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에 거른 '단차', 쌍화점의 만두 '상화'… 천년 고려의 맛

김종분 | 기사입력 2018/07/16 [13:10]

비단에 거른 '단차', 쌍화점의 만두 '상화'… 천년 고려의 맛

김종분 | 입력 : 2018/07/16 [13:10]

 

25일 고려 건국 1100주년 맞아 '고려의 맛' 재현 행사 잇따라

세련된 단차, 속이 꽉 찬 상화… "개방적·우아한 귀족문화 드러내"

찻사발에 뜨거운 물과 녹차 가루를 붓고 다선(茶筅·가루차를 물에 풀리도록 젓는 도구)으로 휘젓자 연둣빛이 감도는 미세한 거품이 뽀얗게 오른다. 한국 차의 중흥조 초의선사(1786~1866)의 다풍(茶風)을 잇는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박동춘(65) 소장의 손길에서 청아한 차향이 피어올랐다. 산뜻한 풋풋함과 은근한 구수함, 기분 좋을 정도의 쓴맛이 어우러진 섬세하면서도 세련된 맛이었다. 박 소장은 "이게 '고려사절요' 등 여러 기록에 당시 귀족들이 즐겼다고 나오는 고려 단차(團茶)"라고 했다.

오는 25일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아, 옛 책과 기록을 바탕으로 재현한 '고려의 맛'의 진면목을 확인하는 행사가 연달아 열린다. 그 깊은 맛을 미리 확인했다.

◇고려의 세련미 담은 '단차'


조선일보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박동춘 소장이 고려 귀족들이 마시던 ‘단차’를 거품 내기 전 찻물을 붓고 있다. 찻잔과 주전자, 맷돌 등 청자 다구는 경기도 여주에서 ‘하빈요’를 운영하는 이명균 도예가가 만들었다.


박 소장은 17일 오후 2시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고려시대 단차의 특징' 강연을 한다. 전문 시연자들이 고려시대 탕법 과정을 재현하고 단차 시음도 진행한다. 일반인도 선착순으로 참여할 수 있다. 중앙박물관이 이날부터 열흘간 여는 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 문화 행사의 첫 특강이다. 박 원장은 "고려 단차는 제다법(製茶法) 기록이 없어 당대 다서(茶書)와 역사서, 중국 기록 등을 참고해 재현했다"고 했다.

단차는 만들고 우려 마시는 방식이 까다로웠다. 시루에 증기로 쪄낸 찻잎은 누렇게 변하지 않도록 대나무에 펼쳐 뜨거운 기운을 빼준 다음, 삼베로 싸고 돌로 눌러 쓴맛을 빼낸다. 나무 절구로 찧어내 다연에 갈아서 틀에 눌러 담아 작게 찍어내 따뜻한 온돌에서 말린다. 마실 때는 먼저 단차를 숯불에 구워 풀 냄새를 제거하고 수분을 최대한 없앤다. 구운 단차를 빻고 다시 갈아서 나온 찻가루는 비단에 쳐서 가장 고운 가루만을 받아서 합에 담는다. 이 찻가루를 다선으로 격불(擊拂·차선을 빠르게 움직여 거품을 내는 행위)해 마시는 게 당시 고려 귀족들이 차를 즐기는 방식이었다. 고려 단차는 선명한 초록색 거품을 내는 일본 말차(抹茶)와 달리 연둣빛 고운 거품이 난다. 맛도 쓰고 떫은 말차에 비해 훨씬 은은하고 우아하다. 박 소장은 "단차는 고려 문화가 얼마나 세련됐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상화'가 품은 고려의 개방성

20일 오후 7시 서울 돈의문박물관마을 음식 문화공간 '면담'에서는 단차와 고려 음식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상화(霜花)' 시식·강연회가 열린다. '쌍화(雙花)'라고도 불리는 상화는 고려 충렬왕 때 향악곡 '쌍화점(雙花店)'에 언급되지만 정확히 어떤 음식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음식 칼럼니스트 박정배씨는 중국 문헌을 뒤져 이를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에서 만든 만두의 일종"으로 추정했다. 만두란 발효시켜 부풀린 반죽에 속을 넣거나 넣지 않은 채 쪄낸 찐빵을 닮은 음식. 요즘 흔히 '만두'로 불리는 음식은 원래 교자(餃子)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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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배 음식 칼럼니스트와 요리연구가 서명환씨가 재현한 고려 가요 ‘쌍화점’의 만두 ‘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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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고려시대 이후 한글은 '솽화'를 거쳐 '상화'로 통일된 반면 한자 표기는 '雙下(쌍하)' '雙花(쌍화)' '霜花(상화)' '床花(상화)' 등 다양했다. 금나라 음식을 음차(音借)했기 때문에 한자 표기가 여러 가지인 것"이라 했다.

박씨는 "이후 여러 문헌에서 만두의 일종을 가리키는 말로 나온 '상화'가 1670년경 쓰인 최고(最古) 한글 요리책 '음식디미방'에 상화병(霜花餠)으로 나온 것"으로 봤다. 20일 행사에선 요리연구가 서명환씨가 상화를 재현한다. '음식디미방'에 나온 대로 소고기·표고버섯·숙주·애호박을 넣은 상화와 꿀로 단맛을 더한 팥이 들어간 상화 등 2종류를 만들었다. 막걸리로 발효시켜 탄력 있는 쫄깃한 피와 두 가지 속이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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