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 법리도 내팽개친 채 ‘헌재 깎아내리기’ 골몰

권오성 | 기사입력 2018/08/09 [08:24]

양승태 대법, 법리도 내팽개친 채 ‘헌재 깎아내리기’ 골몰

권오성 | 입력 : 2018/08/09 [08:24]

 ‘헌재 비상적 대처 방안’ 문건

권력 다가서려 법리도 외면

전교조 법외노조 재판 땐

“국정운영 파트너 부각” 안간힘

통진당 지방의원 유지 판결은

헌재 문제점 짚었단 이유로 두둔

최고법원 위상 집착 ‘기싸움’

1987년 민주화로 출범한 헌재

탄핵 등 거치며 존재감 보이자

‘최고법원’ 자임 대법 위기감 느껴

위상 복원 기회로 활용하려 한 듯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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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말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에서 작성한 ‘헌재 관련 비상적 대처방안’ 문건에는 같은 최고법원인 헌법재판소를 바라보는 대법원의 ‘반헌법적’ 시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문건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헌법기관으로서 헌재의 기능을 전면 부인하고, 오로지 대법원의 위상을 위협하는 존재로만 인식했다. 대법원과 헌재의 ‘기싸움’은 해묵은 것이지만, 이번에 공개된 문건들은 최고법원이 작성한 것으로 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좀스럽다’.

‘헌재 무력화’ 위해 법리 ‘폐기’ 2014년 12월 행정처 기획조정실이 작성한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관련 문건은 대법원의 ‘뇌 구조’를 엿볼 수 있는 요약본이라 할 만하다. 당시는 행정처가 전교조의 법외노조 처분 효력을 정지시킨 서울고법 결정을 파기할 방안을 집중적으로 검토할 때였다. 문건은 “BH(청와대)는 대법원과 헌재라는 두 사법 최고기관이 어려운 국정 현안에 얼마나 협력하는지에 따라 평가할 것”이라며 “(대법원이) 국정운영 파트너라는 이미지를 최대한 부각시킬 수 있는 시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정리한다.

행정처의 ‘헌재 공세전’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국회 입법의 마지막 기회였던 2015년 극심해졌다. 통합진보당 소송이 대표적인 사례다. 애초 행정처는 청와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통진당 지방의원직까지 박탈하는 ‘기획 소송’을 준비할 만큼 통진당에 적대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적대적 태도도 헌재와 위상 경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는 예외였다. 당시 전주지법이 통진당 지방의원의 직위를 유지하는 판결을 내놓자 “헌재의 월권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적절하다”는 공보지침을 마련한다. 이듬해 통진당 국회의원들이 직위를 인정해달라며 낸 소송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할지 검토할 때도 “판단 권한이 (헌재가 아닌) 사법부에 있음을 보다 명징하게 알릴 수 있”다는 이유로 ‘긍정적 검토’를 했다.

행정처의 ‘헌재 무력화’ 계획은 2016년 말 탄핵 정국에도 계속됐다. 개헌 국면에서 헌재의 문제점을 부각해 재판소원 도입 등을 ‘저지’하고, 비법조인도 헌재 재판관이 될 수 있도록 해 “헌재와의 관계를 절연”한다는 방안도 짰다. 그러면서도 “법원이 헌재와 관계에서 기관 이기주의에 사로잡혔다는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며 ‘철통보안’을 당부했다. 보고서 내용이 부적절하다는 점을 스스로 알고 있었던 셈이다.

‘상고법원’ 걸림돌 제거 목적 행정처가 헌재 무력화에 골몰한 데는 헌재와의 ‘불편한 동거’에 마침표를 찍으려는 의도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1987년 민주항쟁의 결과물인 헌재가 정당해산·탄핵 심판 등으로 인지도가 높아지자, ‘최고법원’을 자임하던 대법원으로서는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특히 두 기관은 한정위헌(법조문 자체는 합헌이지만, 특정하게 해석하면 위헌) 결정을 두고 한 차례 충돌한 바 있다. 대법원은 위헌 여부만 따져야 할 헌재가 법률 해석 권한까지 침탈했다고 주장하며,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줄곧 무시해왔다. 1996년 양도소득세 사건에서 대법원은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무시했고, 헌재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취소하는 ‘촌극’을 벌였다. 최근 들어 소송 당사자들이 대법원 재판에 승복하지 않고 헌재 문을 두드리거나, 재판소원(법원 판결을 헌재의 헌법소원 청구 대상에 포함) 도입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도 대법원으로서는 불편했을 것이다.

담당 분야를 막론하고 행정처의 실·국이 ‘헌재 무력화’에 총동원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비상적 대처방안’ 문건 작성에는 대법원 양형위원회도 참여했는데, 헌재 관련 검토는 양형위의 업무가 아니다. 이와 관련해 이규진 당시 양형위 상임위원은 “양형위 업무가 아니다”라면서도 “(내가) 헌법연구회 부회장까지 지낸 헌법 전문가여서 (업무와 무관하게) 헌재 관련 검토는 많이 했다. 하지만 해당 문건은 기억에 없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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