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은 지금 '수구'과 '실용' 노선 투쟁 중

국민정책평가신문 | 기사입력 2018/06/24 [19:32]

자유한국당은 지금 '수구'과 '실용' 노선 투쟁 중

국민정책평가신문 | 입력 : 2018/06/24 [19:32]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215
김진태 등 친박 "콘크리트 우파 30% 실망시켜선 안 돼"
김성태 김용태 등 복당파 "새로운 보수" "정의로운 보수"
학계 "한국당 새로운 가치와 시대정신 따라가지 못했다"
장훈 "자기혁신 희박..처절한 권력다툼 본격화할 것"

[한겨레]

김성태 원내대표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6·13 지방선거가 끝난 이후인 지난 15일 오후 국회 로텐더홀에서 원내대변인이 반성문을 읽는 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를 이렇게 마무리했습니다.

먼 훗날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 쉬며 말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는데
난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인생을 이렇게 바꾸었다고

6·13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자유한국당이 내부 갈등에 휩싸였습니다. 패배의 원인을 진단하고 수습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친박’(친박근혜계)-‘비박’(비박근혜계)의 해묵은 전쟁이 다시 터진 것입니다.

친박과 비박의 이번 싸움은 선거 패배의 책임을 상대에게 뒤집어씌워 몰아내려는 세력 다툼이지만, 동시에 ‘수구 보수’와 ‘실용 보수’의 명분 싸움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어느 쪽이 승자가 되느냐에 따라 앞으로 자유한국당의 이념과 가치, 정책 노선이 크게 달라집니다.

친박이 승리하면 자유한국당은 ‘애국 보수’, ‘정통 보수’라는 유령선의 깃발을 높이 세우고 돌진하다가 침몰할 것입니다. 비박이 승리하면 자유한국당은 ‘합리적 보수’, ‘개혁적 보수’로 방향을 전환할 기회를 맞을 것입니다.

수구 보수와 실용 보수는 6·13 선거 참패의 원인부터 전혀 다르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수구 보수의 대표적 인물은 홍준표 전 대표입니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입니다. 따라서 본래 계파는 비박이 맞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깃발’로 지난 대선과 이번 지방선거를 치렀습니다.

지방선거 다음 날 오후 그는 대표직을 사퇴하면서 페이스북에 “우리는 참패했고 나라는 통째로 넘어갔습니다”라고 썼습니다.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라는 색깔론 구호를 내세워서 선거에서 참패했는데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6월15일 ‘마지막 막말’이라며 친박 의원들의 행태를 조목조목 비판하면서도 “이념에도 충실하지 못하고 치열한 문제의식도 없는 뻔뻔한 집단으로 손가락질받으면 그 정당의 미래는 없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런데 홍준표 전 대표의 사퇴로 대표권한대행을 맡은 김성태 원내대표는 전혀 다른 인식을 드러냈습니다. 15일 의원총회 발언입니다.

“국민들이 자유한국당을 탄핵한 선거다. 수구 기득권, 낡은 패러다임에 머무는 보수는 탄핵당했고 저희는 응징당했다. 우리가 여전히 수구 냉전적 사고에 머물러 있는다면 국민들은 점점 더 우리를 외면하고 말 것이라는 무거운 질책과 경고를 우리는 잘 새겨들어야 한다.”

“국회 청산, 기득권 해체,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려는 보수로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무사안일주의, 보신주의, 뒤에서 딴생각만 하고 잿밥에만 눈독을 들이는 구태 보수 청산하고 노욕에 찌든 수구 기득권 다 버려 보수 이념의 해체, 자유한국당 해체를 통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수구 기득권과 보수 이념을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18일 기자회견에서는 한 발짝 더 나갔습니다.

“무사안일주의, 보신주의, 노욕에 찌든 수구 기득권 다 버려 낼 것이다. 수구적 보수, 냉전적 보수 다 버리고 합리성에 기반한 새로운 이념적 지표를 세워야 할 것이다. 뉴노멀에 걸맞은 뉴 보수 정당으로 보수의 기본적인 가치와 이념에는 변함이 없지만, 시대정신에 맞게 정의로 자기 혁신하는 보수의 새 지평을 열어가겠다. 구태와 관습에 안주하는 기득권 보수가 아니라 수구와 냉전, 반공주의에 매몰된 낡은 주종을 스스로 혁파하고 국민적 인식과 정서에 부합하는 정의로운 보수의 뉴 트렌드를 만들어 갈 것이다.”

기득권 보수를 버리고 정의로운 보수로 거듭나겠다는 대담한 선언입니다. 당내에서 반발이 터져 나왔습니다. 친박 김진태 의원의 발언입니다.

“원내대표의 발언은 당황스럽다. 국정농단 세력, 적폐 세력, 수구냉전 세력임을 인정하고 반성하자니.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부정하면 당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반성도 좋고 혁신도 좋지만 반성하다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섣부른 좌클릭은 더 문제다. 우리가 여태 사회주의 개헌을 막은 게 잘못됐나? 부당한 입법을 막아온 게 잘못됐나? 국민들은 그게 잘못됐다고 이러는 게 아니다. 우리 당 "사람들이" 보기 싫은 거다. 중도를 표방한 정당이 우리보다 더 망가진 걸 생각해 보라.

보수가 다 죽은 줄 알지만, 아직 아니다. 이번 선거에서 콘크리트 우파가 30% 정도 있다는 게 입증됐다. 더이상 이들을 실망시켜선 안 된다. 뒷문 열어놓고 집 나간 토끼 잡으러 쫓아다녔다. 우리 당에 실망해 투표장에 나오지 않은 열성 우파가 아직도 많다.

이번엔 홍 대표 체제와 미북회담이 겹쳐서 결과가 더욱 악화됐다. 우리의 가치가 문제가 아니다. 조급함을 버리자. 보여주기식 이벤트로는 안 된다. 오히려 중심을 확실히 잡아야 한다.”

김진태 의원의 주장에는 이상한 대목이 많습니다. 6·13 선거의 투표율은 60%를 넘겼습니다. 1995년 1회 지방선거를 제외하고 가장 높았습니다. 자유한국당에 실망해 투표장에 나오지 않은 열성 우파는 별로 없었다고 봐야 합니다. 더구나 자유한국당이 ‘콘크리트 우파’ 30%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얘기는 앞으로 집권하지 말자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지방선거 결과를 색깔론으로 해석하거나, 선거에서 참패하고도 오히려 “깃발을 더 높이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런 식의 논리는 언론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선거 다음 날 신문에 실린 <조선일보> 사설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민주당이 13일 제7대 지방선거에서 17개 시·도 지사 중 14곳에서 1위(14일 0시 30분 현재)를 차지하는 등 유례가 드문 대승(大勝)을 거뒀다. 226개 기초단체장도 절반이 훨씬 넘는 곳을 차지했다. 민주화 이후 치러진 전국 규모 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이런 정도로 이긴 적은 없었다.

민주당은 이날 함께 치러진 12곳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도 11개 지역에서 승리하면서 130석으로 확실한 원내 1당 자리를 굳혔다. 최근 사법 권력까지도 진보·좌파 성향으로 짜였다. 언론의 정부 비판 기능도 거의 실종된 상황이다. 한국은 완벽하게 진보·좌파 쪽이 장악하게 됐다.“

‘한국은 완벽하게 진보·좌파 쪽이 장악하게 됐다’는 바로 이 대목을 보고 홍준표 전 대표가 “나라는 통째로 넘어갔습니다”라고 했던 것은 아닐까요? 류근일 조선일보 전 주필도 비슷한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자기가 한 말이 무슨 뜻인 줄 제대로 알고나 한 소리인지 심히 궁금하다. 예컨대 ‘수구-냉전적 사고방식과 보수 이념 해체’ 운운한 구절이 그렇다.

자신들이 지금까지 추구한 대북관계 정책, 활동, 언행, 노선이 정말 그처럼 ‘해선 안 될 수구 냉전적 짓거리’였다면, 그럼 그런 그들을 꼭 자유-우파인 줄만 알고서 애초에도 찍어주고 이번에도 30%대 지지율로 찍어준 표심(票心)은 순 가짜 우파를 찍어주었다는 것인가? 온갖 악조건하에서도 자기들을 찍어준 순진한 자유-우파 유권자들을 그런 식으로 일순간에 바보 만들어도 좋다 이거야?”

“그래서 필자는 세대교체, 얼굴 교체를 위해 평소에 딱 부러진 소리 잘하는 인물들 몇몇을 글에 올린 바 있다. 심재철, 김문수, 김진태, 전희경이 그들이다. 댓글을 보니 찬성도 있었고 어떤 사람에 대해선 반대도 있었다.

조갑제 씨는 여기다 원외(院外)의 박선영 전 의원(교육감 우파 단일후보)을 추가했다. 펜 엔 마이크 전무 겸 편집국장 권순활 씨는 차명진 전 의원과 박대출 의원을 더했다. 이런 식으로 이름들을 모아보자.”

놀라운 사실은 이런 논리에 자유한국당 초재선 의원들이 대체로 찬성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자유한국당 초재선의 상당수는 19대와 20대에 ‘박근혜 공천’으로 당선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김성태 원내대표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을까요? 있습니다. 김용태 의원이 이런 글을 썼습니다.

“국민들이 보수가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다고 보고 우리를 택하지 않는 것이다. 이 부분이 뼈아프다. 통상 정당의 정체성이나 신념 체계가 경제, 안보, 사회정책 등에서 드러난다.

우선 안보 문제에서 (선거 패배로) 우리만의 생각에 매몰된 것이 분명해졌다. 공포로부터 벗어나려는 국민의 간절한 소망, 여기에 부응하려고 하는 집권세력의 노력을 일방적으로 폄하했다.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이해하고 깨달았는지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경제 부분에선,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이 오류와 문제가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때도 설득력 있는 논리와 근거가 있고 나아가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미흡했다.

사회정책과 관련해서는 더 근본적인 문제일 수도 있는데 국민의 가치관 변화를 전혀 담아내지 못했다. 정부가 국민들의 가치관의 변화를 국가 정책 차원에서 제대로 담아내는 대안을 만들어냈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만 대신 인식하고 담아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기존 관성대로 반대 방향으로만 얘기한 채 국민 변화를 인식 못 했다.”

김영우 의원도 있습니다. <한겨레 TV> ‘더정치 인터뷰’에 초청해서 자유한국당 참패의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유가 너무 많다. 과오가 누적된 것이다. 2016년 총선 공천 파동에서 시작해 최순실 국정농단, 대통령 탄핵, 보수의 분열이 있었다. 가족, 공동체, 도덕, 품격, 경제주체의 자유 등 보수의 가치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실천 전략이 잘못됐다. 막말로 품격을 떨어뜨리고 대안도 없이 문재인 정부를 비판만 했다가 오히려 국민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 과거 반공 보수에 의존하면서 어쨌든 북한의 도발을 없애고 한반도에 평화가 지속하도록 해야 한다는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

역시 김성태 원내대표의 진단과 비슷합니다. 김성태 원내대표, 김용태 의원, 김영우 의원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새누리당을 탈당해 ‘합리적 보수’ ‘개혁적 보수’를 기치로 바른정당 창당에 참여했다가 다시 자유한국당으로 돌아온 이른바 ‘복당파’들입니다.

이들은 2007년 한나라당이 친이명박-친박근혜로 양분되었을 때 친이명박 쪽에 섰던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당시 ‘친이’의 가치관이 바로 ‘실용 보수’였습니다. ‘친박’의 가치관은 ‘정통 보수’였습니다. 지금 벌어지는 친박 대 비박의 싸움이 ‘수구’ 대 ‘실용’ 노선 투쟁 양상을 띠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유한국당 내부와는 달리 학계에서는 자유한국당 참패의 원인을 이른바 보수세력 전체가 ‘가치 투쟁’에서 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앞줄 왼쪽)이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단순히 정당과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근본 기류가 바뀌고 있다. 사람들이 과거 보수의 가치 대신에 평화, 공존, 분권, 균형 등 새로운 가치를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가치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김형준 명지대 교수)

“그런데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몰랐던 게 있다. 크고 길게는 산업화와 민주화와 세계화를 거치며, 짧고 좁게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촛불집회를 거치며 중도보수 유권자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 좌파-진보가 아님을,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 자신들의 선택지가 될 수 있음을, 그리고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진짜 보수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지난 선거는 민주주의를 짓누른 구시대의 가치를 격렬하게 벗어 던진 작별의 예식이었다. 산업화 공적에 목맨 ‘구세대의 진지’를 초토화한 세대교체의 포격전이었다. 구세대의 진지는 붕괴했다. 고도성장과 반공(反共)의 금기를 부수는 젊은 세대에게 시대 운영의 주도권을 넘기라는 웅장한 예포 소리가 한반도에 울려 퍼졌다.”(송호근 서울대 교수)

장훈 중앙대 교수의 분석과 전망이 가장 특이합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해 자유한국당 사람들을 관찰한 경험이 있습니다. 6월 15일치 <중앙일보> 칼럼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이제부터 질문은 낡은 보수정당의 자기혁신 혹은 몰락의 가속 혹은 일시적 변신의 가능성으로 모아질 터다. 필자는 지금의 한국당이 자기혁신을 이뤄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2020년 총선, 2022년 대선까지의 남은 시간 동안 한국당이 자기혁신을 이뤄내고 역사적 컴백을 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낡은 보수정당이 혁신을 이뤄내기보다 오히려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있는 원내 정치계급들의 처절한 권력다툼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더 크다. 국회의원 110여 명을 보유한 정당에 주어지는 숱한 보호장치와 특권들(연간 100억원을 훌쩍 넘는 국고보조금, 각종 선거에 후보를 낼 수 있는 독과점적 권력, 무소속 후보들에 대한 철저한 차별을 통한 선거법상의 기득권 등) 때문에 한국당은 확실하게 파산하지도 않으면서 그럭저럭 버티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갈 수 있다.”

자유한국당의 노선 투쟁에서 ‘비박 실용 보수’가 ‘친박 수구 보수’에 패배하고 결국 보수 혁신에 실패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자유한국당으로서는 정말 무시무시한 예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지금 자유한국당 상황은 장훈 교수의 말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를 흉내 내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요?

“2020년 총선에서 또다시 패배한 자유한국당 사람들은 한숨 쉬며 말할 것입니다. 2018년 지방선거 참패 직후 ‘실용’과 ‘수구’의 두 갈래 길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가지 말라는 수구의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 선택이 우리를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뜨렸다고.”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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