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투 서밋'… 그가 처음 밟은 길만 11개

정철호 | 기사입력 2018/10/15 [10:19]

'제로 투 서밋'… 그가 처음 밟은 길만 11개

정철호 | 입력 : 2018/10/15 [10:19]

 

[개척자 김창호 대장] 김창호와 코리안웨이 원정대

다울라기리 구르자히말 남벽은 수직고가 3000m가 넘는다. 아직 단 한 번도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은 난벽(難壁)이었다. 김창호 대장은 이곳에 한국인의 힘으로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다 유영직(51) 장비담당, 이재훈(24) 식량의료담당, 임일진(49) 다큐영화 촬영감독 등 원정대원 3명과 정준모(54) 한국산악회 이사와 함께 생(生)을 마감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이 내 길"

김창호 대장이 앞서 14좌를 완등한 선배 산악인들과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면 산악계로부터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김 대장은 국내의 대표적인 '등로주의(登路主義)' 산악인이다. 이미 개척된 루트를 따라 가는 '등정(登頂)주의'와 달리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는 것에 의미를 뒀다. 김 대장은 히말라야 14좌 무산소 완등에 도전하는 과정에서도 틈틈이 사람의 발이 한 번도 닿지 않은 미답봉 (未踏峯)에 눈을 돌렸다. 파키스탄 바투라2봉(7762m·2008년), 네팔 힘중(7140m·2012년) 등은 김 대장이 세계 최초로 정상을 밟은 산이다. 그가 세계 최초로 오른 산만 3곳이고 8개의 새 루트를 개척했다.

조선일보

김창호 대장은 늘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은 산악인이자 개척자였다. 한국인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이상 14좌를 인공 산소 없이 등정했다. 그는 이번 원정에 앞서 “아무도 가본 적 없는 ‘코리안 웨이(Korean way)’를 개척하겠다”고 말했다. 김창호 대장이 지난해 11월 서울 인왕산에 오를 당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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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장은 "14좌 완등 후 어떤 길을 갈까 고민하다 아무도 닦지 않은 길을 개척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명예로운 현실에 안주했을 나이였지만, 그는 "산에 가지 않으면 진정한 산악인이라고 할 수 없다"며 도전을 택했다. 이번 등정은 그의 '코리안 웨이' 세 번째 목표였다.

◇'제로 투 서밋'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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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장은 2012년 네팔 힘중을 등정해 '산악계의 오스카'로 불리는 황금피켈상 아시아 부문상을 받았다. 지난해엔 강가푸르나 남벽 새 루트 개척으로 황금피켈상 심사위원 특별상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명예와 상업성에 눈을 돌리지 않는 순수한 산사나이였다. 2006년 가셔브룸 1봉(8068m)부터 2013년 에베레스트(8848m)까지 히말라야 8000m급 14곳을 무산소로 완등했다. 특히 에베레스트 등정때는 해발 0m인 벵골만 바닷가에서 카약을 타고 시작해 자전거로 1000여㎞를 달렸다. 그리고 베이스캠프까지 걸어서 이동한 다음 산소통 없이 정상에 올랐다. "신과 공정한 게임을 하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김 대장은 2014년 조선일보가 기획한 '원코리아 뉴라시아 자전거평화 대장정' 원정대장으로 참여했다. 독일 베를린에서 시베리아 벌판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오는 1만5000㎞의 대장정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에 일어나 미리 답사를 다녀오는 등 대원들의 안전과 루트를 책임졌다. 이인정 대한산악연맹회장은 "돌풍이 베이스캠프를 덮치는 자연재해에 당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엄홍길 대장도 "평소 안주하지 않고 도전을 실천하는 후배여서 큰 충격을 받았다"며 슬퍼했다.

◇상금·후원금 받으면 후배 원정에 쾌척

1969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난 김 대장은 서울시립대 무역학과 입학 후 우연히 산악부에 입회하며 '산사나이'가 됐다. 김 대장은 뛰어난 친화력으로 선후배 산악인의 존경을 받았다. 2011년 10월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 박영석 대장을 찾기 위해 에베레스트 도전을 늦추고 네팔행을 자원하기도 했다. 그는 받은 상금이나 후원금은 늘 후배들 원정기금으로 쾌척했다. 그는 서울시립대 산악부 4년 후배인 아내와 세 살짜리 딸(단아)을 두고 있다. 김 대장은 원정에 앞서 유라시아 원정을 함께 한 대원들과 만나 단아 사진을 보여주며 "내 가장 큰 행복이다. 돌아오면 가족 셋이 '캐나다 유콘강으로 카약 타러가자'고 약속했다"고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 그 꿈을 이룰 수 없게 됐다. 김 대장을 비롯한 원정대 시신은 14일 구조작업을 통해 수습돼 네팔 수도 카트만두의 병원에 안치됐다. 17일 한국으로 운구될 예정이다.

공의공도 정의와 평화세상을 위하여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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