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년 기다린 ‘10초 판결’…“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국민정책평가신문 | 기사입력 2018/11/30 [09:45]

70여년 기다린 ‘10초 판결’…“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국민정책평가신문 | 입력 : 2018/11/30 [09:45]

 

강제징용·정신대 피해자 대부분 소송 기간 중에 사망

대법 “식민지배 합법이란 일본 판결, 한국 헌법 어긋나”

변호인“대법, 재판 늦어진 것에 대한 입장도 밝혔어야”

 

“20년 이상 저희를 도와주신 모든 분에게 정말로 감사합니다. 우리 힘만으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었을 겁니다. 모두 여러분 덕분입니다.”

70년이 넘는 시간 고통받았지만 재판부로부터 판결이 나오는 데는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성주씨(90)는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29일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강제노역 피해자들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최종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선고 직후 피해자들은 서울 서초동 변호사협회 회관에 모여 기자회견을 열었다. 15여명의 소송 관계자들이 나왔지만 강제노역 피해를 직접 입은 이는 김씨뿐이었다. 18년의 소송기간 피해자들이 사망하거나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오늘에야 내 뜻이 이뤄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자신이 겪은 일을 떠올리며 일본에 끌려간 시간을 ‘눈물의 세월’이라고 했다. “어린 동생을 두고 일본에 끌려갔는데 얼마 후 남동생이 죽었다는 전보를 받았다. 일본인 감독자에게 제발 집에 좀 보내달라고 했는데 나는 요건이 안돼서 못 간다고 하더라”며 “결국 일본에 계속 남아 있다가 당시 발생한 지진 때 다쳐 평생 걷지도 못하게 됐다”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로도 고통은 이어졌다. 김씨는 “남편은 (내가) 일본에 끌려갔다는 이유만으로 ‘위안부’라는 말을 하며 때렸다. 고향에 가면 ‘정신대 할머니’라고 손가락질을 받았다”며 “너무나 억울했지만 평생을 숨어 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양금덕씨(87)는 광주 북구 한 병원의 병실 벽에 설치된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대법원이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손해배상 소송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지난 19일 입원한 양씨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직접 보고 싶었지만 아직 완쾌되지 않아 병원을 나서지 못했다. 그는 “이제 좀 한이 풀렸다”면서 “최종 승소 판결이 나오면 함께해준 사람들과 손을 잡고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고 했다. TV에 함께 소송을 진행한 김씨 모습이 나오자 “(김씨가) 고생했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는 근로정신대 피해자 외에도 고 박창환씨 등 5명의 강제동원 피해자 가족이 참석했다. 2000년 부산에서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18년이 걸린 재판 동안 당사자들은 모두 사망했다. 박창환씨의 아들 박재훈씨는 “아버님이 재판을 신청하시고 2001년에 돌아가셨다. 그 이후로 17년을 아버님을 대신해 소송을 이어왔다”며 “(결과가) 기쁘기도 하고 무척 슬프기도 하다”고 말했다. 박씨는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 5명 중 단 1명이라도 생존해 이 결과를 봤으면 했는데 참담한 심정”이라고 했다.

법원이 판결 지연을 사과하지 않은 데 대한 비판도 나왔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의 이국언 대표는 “기쁜 날임에도 씁쓸한 마음이 든다”며 “재판부는 단 10초도 되지 않는 시간에 ‘(미쓰비시중공업의) 상고를 기각한다’는 한마디만 하고 나갔다. 피해자들은 이 말을 듣기 위해 20여년 동안 싸웠다”고 말했다. 이어 “90세가 넘는 김 할머니를 숨어 살게 만든 것은 일본 정부, 미쓰비시중공업, 이들을 외면한 한국 사회 공동책임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을 대리한 이상갑 변호사도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것은 법률가들이 법학을 전공하며 배우는 기본”이라며 “한국에서 소송이 제기된 날을 기준으로 18년이 넘었고 그 과정에서 원고 당사자들이 모두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는 “사법부가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역할을 못한 것”이라며 “대법원이 판결 주문과는 별도로 판결이 늦어진 것에 대한 입장을 밝혔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부는 현 미쓰비시중공업이 일제강점기 구 미쓰비시중공업을 계승했다고 판단해 불법행위의 책임이 존재한다고 봤다. 1945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때 피폭당한 박씨 등을 구호하지 않고 방치한 것도 미쓰비시중공업의 불법행위로 인정됐다. 앞서 원심은 이를 두고 “사용자로서 고용관계에 있던 자들에 대한 안전배려 의무를 방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두 사건 모두 피해자 패소로 결론낸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을 두고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가 합법이라는 규범적 인식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대한민국 헌법에 어긋나 승인하기 어렵다고 했다.

소송을 함께 도운 일본 시민단체 ‘한국 원폭피해자들을 돕는 시민모임’의 이치바 준코는 “승소하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재판에서 이겨도 또 싸워야 하는 상황”이라며 “일본 지원자들이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마음이다. 한국과 일본이 힘을 합쳐 계속 끝까지 싸워야 하니까 많이 협조해주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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