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읽을만한 책] 셰익스피어 정치적 읽기

김종분 | 기사입력 2018/09/24 [08:53]

[추석에 읽을만한 책] 셰익스피어 정치적 읽기

김종분 | 입력 : 2018/09/24 [08:53]

 

파이낸셜뉴스

셰익스피어 정치적 읽기


셰익스피어 정치적 읽기/ 테리 이글턴/ 민음사

영국의 대표적 마르크스주의 비평가인 저자는 이 책에서 세계 문학사에 빛나는 셰익스피어에 대한 수많은 찬사로부터 살짝 물러나, 왜 셰익스피어가 끝없이 새롭게 읽히는가를 독창적으로 분석한다. 모든 위대한 문학 작품의 경우가 그렇듯, 셰익스피어 역시 이데올로기를 가진 인간이자 글쓰기로 그것을 뛰어넘은 작가였다. 셰익스피어의 이데올로기와 글쓰기. 그 사이에 셰익스피어를 읽는 단서와 쾌감이 있다.

저자는 셰익스피어를 읽을 때마다 “셰익스피어가 헤겔,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 데리다 등의 저작에 친숙했다는 느낌을 받는다.”라고 쓴다. 물론 셰익스피어는 가장 옛날 사람이고,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셰익스피어가 현대성을 선취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셰익스피어 연구가 여기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 이글턴은 다양한 이론을 통한 문학 읽기가 번성하는 한복판에서 셰익스피어를 현대적 측면에서 읽는 데 강조점을 둔다.

작가의 이데올로기가 작품과 배치될 수 있다는 명제의 유명한 예로 엥겔스의 발자크론이 있다. 발자크 자신은 보수주의자였는데, 그의 철저한 리얼리즘이 이념을 넘어서 프랑스 사회의 이해에 이르렀다는 것이 ‘리얼리즘의 승리’로 불린다. 지주였던 톨스토이가 러시아 농촌을 묘사한 장편 소설을 통해 ‘러시아 혁명의 거울’이 되었다는 레닌의 비평에서도 보이는 이러한 마르크스주의 문학론은 이글턴의 셰익스피어론에 와서 변주된다. 위 인용문에서 보듯 그는 셰익스피어의 ‘승리’가 아닌 ‘딜레마’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글턴은 셰익스피어에서 기의와 일치하지 않는 기표를 읽는 방법론을 ‘정치 기호학적’ 시도로 명명한다. 사회 안정에 대한 작가의 신념을 초과하는 홍수 같은 언어를 분석하는 기호학이, 텍스트와 역사를 연결하는 정치적 읽기와 결합된다. 동시대 셰익스피어 연구자들이 셰익스피어가 탄생한 배경의 역사를 파고들거나 셰익스피어와 당대 지배 계층의 이념적 친연성을 밝힌다면 이글턴은 텍스트의 매력을 눈앞에 둔 채 역사와 비견하는 방식을 택한다. 셰익스피어의 시대가 신흥 부르주아가 대두하면서 귀족 계급이 퇴장하는 사회 변동기였고, 셰익스피어의 동시대인들이 화폐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았다는 역사가 지적될 때 이글턴 비평 고유의 특징이 드러난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의 비판은 마르크스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라고 이글턴이 한 책의 서문에 썼듯, 마르크스 자신이 이미 ‘아테네의 타이먼’을 비롯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자본주의 사회를 분석하는 가능성을 끌어왔다. 그리고 이글턴의 이 책은 당시의 지배적 담론과 대결하여 모든 억압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데 비평의 목적을 두며 그 뒤를 잇는다. 이로써 이글턴의 정치적 비평은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을 반복해 외치는 확성기에서 물러나, 주인공 영웅들이 짊어진 무게에서 벗어나 실제 문제를 되찾게 만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1996년 민음사에서 출간됐던 책을 복간한 이번 2판에서는 전체적으로 번역을 수정하고 판형과 새로 했다. 제목을 ‘정치적 읽기’로 바꾸면서 위대한 셰익스피어를 고통받았던 동시대 사람들과 나란히 놓는 이글턴 특유의 정치적 비평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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