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걸린 영리병원, 외국인만 진료하는 '반쪽 허가'

권오성 | 기사입력 2018/12/06 [09:48]

16년 걸린 영리병원, 외국인만 진료하는 '반쪽 허가'

권오성 | 입력 : 2018/12/06 [09:48]

 

[제주 영리병원 첫 허용] 中 녹지그룹의 국제병원, 성형외과·피부과 등 4개과 진료

정부·여당 "더는 불허" 산업계 "병원간 경쟁, 서비스 좋아질 것"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이 내년 제주도에서 문을 연다. 2002년 김대중 정부에서 영리병원 설립을 검토한 이후 16년 만이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5일 기자회견을 열고 서귀포시 토평동에 조성된 헬스케어타운에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녹지제주유한회사)가 건립한 외국 의료기관인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허가한다고 밝혔다. 관련 법에선 진료 대상을 명시하고 있지 않지만, 녹지국제병원의 진료 대상은 '외국인 의료 관광객'으로 한정됐다. 정부와 여당이 사실상 "더 이상 영리병원 승인·허가는 없다"는 입장이라 전체 의료 서비스 산업 차원에선 '반쪽짜리' 성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제주도 "영리병원 허가는 경제 살리기"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는 투자자인 중국 녹지(綠地)그룹이 2015년 12월 정부 승인을 받은 뒤 3년 만에 이뤄진 것이다. 지난 10월 '녹지국제병원 공론화조사위'에선 녹지국제병원 개설에 반대하는 의견이 58.9%로 더 많았고 원희룡 지사도 "도민 의견을 수용하겠다"고 했다. 그러다 다시 입장을 바꾼 것이다. 경제 살리기와 관광산업 재도약, 외국 투자자에 대한 행정의 신뢰성 등을 고려했다는 것이 제주도의 설명이다.

토평동 헬스케어타운 2만8163㎡ 부지에 들어선 녹지국제병원은 이르면 내년 초 성형외과, 피부과, 가정의학과, 내과(건강검진) 등 4개과로 진료를 시작할 예정이다. 병원의 투자 금액은 778억원이다.

◇정부·여당 "영리병원 더 이상은 없다"

현행법상 영리법원은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승인·허가가 있어야 한다. 영리병원을 세울 수 있는 지역도 제주도와 경제자유구역으로 한정돼 있다. 제주도 녹지병원은 지난 정부 때인 2015년 보건복지부가 사업 계획을 승인했다. 현 정부로선 반대 입장이라도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지난해 대선 때부터 '의료 영리화 반대'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복지부는 "더 이상 국내에 영리병원을 승인해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영리병원이 생기면 재벌과 대형 병원 등의 '좋은 투자처'로 전락할 수 있다"며 "환자를 잘 치료하기보다는 고가 진료를 유도해 단기 수익을 올리는 데만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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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여당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영리병원이 많아지면 건강보험 중심의 현행 의료 체계가 흔들리고,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보건의료노조와 의사협회 등도 이 같은 논리 등으로 영리병원 설립에 반대하고 있다.

◇산업계는 "의료산업 성장 이끌 것"

반면 산업계 등에서는 "영리병원 허가가 의료산업 경쟁력을 키우고 고용 창출로 이어질 것"이라며 규제를 풀라고 주장한다. 미국, 독일, 싱가포르 등 주요국은 민간 영리병원을 허용해 의료산업 발전, 경제 활성화 등을 꾀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병원'이 가능해져 해외 환자 유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014년 "산업 발전으로 2020년 기준 62조4000억원의 생산 유발 효과와 37만4000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기존 병원들이 모두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상황에서 영리병원 몇 곳 생긴다고 건강보험 체계가 무너지고 의료비가 치솟을 것이라는 주장은 '괴담'"이라고 영리병원 찬성론자는 주장한다. 오히려 병원 간 경쟁이 의료 서비스 질 향상, 의료비 절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영리병원 설립은 환자에겐 더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고 이를 통해 첨단 의료 기기·기술의 개발 및 도입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의료 서비스 발전을 통한 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등의 효과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영리병원

기업이나 민간 투자자 자본으로 세워진 병원. 우리나라에서 병원은 의사나 정부·지방자치단체·학교법인·사회복지재단·의료법인 등 비(非)영리 기관만 세울 수 있다. 비영리병원 형태에서는 병원 수익을 외부로 가져갈 수 없고, 영리병원은 투자 지분만큼 수익금을 투자자가 가져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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