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집행 중 조롱·욕설에 맞기까지… '제복 수난시대

고종만 | 기사입력 2018/06/22 [08:36]

공무집행 중 조롱·욕설에 맞기까지… '제복 수난시대

고종만 | 입력 : 2018/06/22 [08:36]

[fn스포트라이트 일상 속 갑질] <7-끝> 갑질에 더 힘든 경찰·소방관
'현장의 욕받이 자조감' 퍼져 시민과 송사 가는것도 부담
'웬만하면 참자'며 넘어가
"제복공무원 존중해달라" 폭행 근절 호소문도 발표
"제복공무원 존중해달라"
폭행 근절 호소문도 발표
스포트라이트팀


파이낸셜뉴스

 

일부 시민들의 폭언, 폭행 뿐만 아니라 각종 민원성 갑질 등으로 경찰관, 소방관 등 제복공무원들의 사기가 바닥을 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민의식 개선과 더불어 폭언 및 폭행 등에 대한 처벌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은 욕받이? 온갖 조롱에 폭행도

"우리는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현장의 욕받이다!"

얼마 전 종영된 한 종편채널의 경찰 드라마에 등장한 지구대 대장의 대사다. 이 주인공은 눈물 흘리며 말을 이었다. "25년 넘게 사명감 하나로 버텨온 나를 누가 이렇게 하찮고 비참하게 만들었나. 내 사명감을 누가 빼앗아갔나."

실제로 경찰이 공무 집행 중 조롱 당하거나 욕설을 듣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서울 손모 순경(29)은 "씨X, 개XX 이런 욕은 일상이다. 욕 먹고도 가만히 있으면 주변에서 '경찰관이 쫄았다'는 등 조롱과 인신공격이 이어진다"며 "아무리 사명감 갖고 열심히 일해도 현장 한 번 갔다 오면 갑질이 너무 심해 그만둬야 하나 수 십번 고민한다"고 토로했다.

목숨에 위협을 받기도 한다. 현장에 출동갔다가 폭행 피해를 입은 경찰관·해양경찰관은 2015년 532명, 2016년 537명, 2017년 415명이다.

지난해 4월에는 한 해양경찰관이 단속 중 바다에 빠지는 일도 발생했다. 수산물을 불법포획하던 어선 관계자가 단속에 저항하다 경찰관 어깨를 밀어버리면서다. 해당 경찰관이 입은 부상은 경미했으나 자칫 위험천만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자신을 3년차 경찰관이라고 소개한 한 네티즌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지금까지 폭행당해 입건한 사례만 5번, 참고 넘어간 건 20번이 넘는다. 따귀를 맞기도 하고 얼굴에 침을 맞기도 했다"며 "어머니는 '인정도 못 받고 다치기만 하는 경찰 관두라'며 우셨다"고 호소했다.

경찰 기동대에서 근무하는 이모 경사(31)는 "평소 불법주차 딱지를 붙이고 음주운전을 단속하는 경찰관에 대한 시민의 분노가 뒤섞여 표출되는 것 같다"며 "때문에 경찰관들 사이에서는 사력을 다하지 말고 소극적으로 일해야 변을 당하지 않는다는 자조적인 분위기도 있다"고 했다.

■소방대원도 마찬가지… 처벌 강화 필요

일부 시민을 단속하는 경찰관에게만 갑질이 이어지는 건 아니다. 시민을 구조하는 소방대원에게도 갑질은 여전하다.

지난달 한 구급대원의 죽음에 전국이 들썩였다. 전북 익산에서 119구급대원 강연희 소방경이 구조하던 취객에 맞고 후유증을 호소하다 순직한 것이다. 지난해 4월 경기 화성시 한 구급대원이 쓰러져 있는 시민을 구조하려다 외려 폭행을 당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게 된 지 1년만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15년 198명, 2016년 199명, 2017년 167명 소방·구급대원이 시민들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제복공무원에 대한 이 같은 갑질은 엄연한 공무집행·소방활동 방해 행위다. 현행법은 공무집행·소방활동 방해죄가 인정된 자에 5년 이하 징역 또는 각각 1000만원 이하 벌금,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제복공무원들이 이 같은 갑질 시민에 대해 처벌을 요구하는 데는 부담을 느끼는 상황이다. 이들은 시민과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시민들과 송사에 휘말리면 비난을 살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웬만하면 참자'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서울 한 경찰 팀장(39)은 "한때 형사과 경찰들이 눈치를 줬다"며 현장으로 출동하던 때를 회상했다. 그는 "주취자 등으로부터 욕설을 들으면 나는 바로 경찰에 데려가는 편이었다"면서도 "이들을 모욕죄로 고소하려 하니 형사들이 '웬만하면 참아야 하지 않겠냐'며 말리고 눈치줬다"고 전했다.

정부는 처벌강화 보다는 시민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시급하다는 기조다. 지난 4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이철성 경찰청장, 조종묵 소방청장, 박경민 해양경찰청장은 한 데 모여 "경찰관, 소방관 등 많은 제복공무원이 일부 국민의 분노 표출과 갑질 행위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며 "모두 똑같은 국민으로서 제복공무원의 인권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에 서울시립대 이영주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갑질 때문에 제복공무원들이 몸을 사리면 결국 손해 보는 것은 시민이기에 자발적으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면서도 "취중감형 등 때문에 주취자의 갑질이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 경우도 고려해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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