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수사권 떼줬지만… 검찰, 재수사 요구는 할 수 있어

고종만 | 기사입력 2018/06/22 [08:33]

경찰에 수사권 떼줬지만… 검찰, 재수사 요구는 할 수 있어

고종만 | 입력 : 2018/06/22 [08:33]

[검·경 수사권 조정안] 검찰 "경찰력 막강해져" 경찰 "달라진 것 없다" 양측 모두 불만

정부가 21일 발표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의 핵심은 '경찰은 수사, 검찰은 기소'에 집중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간 검찰 지휘를 받아온 경찰이 자체 판단으로 사건을 끝낼 수 있는 수사 종결권을 갖고, 검찰은 경찰이 넘긴 사건에 대해 보충적 수사를 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이다. 다만 검찰도 부패·대기업 사건 등 특수 수사는 직접 할 수 있게 했고, 보완 수사 요구권 등을 통해 경찰 수사를 통제할 수 있도록 했다. 검경 사이에서 절충안을 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양쪽에서 불만이 나오고 있다. 

조선일보

문무일(왼쪽) 검찰총장과 차기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민갑룡 경찰청 차장이 각각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과 서대문구 경찰청에 들어서고 있다. 정부가 21일 발표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경찰은 수사, 검찰은 공소 유지에 집중하게 한다는 구상을 담고 있다.

 

 

정부안에 따르면 경찰은 1차 수사권을 갖는다. 또한 검사는 경찰이 사건을 검찰로 보내기 전에는 수사 지휘를 할 수 없다.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검사가 법원에 청구하지 않으면 경찰이 고등검찰청에 설치된 영장심의위원회(가칭)에 이의 제기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경찰은 모든 사건을 검찰에 보냈고 기소 여부는 검찰이 판단했다. 하지만 정부안에서는 경찰이 수사 결과 재판에 넘기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하면 사건을 검찰에 보내지 않고 끝내도 되도록 했다. 

대신 수사 지휘가 아닌 방식으로 검찰이 경찰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뒀다. 경찰 수사에 문제가 있으면 보완 수사나 재수사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검찰에 준 것이다. 이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해당 경찰을 직무 배제하거나 징계하라고 경찰청장 등에게 요구할 수도 있게 했다. 

형식적으로는 검찰의 수사 지휘권이 폐지됐지만 사실상 보완 수사 지시 등을 통해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한 변호사는 "경찰은 수사권 독립이라는 명분을 얻었고 검찰도 실리는 잃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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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종결권도 마찬가지다. 경찰이 무혐의 판단을 하면 사건을 검찰에 넘기지 않아도 되는 권한이 생겼지만 '불(不)송치 결정문'과 사건 기록 복사본을 검찰에 내도록 했다. 검찰이 이를 보고 부당하다고 판단하면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보기에 따라선 지금과 크게 달라졌다고 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또 고소·고발인 등이 경찰의 수사 종결 판단에 이의 신청을 한 사건은 검찰로 넘기도록 했다. 

검경은 모두 불만이다. 검찰은 "경찰 권한은 막강해졌지만 검찰의 견제 장치는 실효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지휘권이 있는 지금도 수사 방향을 놓고 검경 갈등이 있는데 지휘권이 박탈된 상태에서 보완 수사 요구를 한다고 경찰이 따르겠느냐"고 했다. 반면 경찰은 "검찰의 기소 독점권, 영장 청구권을 그대로 둔 이상 실질적으로 달라진 건 없다"는 반응이다. 경찰 관계자는 "검사는 보완 수사 형태로 얼마든지 경찰 수사에 간섭할 수 있다"며 "검찰의 개입 시점만 늦춰진 것일 뿐"이라고 했다. 

앞으로 수사기관의 '수사 총량'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1차 수사권을 갖는 경찰은 그간 검찰이 주로 했던 기업·정치인 수사를 전보다 많이 할 가능성이 높다. 수사 경찰은 2만명에 달한다. 정부안은 부패·경제·금융·증권·선거 범죄 등 핵심 인지 사건은 검찰이 지금처럼 그대로 직접 수사할 수 있게 했다. 검찰의 수사 범위가 크게 줄었다고 보기 어렵다. 여기에 현 정부가 추진하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까지 출범할 경우 수사 대상과 건수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 변호사는 "정부안대로라면 수사기관들이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수사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크고, 결국 애꿎은 국민만 피해를 볼 수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수사권 조정을 추진하면서 "경찰과 검찰에서 같은 사안을 두 번 조사받는 것이 문제"라고 했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크게 변한 게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안은 특수 사건을 빼고 검찰에 접수된 민생 관련 고소·고발은 모두 경찰이 처리하도록 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런 사건에 대해서도 공소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피의자나 피해자를 불러다 조사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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