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한미 FTA 때처럼… 文대통령 앞에 '友軍의 반대'

서정태 기자 | 기사입력 2018/08/09 [08:17]

노무현의 한미 FTA 때처럼… 文대통령 앞에 '友軍의 반대'

서정태 기자 | 입력 : 2018/08/09 [08:17]

 實事求是' 내걸고 규제 개혁 문재인 대통령이 인터넷 전문 은행에 대한 '은산(銀産) 분리' 완화를 시작으로 의료, 빅데이터, 드론, 자율주행차 등 산업 전반으로 규제 완화를 확대할 것으로 8일 알려졌다. 그러나 참여연대와 민변 등 핵심 지지층과 민주당 강경파가 "재벌만 도와준다" "재벌에 포섭됐다"며 반대하고 있어 문 대통령 구상처럼 규제 완화가 '혁신 성장'으로 성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청와대 관계자는 "중요한 것은 무슨 원칙이나 주의(主義)가 아니라 국민 삶을 개선하고 일자리를 늘린다는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일단 인터넷 전문 은행과 의료 산업 분야부터 규제 벽을 깨겠다는 구상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인터넷 전문 은행 규제 혁신 행사장을 방문했고, 지난달에는 의료 기기 규제 혁신 현장을 방문했다. 여권의 반대로 무산됐던 원격진료 같은 '금기' 분야가 이번에 허용될지도 쟁점이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인 작년 4월 한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을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은산 분리 원칙은 지키되 인터넷 전문 은행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의료 산업에도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성장에 기여할 길이 많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격진료에 대해 "원격진료를 도입하는 것은 의료 공공성과 잘 조화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허용 가능성에 무게를 둔 발언을 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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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핵심 규제 혁신 분야로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위한 개인 정보 규제 완화, 드론의 비행 공역 추가 지정, 자율주행차의 임시 운행 허가 절차 간소화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문 대통령은 올해 들어 규제 개혁에 대한 발언 수위를 계속 높여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규제 혁신 토론회에서 "과감한 방식, 그야말로 혁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고, 5월에는 "정부 1년이 지나도록 혁신 성장에서 뚜렷한 성과와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며 관료와 청와대 관계자들을 공개적으로 질책했다. 지난 6월에는 "답답하다"며 예정된 규제 혁신 점검 회의를 취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규제 혁신에 속도를 낼수록 지지층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이날 "은산 분리는 민주당 당론인데 당론이 변경되려면 그에 합당한 절차가 필요하다"고 했다. 범(汎)여권에서는 민주평화당 천정배 의원이 "섣부른 은산 분리 완화는 산업 자본의 불공정한 이권 추구를 부르고 이는 경제 전체를 위험에 빠트린다"며 "이는 박근혜 정부 당시 민주당이 반대했던 반개혁 정책"이라고 했다. 정의당과 참여연대 등은 토론회를 열어 "정부와 여당 모두 은산 분리 규제의 완화를 반대하는 여론을 무시하고 국민에게 정책을 주입하고 있어 참담하다"고 했다. 시민단체들은 "문재인 정부도 결국 재벌에 포섭돼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

규제 완화를 둘러싼 청와대와 진보 진영의 갈등은 노무현 대통령 때 한·미 FTA를 둘러싼 청와대와 진보 진영 갈등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로서 노 전 대통령이 우군(友軍)에게 비판받는 모습을 지켜본 당사자다. 문 대통령은 당시 상황에 대해 책 '운명'에서 "노 대통령은 한·미 FTA에서 줄곧 '장사꾼 논리'와 '국익'을 강조했다"며 "이런 접근법은 협상단에 큰 힘을 실어줬다"고 했다. 이어 "진보 진영이 영원한 소수파로 머물지 않으려면 국가와 국가 경영에 대해 더 책임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규제 완화에서 '실사구시'를 강조한 것도 이런 문제의식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갈등이 커진 이유로 청와대와 반대 진영의 '소통 부족'을 꼽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조국 민정수석, 이용선 시민사회수석 등이 직접 설득에 나설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규제 개혁이 아직 시동도 걸지 못한 단계에서 진보와 충돌하고 있기 때문에 본격적 규제 완화는 꺼내지도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70%를 웃돌던 문 대통령 지지율이 60%대로 하락한 국면에서 핵심 지지층의 반대에도 일관된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지 의문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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