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순례길서 계속 "까까"를 찾는 남자, 그게 뭐냐고?
 
최윤옥   기사입력  2018/11/08 [10:56]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6)

중앙일보

나무와 꽃이 살고 사람은 그것을 기르기 위해 지은 건 아닐까 싶은 집이 많다. [사진 박재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까까, 오 까까, 까까, 까까.”



후안(Juan)은 얼핏 하비에르 바르뎀을 닮은 남자였다. 5일째 되는 날, 산타렝(Santarem)으로 향하는 길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를 처음 봤다. 배낭 속에 넣어둔 물이 끓어 넘칠 지경으로 태양이 뜨거운 날이었고 하필 그의 머리 스타일 마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살인마 안톤 시거와 비슷했다. 한적한 길에서 마주쳤을 때 공연히 등골이 오싹했는데 그는 절박한 표정으로 연신 ‘까까’를 찾는다. 내 조카가 유난히 좋아했던 우유 맛 곰돌이 까까, 달콤한 과자가 떠올랐다.

‘나도! 까까나 먹으면서 뒹굴뒹굴하고 있으면 얼마나 편해….’ 그런데 달달한 까까를 떠올리기엔 마주한 하비에르, 아니 후안의 표정이 살벌했다. “이건 길이 아니야. 안 그래? 완전히 까까라고!” 그야말로 까까둥절. ‘대체 이게 무슨 말이지?’ 했는데 까까는 그러니까 그 ‘까까’가 아니다. 내가 떠올린 아이들 과자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을 지칭하는 명사, 까까(caca)는 스페인어로 ‘똥’이다.

중앙일보

길에는 개, 말, 소 그리고 어쩌면 사피엔스가 생성했을지도 모를 배설물이 지천이다. 밟지 않으려면 공중 부양을 해야할 것만 같은 길도 걷는다. [사진 박재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발에 온통 물집이야. 나는 프랑스길, 북쪽 길, 은의 길 다 걸었다고. 이번이 네 번째 순례인데 여기서 처음으로 물집이 잡혔어.”

며칠 동안 지나온 공장지대와 갓길도 없는 자동차길, 시멘트와 커버스톤 포장도로가 걷기에는 빵점이라고, 순례길로 불릴 자격이 없다고까지 했다. 화가 난 후안의 눈이 바르뎀 스타일로 튀어나올듯 이글거렸고 갑자기 배낭을 풀어 내렸을 때, 혹시 그가 산소통이라도 꺼내는게 아닐까 걱정이었는데(‘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영화를 보지 못한 분을 위해 설명하자면 영화에서 안톤 시거라는 살인마는 총대신 산소통을 사용한다) 그는 그저 피곤했었던 게다.

생성된 지 좀 오래된, 마른 흙더미처럼 보이는 똥을 채 발견하지 못하고 그 위에 털푸덕 주저앉았다. “오, 잠깐만!” 늦었다. 말을 했다가는 그가 정말 산소통을 꺼낼지도 몰라서 나는 먼저 가겠다고 하고 평소보다 빨리 걸었다.

중앙일보

한가로이 식사를 하면서 사람을 구경하는 소들 사이를 지난다. 느긋하고 풍요로운 시골풍경이지만 거름 냄새에 숨을 참아야 한다. [사진 박재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봉 디아(Bom Dia, 안녕하세요)~ 봉 까민호(Bom Caminho, 순례길 잘 걸으세요)!”

개를 데리고 걷던 여자가 친절하게 인사를 건넸다. 포르투갈에 와서 놀란 것 중 하나는 정말 개가 많다는 사실이다. 법으로 개를 키우도록 의무화한 게 아닌지 의심했을 정도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집마다 개를, 그것도 두세 마리씩 키우는가 말이다.

지금 여자 손에 목줄을 잡힌 개는 온순해 보였지만 처음 포르투갈 마을에 들어섰을 때 혼비백산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장 담을 넘겠다고 튀어 오르며 무섭게 짖어대는 개들, 마을에 있는 개가 모두 다 숨이 넘어가도록 귀를 찢어놓을 듯 짖었다. 미용하고 주인의 품에서 애교를 부리는 반려견만 보다가 이빨 사이로 거품을 무는 개를, 그것도 바로 옆에서 목도한 순간의 공포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봉 디아~ 오브리가다(Obligada, 고맙습니다).”

두려웠던 기억을 지우며 나는 여자와 개를 향해 번갈아 미소를 건넸다. 순간 거대한 온순견은 나를 바라보면서 대범하고 시원하게 용변을 쏟아냈다. 여자는 믿음직한 견공이 새롭게 쏟아낸 까까를 침착하게 바라보면서 차분하고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내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더니 제 갈 길을 가는 것이 아닌가.

중앙일보

철 지난 해바라기 밭을 지났다.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껍질로 남아 땅으로 돌아갈 해바라기 밭이 2km 넘게 이어진다. [사진 박재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당황하는 쪽은 나였을 뿐 그에게는 단 한 순간의 망설임이나 어색함이 없었다. 당당하게 인사를 남기고 천천히 걸어가는 여자를 보면서 모든 의문이 풀렸다. 순례길에 널려있는 까까는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는구나!

포르투갈의 길에는 여러 종류의 생물이 생성한, 길에서 제법 오랜 시간을 보낸 까까와 지금처럼 새로이 보충되는 까까가 뒹굴고 있다. 후안은 순례길이 걷기 나쁘다며 불평의 은유로 ‘까까(똥) 길’이라고 했지만 포르투갈 길에는 실제로 똥이 유럽의 그 어느 길보다도 많았다.

중앙일보

집을 가꾸는 데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이는 사람들. 밖에서 집을 보고 있으면 들어와서 구경해도 좋다며 기꺼이 문을 열어주고 사진을 찍으라는 포르투갈 사람들이었다. [사진 박재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꽃 이 어쩌면 그렇게 많을까? 정말 아름다워. 걷는 게 이렇게 행복할 줄 몰랐어.”



지붕과 담장을 넘고 대문과 골목을 이어 늘어트린 모양으로 피어있는 꽃을 나도 봤다. 남루한 집, 반듯한 저택 할 것 없이 유난스레 꽃이 많았다. 그런데도 그가 꽃을 말하기 전까지 우리는 저녁을 앞에 두고 위험한 찻길과 똥을 치우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불평하고 있었다. 우리 모두 같은 길을 걸었는데 그는 똥이 아니라 꽃을 본 것이다. 그레타(Greta)만 꽃길을 걸어왔다.

순례길이 처음인 그레타에게는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차선을 따라 걸은 것은 신나는 모험이었다. 너무 위험해서 두려웠다면서도 눈을 반짝였고 한 조각 불만이 없었다. 후안이나 나처럼, 이미 한두 번 순례길을 걸었던 사람들처럼 까미노는 어째야 한다는 둥 불평하지 않았고 물집이 잡혀 아프다고 코를 찡그리면서도 그는 길을 탓하지 않았다. 길은 이미 있었고 걷기로 한 사람은 우리 자신이니까.

중앙일보

대문과 골목에 커튼처럼 드리워지도록 꽃을 가꾸는 모습이 흔하다. 바닥을 보면 똥길이고 머리 위를 보면 꽃길이다. [사진 박재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유럽 최고의 방범견이야. 이렇게 열정적으로 짖는 개들은 처음 봤어. 하하하.”

별다른 보안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동유럽 국가들이 그렇듯 포르투갈에서도 개는 지키고 보호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다정한 애완견, 반려견에 익숙한 것이야 외지인 사정일 뿐 개가 사납게 짖는다고 불평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남의 나라에 와서 자기 마음대로 걷고 있으면서 그 나라 사람들, 그들의 방식에 대해 자기들 잣대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이야말로 돼먹지 못한 일이 아닌가.

중앙일보

온실 화원처럼 보이는 집도 적지 않다. 꽃나무를 기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벽에도 나무와 꽃을 그려넣은 집이 많다. [사진 박재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포르투갈 길 걷기 첫째 주, 이 땅에서 가장 많은 것 세 가지는 개, 똥, 그리고 꽃이었다.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보이고 기억에 새겨지겠지만 집중할 것을 선택할 수는 있을 것이다. 개나 똥이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을지 모르지만 난 꽃에 집중하기로 했다. 마음에 두면 보이는 법이니까. 꽃을 마음에 품는 것 말고 꽃을 잘 볼 수 있는 방법은 없고, 꽃을 보는 것 말고 달리 꽃길을 걷는 법은 없으니까.

하늘은 슷로 돕는자를 돕는다 지성이면 감천 민심이 천심이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8/11/08 [10:56]  최종편집: ⓒ 정책평가신문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