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 미달 의원 → 지자체 견제 부실 → 주민 불신 '악순환'

국민정책평가신문 | 기사입력 2018/06/24 [19:04]

자격 미달 의원 → 지자체 견제 부실 → 주민 불신 '악순환'

국민정책평가신문 | 입력 : 2018/06/24 [19:04]

 지방의회 이대로는 안 된다] / 지자체장 권한 감시·집행기관 감사 / 민선 지방의회 최우선 역할로 꼽아 / 전문성 부족·지자체장 막강 권한 탓 / 지방의회 제대로 된 견제 기능 못해 / "전문성 바탕 연동형 비례대표 도입 / 중대선거구 확대·선거제 개혁 필요"

210조원. 

다음달 2일 개원하는 민선 8기 지방의회 의원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살펴야 할 지방자치단체의 올해 예산이다. 전체 액수를 3751명의 광역(824명)·기초(2927명)의원 수로 나누면 1인당 560억원꼴로 지자체의 예산 집행을 감시해야 한다. 지방의원의 견제와 감시가 없다면 210조원 예산은 지자체장의 ‘눈먼 돈’이 될지도 모른다. 특히 단체장과 의회를 모두 휩쓴 더불어민주당의 6·13지방선거 압승으로 민선 8기에서 지자체에 대한 지방의회의 견제와 감시가 느슨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민주당 소속 광역의원 당선자는 647명(78.5%)으로 대구·경북을 제외한 광역의회에서 다수당을 차지했다. 기초의원 당선자도 1386명(47.4%)이 민주당 소속으로 4년 전 1154명(39.8%)보다 증가했다. 임기를 마무리하는 지방의회 의원들은 지자체 감시와 견제를 위해 단체장에게 집중된 권력을 나누고 의원 전문성 강화를 위한 입법보조 인력의 충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단과 기초단체장 당선자들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6·13 지방선거 기초단체장 당선자 대회에서 ‘나라다운 나라, 든든한 지방정부’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전문성↓충성심↑지방의원, 지자체장 견제 요원

24일 세계일보가 전국 지방의원(광역·기초) 10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지방자치단체장 권한행사에 대한 견제’(49%)와 ‘집행기관에 대한 행정 사무감사’(40%)를 지방의회의 최우선 역할로 꼽았다.(중복응답) 그러나 ‘지자체장의 막강한 권한’(40%)과 ‘의원 전문성 부족’(39%) 때문에 지방의회가 제대로 된 감시와 견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중복응답) 

민선 3·5·6·7기 서울 종로구의원으로 활동한 안재홍 의원은 “사업을 하거나 정치와 전혀 무관한 활동을 하다가 당선된 구의원들은 임기 동안 제대로 된 조례 한 건 발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법률과 행정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조례를 제정하거나 개정해야 하는데 현행 연수 프로그램과 제한된 입법보조 인력만으로는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 지방의원들은 전문성과 의정활동 성과보다 정당과 지역구 국회의원에 대한 충성심을 우선하는 공천 기준이 지방의회 전문성을 갉아먹는다고 지적했다. A 서울 송파구의원은 “4년 동안 주민만 바라보고 일하면서 예산 낭비 감시하고 민원을 해결하려고 애써왔는데, 정작 공천은 국회의원 말 잘 듣는 사람들이 받았다”며 “역량이 부족한 ‘예스맨’만 채우니 주민들이 지방의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A의원은 “단체장과 소속 정당이 같으면 ‘같은 식구’라는 인식이 강해 견제보다는 지지, 또는 방탄을 자처해 (구청장으로부터) 지역구 민원 챙기기 바쁘다”고 꼬집었다.

B 서울시의원은 의회 사무처 직원의 임명권을 지자체장이 가진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B 의원은 “의정 활동을 지원하고 전문성을 보완해야 할 의회 사무처의 인사권이 시장에게 있다 보니 정작 의원이 필요한 인원을 채용하거나 수급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시정에 대한 정보와 예산, 인사권까지 가진 단체장이 마음만 먹으면 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주민의 무관심·불신 ‘떼 쓰기’ 민원에 제 역할 못 하는 지방의회

“의정 보고서를 돌려도 우리 동네 구의원이 누군지, 무슨 일 하는지 몰라요. 무관심이 제일 무섭죠.” 서울의 한 자치구에서 구의원으로 3차례 당선된 C의원은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구의원이 누구인지, 무슨 일 하는지 제대로 아는 주민이 많이 없다”며 “대신 민원 있을 때만 찾아와 조르고 때로는 ‘유권자가 두렵지 않냐’며 욕설도 서슴지 않는 주민들이 있다”고 토로했다.

설문에 응답한 지방의원들은 지역구 활동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으로 ‘지방의회에 대한 무관심·불신’(54%), ‘지역 주민의 무리한 민원 또는 청탁’(37%)을 꼽았다. 평소에는 지방의회에 무관심하지만 지자체를 거쳐도 해결하지 못하는 민원을 들고 찾아오는 이들의 ‘떼 쓰기’ 민원이 가장 두렵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도의 한 기초의원은 “도시는 덜하지만 농촌에서는 ‘음주단속에 걸렸는데 와서 빼달라’, ‘가게 영업정지를 풀어달라’ 등 상식적인 수준을 넘는 민원 해결을 요구하는 주민들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자격 미달 지방의원의 당선 → 부실한 지자체장 견제·감시 → 주민 무관심·불신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중대선거구 확대와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김형철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연구소 교수는 “2인 선거구 위주의 기초의원 선출로는 거대 양당의 독점 구조를 깨뜨리기 힘들다”며 “3·4인 선거구 확대로 지방의회에 소수정당도 진출하게 된다면 의회 내에서 다양한 정당이 자연스럽게 정책 경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민주당 공천을 받아 당선된 지방의원 중 대부분이 초선 의원이라 이들이 제대로 지자체장을 견제·감시할지 염려된다”며 “연동형 비례대표 도입으로 비례대표 비중을 높여 정당과 지자체장의 눈치를 보지 않는 비례의원들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의정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하 대표는 “다수당을 차지한 민주당이 이번 선거 승리에 취해 표의 등가성과 비례대표를 강화하는 선거제도 개혁을 미루는 구태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창훈 기자, 전국종합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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