력이 핵심 안보 자산이다. 미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이집트는 국영 신문에 비판 사설을 게재했을 뿐 정부 차원 성명은 내지 않았다. 이집트 역시 집권 군부 세력의 안정을 위해, 미국과의 군사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1993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두 국가 공존을 원칙으로 한 오슬로 협정이 체결됐을 때만 해도 이·팔 갈등이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착촌 처리, 예루살렘의 지위,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 등 세부 협상에서 양측은 접점을 찾지 못하고 표류했다. 특히 시오니즘(유대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베냐민 네타냐후가 2009년 총리가 된 뒤 이스라엘 정착촌 확대와 팔레스타인 시위대 무력 진압 등 강경책을 펼치면서 오슬로 협정은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됐다.

팔레스타인의 위기는 스스로 자초한 측면도 있다.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2004년 사망) 이후 국제사회 영향력 있는 지도자를 배출하지 못한 데다, 정부도 온건파(파타)와 과격파(하마스)로 분열돼 주도권을 다투면서 줄곧 정국 혼란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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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5/16 [15:36]  최종편집: ⓒ 정책평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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