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에 면죄부 안돼"… 탐정처럼 파헤치는 언론들

노종관 | 기사입력 2018/10/18 [09:33]

"사우디에 면죄부 안돼"… 탐정처럼 파헤치는 언론들

노종관 | 입력 : 2018/10/18 [09:33]

 

카슈끄지 사태 봉합 시도에 반발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의 자말 카슈끄지 암살 의혹에 대한 꼬리 자르기 시도에 대해 곳곳에서 분노와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독자적 살인범" 언급에 이어 16일(현지 시각)에도 AP통신 인터뷰에서 "브렛 캐버노 대법관 때처럼 사우디에 '유죄 추정의 원칙'을 들이대선 안 된다"고 사우디를 감쌌다. 사우디에 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국왕과 왕세자를 만난 뒤 "왕실은 아는 게 없지만 진상 규명에 협력하기로 했다"는 말만 전했다.

무함마드 빈살만(33) 왕세자는 폼페이오와 회담에 앞서 영어로 "양국은 강력하고 오래된 동맹이며 도전을 함께 헤쳐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사우디는 오래전 약속한 시리아 재건 지원금 1억달러(약 1100억원)를 이날 미 국무부 계좌로 입금했다.

미국과 사우디 정부가 이 사건을 봉합하려는 상황에서, 언론들이 나서 빈살만이 직접 배후라는 단서를 사립 탐정처럼 파헤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는 이스탄불을 휩쓸고 간 '사우디 암살팀' 15명 중 9명·11명의 신원을 각각 파악해 16일 보도했다.

보도 내용은 '암살팀 지휘부가 빈살만의 해외 순방을 수행했던 최측근 경호원과 외교관으로 구성됐고, 동행했던 부검의가 최고위층의 명령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해부학의 권위자이며, 전세기가 빈살만 소유의 기업 명의였다'는 것이다. NYT는 안면 인식 시스템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보도 사진과 소셜미디어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얼굴을 분석했고, WP는 암살팀 소속원의 여권상 출입국 기록을 확보해 빈살만의 그림자 측근임을 밝혀냈다.

미 공화당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폭스뉴스에서 "빈살만은 정신분열증에 제정신이 아니며 매우 위험한 인물"이라며 "그는 왕권에서 축출돼야 하고, 미국은 사우디를 제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여당 중진들도 "카슈끄지 살해의 배후가 사우디란 걸 의심할 여지가 없다"(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 "사우디에 미 무기 수출을 금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랜드 폴 상원의원)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사우디의 정·관계 로비·홍보를 대행해온 워싱턴의 컨설팅업체들이 계약을 파기하고 있다"면서 "빈살만은 믿고 거래하기 어려운 인물이란 인식이 퍼졌다"고 전했다.

사우디에서 23일 열릴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 포럼도 파장 위기다. HSBC·크레디트스위스·스탠다드차타드·BNP파리바 등 금융사들이 16일 글로벌 기업·언론의 FII 보이콧 행렬에 동참했다. 이 은행들은 빈살만이 이끄는 경제개혁 프로젝트의 최대 돈줄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와 김용 세계은행 총재도 참석을 취소했다. 주요 선진국 모임 G7 외무장관들은 공동성명을 내고 "표현의 자유와 언론 보호에 헌신하겠다"며 사우디에 진상 규명과 책임 추궁을 요구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7일 "빈살만 왕세자 때문에 서구의 오랜 '사우디 면죄부'가 끝날 수 있다"고 했다. 미국 등은 석유 공급과 무기 수출, 중동 정책 등에서 협조적인 사우디의 인권 문제와 이중적 행태를 눈감아줬고, 2001년 9·11 테러범과 사우디 왕실의 연계설도 덮고 지나갔다. 기저에 팽배했던 불만이 이번에 터져 나왔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슬람 세계의 중심인 사우디의 부패·폭력을 더 용인하면 미 국익에 더 큰 위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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