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량·온도 등 생활 속 4개 측정 단위 기준, 확 바뀐다

이은경 | 기사입력 2018/11/16 [12:45]

질량·온도 등 생활 속 4개 측정 단위 기준, 확 바뀐다

이은경 | 입력 : 2018/11/16 [12:45]

 

사물 기준이던 기본단위

불변의 ‘상수’ 기준 재정의

㎏은 130년 만에 변화

4개 단위 재정의는 최초

130년 만에 킬로그램(㎏)에 대한 국제 표준이 새로 만들어진다. ㎏뿐만이 아니다. 전류의 기본단위인 암페어(A), 온도의 기본 단위인 켈빈(K), 물질의 양을 나타내는 기본단위인 몰(㏖)까지 총 4개의 단위가 한꺼번에 재정의 된다. 초(s)·미터(m)·칸델라(㏅)까지 포함해 현존하는 7개의 기본 측정 단위 중 4개의 정의가 한꺼번에 바뀌는 것은 역사상 처음이다.

측정 표준 분야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국제도량형총회(CGPM)는 지난 13일(현지시각)부터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제26차 CGPM을 개최하고 총회 마지막 날인 16일 밤, 킬로그램(㎏)을 비롯한 4개 기본 단위 재정의에 대한 안건을 최종 의결한다. 새 기준이 통과되면 세계측정의 날인 내년 5월 20일부터 전 세계 산업계와 학계가 전면적으로 새롭게 정의된 단위를 사용하게 될 뿐만 아니라 향후 이번 재정의로 단위가 불변으로 고정될 수 있어 의미가 크다.

현재도 잘 사용되고 있는 단위를 왜 다시 정의하려는 걸까. 이호성 한국표준과학연구원(표준연) 물리표준본부 책임연구원은 “국제단위계(SI)의 궁극적인 목표는 ‘불변의 기준’을 만드는 것”이라며 “향후 재정의될 것으로 예상하는 4개의 단위는 충분히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지금껏 불변이라고 여겨온 기준이 변했거나 모호하다는 것이다.

중앙일보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개발중인 키블 저울 - 양팔 저울 한 쪽에 1㎏ 원기를 설치하고 다른 쪽에는 자기력을 발생시키는 코일을 설치한다. 자기력이 저울을 평형상태로 바꿀 때, 코일에 흘려 보낸 전류·자기장의 세기를 측정해 소수점 아래 여덟째 자리까지 정확한 ‘플랑크 상수’를 도출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다. 그간 1㎏은 백금 90%와 이리듐 10%의 합금으로 만든 ‘국제킬로그램원기’의 질량으로 정의돼 왔다. 프랑스 파리의 국제도량형국에 보관된 쇳덩이 하나가 국제 표준으로 130년간 통용돼 온 것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은 없었다. 한 세기가 넘는 시간이 지나면서 원기의 표면에 오염물질이 축적되고 산화되는 등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를 세척하는 과정에서도 미세한 질량의 변화가 생겼다. 약 50마이크로그램(㎍), 즉 0.00005g의 오차가 발생했다.

질량의 기준인 ㎏에 오차가 생기자 탄소의 질량을 바탕으로 측정되는 몰(㏖)이 당연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암페어(A)의 정의 또한 모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1948년 당시 CGPM은 제9차 총회를 통해 “1A(암페어)는 무한히 길고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작은 원형 단면적을 가진 두 개의 평행한 직선 도체가 진공 중에서 1m 간격으로 유지될 때 두 도체 사이에 m당 1000만분의 2뉴턴(N)의 힘이 생기게 하는 일정한 전류”라고 정의내린 것이다. 무엇이 무한하고 어느 정도가 무시할 수 있을 만큼인지 주관적이고 긴 정의였다.

온도의 단위인 켈빈(K)의 정의는 다른 단위에 비해 비교적 구체적이었다. 그간 1K은 ‘기체와 액체·고체가 동시에 존재하는 물의 삼중점의 열역학적 온도의 273.16분의 1’이라고 수치로 표현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준이 ‘물’이라는 특정 물질이라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화학적으로는 같은 물이지만 구성하고 있는 원자의 질량이 서로 다른 ‘동위원소 비율’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복잡하고 각기 다른 원인을 가진 단위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CGPM은 이 문제를 ‘물리상수’로 해결하기로 했다. 각 단위를 불변의 상수로 못 박기로 한 것이다. 이 상수를 구하는 데는 그간 발달한 고도의 측정 기술이 동원됐다. 향후 ‘플랑크 상수(h)’로 재정의될 1㎏은 ‘키블 저울’이라는 장치를 통해 측정됐다.

중앙일보

1889년 만들어진 국제킬로그램원기 - 백금90%ㆍ이리듐 10% 합금으로 제작. 1889년 제1차 CGPM 승인 후 ㎏의 국제표준. 100년 동안 5마이크로그램(5x10^(-8))의 변화 발생. 표면 오염물질 축적ㆍ산화 혹은 탄화가 원인. [출처: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먼저 양팔 저울의 한쪽에 1㎏에 해당하는 원기를 올려놓는다. 저울의 한쪽이 원기로 인해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저울 반대편에 설치된 코일에 전류를 흘려보낸다. 자석 내부에 있는 코일에 전류가 흐르면 전자기력이 발생한다. 그러면 바닥 방향으로 전자기력이 작용해 저울이 다시 균형을 이룬다. 저울이 완전히 평형을 이뤘을 때 코일에 흐른 전류와 자기장의 세기를 측정하면 1㎏에 해당하는 전자기력의 수치를 도출하는 식이다.

이광철 책임연구원은 “현재까지 도출된 플랑크 상수는 소수점 아래 여덟째 자리까지”라며 “오차가 0에 가까운 1㎏의 정의를 구현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 CGPM에서 플랑크 상수를 이용한 정의가 의결되면, 향후 불변의 단위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외에도 암페어는 기본전하 e로 대체된다. 전류가 생기는 것은 근본적으로 전하를 띄는 전자가 움직이기 때문인 만큼, 1개의 전자가 가지는 전하량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관건인데 최근 ‘조셉슨 효과’ 등을 이용한 첨단 기술이 e 측정을 가능하게 했다. 전기저항이 0에 가까운 ‘초전도체’ 두 개 사이에서 일어나는 효과를 관측할 수 있게 된 것이 핵심이다. 이 외에도 켈빈은 볼츠만 상수(k)로, 몰은 아보가드로 상수(NA)로 대체된다.

변화된 단위의 기준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결론부터 말하면 정밀 측정이 필요 없는 일상생활에는 큰 영향이 없다. 이호성 책임연구원은 “CGPM은 단위 재정의로 인한 혼란을 최소화하고 일상에서 인지할만한 영향이 없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향후 초정밀 측정기술을 이용한 미래과학·산업 분야에는 영향이 있을 수 있다. 이광철 책임연구원은 “측정 단위는 모든 과학과 산업의 기본인 만큼, 향후 제약분야에서 미세 독성을 조절해 약품을 개발하는 등 미래 산업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이 D램 메모리·플래시 메모리 등 반도체 분야의 주요 수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길이 측정의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배경이 있었다. 반도체의 기본을 이루는 실리콘 기판에는 극도로 얇은 박막이 필요한데 한국의 나노미터(㎚·10억분의 1m)급 박막 두께 측정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표준연은 “단위의 새로운 정의에 따라 소수의 국가만 보유하고 있는 측정 도구를 국내에서 개발하는 연구도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길이의 기본단위인 m는 1983년 불변인 빛의 속도로 이미 재정의 돼 이번 단위 재정의 대상에서는 빠졌다.

정도를 걷는 얼론인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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