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낳은 비극의 땅 DMZ..이젠 최고의 자연 전시장

국민정책평가신문 | 기사입력 2018/07/07 [11:33]

전쟁이 낳은 비극의 땅 DMZ..이젠 최고의 자연 전시장

국민정책평가신문 | 입력 : 2018/07/07 [11:33]

 토요판] 서재철의 DMZ 이야기
(1) 자연

[한겨레]

중부전선에서 동부전선으로 넘어가는 철원 김화에서 본 디엠제트다. 한북정맥을 지나서 적근산과 백암산까지 한반도 허리를 횡단하는 디엠제트가 동쪽으로 펼쳐진다.

경이로웠다. 서부에서 동부까지 비무장지대(DMZ)의 자연은 압도적 풍광을 보여준다. 생태계와 경관은 모두 그림 같은 모습이다. 한반도 자연이 빚어내는 다양한 모습을 그대로 품고 있다. DMZ는 국제적안 생태적 보고로 평가된다. 하지만 군사적 대치 상황 때문에 접근이 어려웠다. 그래서 실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DMZ는 한반도 허리 248km를 가르는 생태축이다. 살아 있는 한반도 자연의 전시장이다. 동북아에서 한반도로 뻗어 나온 대자연의 속살과 겉살 모두를 간직하고 있다. DMZ에서는 응축된 자연의 본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경기도 파주부터 연천을 거쳐 강원도 철원, 화천, 양구, 인제, 고성까지 2개 광역도와 7개 시군이 연결된 자연생태계의 횡축은 65년 이상의 세월을 숨죽이며 지내왔다. 하지만 생태계는 DMZ 내부에서 역동적으로 꿈틀거렸다. 온갖 모습을 맘껏 드러내며 인간의 간섭이 제한된 환경에서 스스로의 질서를 만들어갔다.

DMZ는 지형적으로 크게 산지, 평지 그리고 습지로 펼쳐진다. 이 세가지 기본적인 형태의 자연이 오밀조밀 압축적으로 혹은 변화무쌍하게 엉켜서 한반도 허리를 관통하며 펼쳐진다. 산업화 이전 북반부 온대림의 원형이다. 유럽에도 아시아에도 찾기 힘든 자연의 모습이다.

한반도 가로지르는 생태의 보고

시작은 서부전선부터다. 파주와 연천의 사천강-백학산-사미천-고왕산-임진강-역곡천 등이 연결되어 하천과 습지 그리고 구릉성 산지가 자리잡고 있다. 특히 과거 농경지 또는 평야지대가 전쟁 이후 평원으로 변했다. 이 사이 사이에 작은 저수지와 둠벙 등이 습지를 형성하며 어우러져 있다. 구릉성 산지와 하천 그리고 평원과 습지가 자연상태 그대로 맞물려 있다. 특히 서부전선에는 하천의 물줄기가 남북으로 흐르면서 그 배후와 주변에서 풍부하고 다양한 습지를 빚어냈다. 전쟁 이전에는 거의 논으로 이용되던 곳들이다. 정전으로 DMZ가 만들어지면서 대부분의 농경지가 자연천이 과정을 거쳐 습지 혹은 평원으로 변한 상태다.

서부전선에는 습지가 다양하고 넓게 분포한다. DMZ와 민통선 지역을 관통하는 물줄기와 함께 발달했다. DMZ의 습지는 지리적으로 서부전선과 중부전선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서부전선 DMZ에 들어가면 구릉성 산지 사이 사이로 다양한 습지가 형성돼 있다. 물과 초지의 경계가 따로 없다. 비가 많이 오면 물이 차서 넉넉한 습지가 되기를 반복하는 곳이다.

서부전선 전체가 자연이 스스로 자신의 질서를 찾아서 변모하는 과정에 있다. 겉보기에는 산지에 숲이 빈약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느 생태계보다 역동적이다. 천이과정을 통해 스스로가 생명의 관계를 촘촘히 그물처럼 형성하고 있다. 숲이 안정되어 가는 각각의 단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단순히 숲으로만 형성된 것보다는 여러 모습의 숲과 초지, 습지가 혼재되어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DMZ 바로 뒤쪽 민통선 산림의 단순한 형태를 뛰어넘는 변화무쌍함이 있다. 이것이 DMZ의 생태적 가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모습 중 하나다.

파주부터 고성까지 248km
한반도 가로지르는 생태축
65년 세월 인간 손길 안닿아
산지, 평지, 습지 다양하게 엉켜
산업화 이전 온대림 원형 간직

중부전선은 철원이다. 전체 DMZ의 1/3이 철원 지역이다. 추가령 구조곡을 따라서 DMZ 철원평야까지 이어진다. 중부전선의 철원 DMZ에서 동북 방향으로 평강고원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한반도 중부 자연사의 정점이다. 철원은 평야를 비롯하여 동쪽 김화읍과 원동읍에는 산지도 우람하게 자리잡고 있다. 안암산-오성산-성제산-계웅산-한북정맥(삼천봉)-적근산으로 이어지는 철원의 산림지역은 서부와 중부를 거쳐 동부의 산악지형으로 이어지는 생태통로 역활을 한다. 이중 오성산은 우람하게 솟아 있다. DMZ와 붙어 있거나 연접한 산들은 대부분 남한에 주봉이 있다. 그런데 철원의 오성산은 주봉이 북한쪽에 자리잡고 있다. 산지는 대부분 산림으로 되어 있고 그 사이에 한탄강, 김화 화강 등이 북에서 남으로 물줄기가 유유히 흐르고 있다.

디엠제트 내부의 북한강 모습이다. 인간의 인위적인 개발이 없던 시절, 하천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둔치와 천변이 자연 그대로의 생태서식지로 남아 산림부터 수변까지 그대로 연결돼 있다.

동부전선은 산에서 시작하여 산으로 끝난다. 화천 백암산-양구 백석산(어은산)-인제 백두대간 삼재령-고성 건봉산으로 연결되는 산림이 이어진다. 동부전선은 DMZ 내부로 들어가도 군사분계선이 어디에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찾기가 쉽지 않다. 첩첩산중의 천연림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이다. 남방한계선 철책선과 북방한계선 철책선 만 빼면 모두가 산림이다. 이 중간 중간에 금성천, 북한강, 수입천, 인북천, 고성 남강 등이 자리잡고 있다.

동부전선에서는 물줄기조차 산속으로 깊이 구불구불 흐르는 듯하다. 동부전선의 산림은 50년 이상된 숲으로, DMZ 내부와 민북지역 모두 천연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난 2006년부터 동부전선의 민북지역 주요 산림은 국가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동부전선은 민북지역에도 주민들이나 마을이 거의 없다. 양구 해안면을 제외하면 온통 산림지대로 돼 있다.

전쟁 이전 동부전선은 원시림을 자랑했다. 특히 백두대간 고성재-삼재령 일대는 금강소나무 원시림이 일품이었다. 지름 2m에 높이 30m에 달하는 금강소나무가 태곳적 신비를 간직하던 곳이었다. 백두대간과 DMZ가 만나는 인제와 고성의 경계지역이다. 일제의 수탈과 전쟁으로 원시림 거목은 사라졌다. 하지만 지금도 DMZ 내부와 민북지역에는 금강소나무의 아름드리 자태를 만날 수 있다.

동부전선의 원시림은 수탈과 전쟁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65년 세월은 이를 상당히 치유했다. 이제는 백두대간과 주요 국립공원과 같은 산림생태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백두대간 줄기와 한북정맥 줄기 사이를 횡단하여 펼쳐지는 적극산-백암산-백석산-삼재령-건봉산 등의 DMZ 동부 산림 생태축은 동식물의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이 가로축과 설악산-금강산으로 이어지는 생태축이 바로 백두대간과 DMZ가 만나는 한반도 생태축의 교차점이자, 중심축이다.

DMZ 내부에는 자연생태계와 자연경관 등을 망라한 자연환경이 빼어난 곳들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사천강 습지-임진강 하류 습지 2. 사미천 습지 3. 임진강 습지 4. 평강고원 철원평야 5. 한탄강 습지 6. 한북정맥 삼천봉 적근산 7. 백암산-금성천-북한강-백석산 8. 양구 해안분지 9. 백두대간 고성재 삼재령 10. 고성 건봉산-남강. 현재까지 현장에 펼쳐진 자연환경을 살펴본 결과로 정리한 것이다.

이 곳들은 자연환경과 산림환경이 어우러진 대표적인 곳들이다. 생태적 측면과 지형지리적 측면에서 상징성과 가치를 지닌 곳이다. 자연생태계의 서식지로서 생물 다양성이 높은 곳을 비롯하여 지리학 차원에서 자연사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도 포함돼 있다. 향후 남북이 종합적인 자연환경 및 산림환경 종합조사를 실시하면 일부 추가될 수도 있을 것이다.

멸종위기 동식물의 보금자리

DMZ는 기존 보고서에서도 생태적 가치를 충분히 확인시켜 주고 있다. 국립생태원은 지난 6월 중순 ‘1974년부터 작년까지 DMZ일대를 조사한 각종 학술보고서를 분석한 것’을 발표했다. DMZ에 서식하는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은 모두 101종으로, 전체 267종의 38%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DMZ가 멸종위기 동식물의 보금자리라는 것을 말해 준다.

멸종위기동식물 101종 서식
반달가슴곰, 사향노루, 산양 등
남한 최고의 포유동물 서식지
금강소나무 등 식물도 2504종
막개발 우려…보호 대책 시급

천연기념물 산양이다. 화천 백암산부터 양구 백석산, 고성 건봉산까지 동부전선 디엠제트 곳곳에 서식하고 있다. 디엠제트의 산양은 사람을 회피하지 않고 여유있는 모습을 보인다.

DMZ의 생태적 가치는 동물이 먼저 언급된다. 종의 다양성과 종별 개체수도 남북한 통털어 으뜸이다. 추측컨대 DMZ는 북한의 백두산 원시림지대를 제외하면 한반도에서 가장 안정적인 동물의 서식공간이다. 포유동물의 경우 남한 최고의 서식지라고 할 수 있다. 반달가슴곰을 비롯하여 산양, 사향노루, 삵, 수달, 담비, 하늘다람쥐 등이 살고 있다. 이중 반달가슴곰은 철원부터 화천, 양구, 인제, 고성까지 중부전선부터 동부전선까지 여유롭게 살고 있다. 국내에서 야생반달곰의 서식은 지난 99년 지리산에서 확인된 것이 유일하다. 사향노루도 80년대 이후 직접 확인 된 것은 DMZ가 유일하다. 국립생태원 우동걸 박사는 “포유동물은 생물학적 진화로 볼 때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다. 그래서 인간의 개발과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DMZ는 동물들이 생태적 측면에서 인간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서 가장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라고 말했다.

식물도 풍부하다. 국립수목원이 조사한 ‘DMZ식물 155마일’에 따르면 식물이 2504종에 이른다. 이는 국내 전체 식물종 4425종의 56%에 해당한다. 이정호 국립식물원 DMZ자생식물원장은 “DMZ는 한반도 허리답게 북한식물과 남한식물이 어우러지는 곳이다. 식물의 보금자리로 보전적 측면과 이용적 측면 모두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조사 결과는 DMZ가 백두대간과 함께 한반도 자연의 생명 줄기라는 것을 말해준다. 실제로 환경부는 지난 2000년 “한반도의 생태축으로 백두산부터 지리산까지 연결된 백두대간을 종축으로 삼고, 서해에서 동해까지 이어진 DMZ를 횡축으로 설정한다”고 선언했다. 백두대간은 지난 2005년부터 백두대간보호법이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반면 DMZ는 아직 정부의 보호장치가 없다. 법과 제도에 의해 보호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DMZ는 전쟁과 냉전이 만든 비극의 공간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자연에게는 유례없는 낙원이 되었다. 20세기 이래로 근대적 경제활동과 산업화로 더 이상 한반도에 남아 있지 않은 자연의 다양한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해안지역부터 고산지역까지 본래 자연의 모습이 나이테처럼 켜켜이 자리잡고 있다.

4.27 판문점선언과 북미정상회담 이후 DMZ를 개발하겠다는 온갖 구상들이 줄을 서고 있다. DMZ는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이미 전체 면적의 40% 이상이 축소됐다. 인민군이 먼저 북방한계선 철책선을 남쪽으로 이동시켰다. 여기에 우리 군도 대응 차원에서 남방한계선 철책선을 북쪽으로 전진시켰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DMZ를 ‘248km 길이에 남북으로 폭 4km 떨어진 공간’이라 한다. 하지만 실제 공간의 면적은 훨씬 작다.

DMZ의 평화가 난개발의 평화가 되지 않도록 준비해야 한다. 전쟁과 분단의 슬픔을 딛고 한민족이 인류에게 주는 미래의 세계유산이 바로 DMZ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형태의 개발도 DMZ 밖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서부와 중부 디엠제트에는 과거 농경지와 마을이었던 곳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서 자연지역으로 변한 곳이 많다. 철원의 디엠제트 내부에서 발견한 모습이다. 60년 전 농경지 원형이 그대로 간직돼 있다. 파주 세월천의 습지 모습이다. 서부전선은 곳곳에 습지가 자리잡고 있다. 동부전선의 왜솜다리 군락이다. 왜솜다리는 희귀식물로 적근산, 백암산, 백석산, 건봉산 등에 서식한다. 디엠제트에는 모두 2500종가량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닻꽃. 양구 디엠제트에서 관찰됐다. 환경부가 선정한 멸종위기식물 2급 법정보호 동식물로, 디엠제트 대표생물 12종의 하나다. 서부전선을 날고 있는 재두루미 무리다. 파주부터 철원의 디엠제트와 민통선에 겨울이면 찾아온다. 두루미와 재두루미 등은 국제적인 보호종이다. 금강초롱꽃. 한국특산종으로 동부전선 디엠제트를 대표하는 고산식물 중 하나다. 양구·인제 디엠제트 내부의 지피(GP)로 들어가는 진입로에서 볼 수 있다.

서재철 환경운동가. 녹색연합 전문위원. 비무장지대(DMZ)민북(민통선 이북) 산림생태복원사업 등의 목적으로 2000년부터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DMZ 내부와 민북지역을 조사 및 연구하고 있다. 지난 2006년에는 DMZ 248km를 직접 걸어서 탐사했다. <지구상의 마지막 비무장지대를 걷다>라는 책을 썼다. 남북화해시대,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DMZ의 생태와 지리, 역사, 사람 등에 관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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