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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 도청 앞 집단발포 전날 ‘상부 발포 명령’ 내려졌다
 
권오성   기사입력  2018/10/11 [10:29]

 

“자위권 발동 지시 있었으나…” 당시 최세창 3공수여단장의 20일 증언 기록

‘21일 현장 지휘관 판단’ 주장과 달리 최소 14시간 이전 ‘사전 명령’ 첫 확인

5·18민주화운동 당시 5월21일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가 있기 하루 전 계엄군은 상부로부터 ‘자위권 발동(발포) 지시’를 받았던 것으로 <제5공화국 전사>에서 확인됐다. “도청 앞 집단발포는 상부 지시가 아닌 현장 지휘관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던 신군부의 주장과 달리 사전에 ‘발포 명령’이 내려졌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진 것이다.

10일 경향신문이 국방부와의 소송을 통해 확보한 전두환 정권의 비밀책자 <5공 전사> 4편에는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된 3공수여단이 1980년 5월20일 오후 11시 자위권 발동 지시를 실행한 것으로 나온다.

<5공 전사>는 5월20일 광주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 ‘자위권 발동 지시’가 있었으나 선량한 시민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인내와 극기로 버티어 왔던 계엄군들은 드디어 자위권을 발동하였고 진압봉, 최루탄, 화학탄 등을 총동원하여 시위진압에 사력을 다하였다”라고 기록했다. 또 “극렬 폭도들을 물리치기 위하여 공포도 발사해야 했다. 이리하여 이날 밤 11시경 광주소요의 발발 이래 최초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고 적었다.

3공수는 기차를 이용해 5월20일 오전 7시30분쯤 광주역에 도착한 뒤 진압작전에 참여했다. <5공 전사>는 ‘5월20일 자위권 발동’ 기록의 근거가 “당시 3공수여단장이었던 최세창 장군의 증언”이라고 ‘각주’에서 밝히고 있다. 최세창은 12·12 쿠데타를 주도한 신군부 핵심인사다. 1995년 12·12 군사반란 및 5·18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은 이날 밤 3공수의 집단발포로 시민 4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결론냈다.

자위권 발동을 지시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5공 전사>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자위권 발동 지시’ 기록은 광주 학살 책임자를 밝히는 중요한 단서일 수 있다. 계엄군의 발포로 5월21일 하루에만 광주에서는 54명 이상이 숨졌지만 그동안 발포를 지시한 상부가 있다는 기록은 나오지 않았다.

신군부는 “전남도청 앞에서의 집단발포는 상부 지시가 아닌 현장 지휘관(대대장)의 판단에 따른 자위권 발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지난해 펴낸 회고록에서 “광주에 출동한 계엄군은 계엄사령관이나 상급 작전지휘권자의 자위권 발동 지시가 없더라도 당연히 ‘정당방위권’과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노영기 조선대 교수는 “3공수가 5월20일 밤 자위권을 발동했다는 것은 도청 앞 집단발포 전에 이미 발포명령이 내려져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라면서 “상부 지시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한 만큼 경위를 밝혀 발포 명령자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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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0/11 [10:29]  최종편집: ⓒ 정책평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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