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평화, 유럽이 무슨 소용? 文대통령 파리 간 진짜 이유

서정태 기자 | 기사입력 2018/10/15 [10:05]

한반도평화, 유럽이 무슨 소용? 文대통령 파리 간 진짜 이유

서정태 기자 | 입력 : 2018/10/15 [10:05]

 

JTBC

 

1950년 프랑스 파리.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유럽엔 공포가 가득했다. 파리는 누구보다 평화를 갈구했다. '영원한 라이벌' 독일은 1차 세계대전 후 가혹한 패전 책임 속에서도 두번째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동서독으로 분할됐지만 압박과 억제로는 부족했다.

프랑스 경제계획청 장관(청장) 장 모네는 경제에 주목했다. 석탄과 철강은 당시 '산업의 쌀'이다. 독일 등과 함께 두 핵심자원을 안정적으로 관리한다면 상호 의존을 통해 안보 불안을 낮출 수 있었다. 경제재건이 절실한 프랑스에도 이익이었다. 모네는 로베르 슈만(쉬망) 외무장관을 움직였다. 둘은 의기투합했다.

1950년 5월9일 이 구상을 담은 슈만플랜(슈만 선언)이 등장한다. 거의 1년만인 1951년 4월18일 ECSC를 탄생시키는 조약이 체결된다. 파리조약이다. EU는 슈만플랜이 발표된 5월9일을 '유럽의 날'로 기념한다.

세월을 건너 2018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은 유럽 5개국 순방에 나서면서 영국 BBC, 프랑스 르피가로와 인터뷰했다. 두 군데서 모두 ECSC를 말했다. BBC에는 "유럽은 유럽석탄철강공동체로부터 시작해서 EU에 이르기까지 통합의 길을 걸었다"며 "앞으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구축되려면 결국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전체의 다자 평화안보체제의 구축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럽 통합의 역사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르피가로 인터뷰는 더 구체적이다. 문 대통령은 "나는 한국의 독립기념일인 8월 15일 동북아 6개국과 미국이 함께하는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어 "프랑스의 로베르 슈만 외교장관의 제안으로 시작되어 오늘의 유럽연합을 만들었던 ‘유럽석탄공동체’가 살아있는 선례"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꿈은 전쟁을 멈추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인터뷰 답변대로면 "동아시아에서 다자주의적인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다. EU의 탄생부터, 발전과정에 겪은 숱한 위기와 그걸 극복해 온 역사는 문 대통령에게 너무나 좋은 교과서이자 아이디어뱅크다. 철도공동체는 동북아판 EU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이처럼 평화를 갈구하는 덴 개인사도 한 이유다. 실향민의 아들이란 점이다. "실향과 이산은 책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삶의 일부"라고 말한다. 평화의 소중함은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냥 몸으로 안다.

슈만도 경계인이었다. 프랑스와 독일 사이 룩셈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당시 독일지역인 알자스 출신이어서 슈만도 독일인으로 자랐다. 그러나 프랑스가 알자스-로렌을 차지했다. 그는 로렌 지방을 기반으로 프랑스 국회의원이 되는 등 프랑스 정치인으로 살게 된다. 모네 역시 1, 2차 세계대전때 영국-프랑스 연합군의 군수물자 책임자로 일했다. 이런 출신과 경험은 프랑스와 독일의 반목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왜 평화와 공존이 중요한지를 절실하게 여긴 이유가 됐을 것이다.

슈만과 모네를 품었던 프랑스가 EU를 낳았다. EU는 다시 문 대통령의 동북아 평화구상을 낳았다. 대한민국은, 남한은 프랑스가 그랬던 것처럼 동북아의 평화체제를 낳을 수 있을까. 이런 배경에서 문 대통령의 파리 방문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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