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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궁 홍씨 집안은 왜 사도세자를 버렸나
 
김석순   기사입력  2018/12/06 [09:51]

 

‘임오화변’ 뒤엔 계파싸움

혈연·지연보다 강한 계파

풍산홍씨, 권력 유지 위해

사도세자 대신 정조 선택

중앙일보

사도세자는 노론 내부의 부홍파(扶洪派)와 공홍파(攻洪派) 사이에 벌어진 권력다툼 과정에 휘말렸다. 공홍파는 사도세자를 공격해 당시 권력의 정점인 혜경궁 홍씨 집안을 끌어내리려고 했다. 영화 ‘사도’에서 영조가 사도세자의 죽음을 확인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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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는 1762년 무더운 여름날 뒤주 속에 갇혀 8일 동안 울부짖다가 사망했습니다. 임오화변(壬午禍變)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워낙 엽기적이고, 비극적이다 보니 많은 연구자의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특히 관심을 모았던 것은 사도세자 처가의 역할입니다.

장인 홍봉한이 당시 정국을 주도한 노론의 리더였는데 왜 이를 막지 못했냐는 것이죠. 심지어 홍봉한의 동생 홍인한은 반(反)사도세자 세력에 가담했고 나중엔 정조의 대리청정까지 막는 등 대척점에 서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노론인 풍산 홍씨가 당파적 이해 때문에 세자를 희생시킨 것이 아니냐는 의혹으로 이어졌습니다.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한중록(閑中錄)』에서 사도세자의 미치광이 증세를 상세하게 기록해 남편을 죽게 한 측에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혜경궁과 그의 집안은 왜 사도세자를 등지게 된 것일까요.

부홍파-공홍파 싸움에 사도세자 휘말려

중앙일보

사도세자는 노론 내부의 부홍파(扶洪派)와 공홍파(攻洪派) 사이에 벌어진 권력다툼 과정에 휘말렸다. 공홍파는 사도세자를 공격해 당시 권력의 정점인 혜경궁 홍씨 집안을 끌어내리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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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 홍씨는 노론에 속했지만 혜경궁 홍씨가 입궐하기 전까진 크게 주목받는 가문은 아니었습니다. 홍봉한은 딸이 세자빈으로 간택된 후에야 비로소 과거(문과)에 급제했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딸 덕분에 팔자가 180도 바뀝니다. 각종 요직을 거쳐 영의정까지 오르며 노론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사위(사도세자)가 죽은 뒤 이들이 더 번창한다는 사실입니다. 홍봉한은 좌의정과 영의정을, 홍봉한의 동생 홍인한은 호조참판-도승지-이조판서-우의정을 지내며 승승장구합니다. 홍봉한의 맏아들인 홍낙인도 승지-이조참판-대사헌-도승지, 둘째 아들 홍낙신과 홍낙임은 승지, 홍봉한의 사촌인 홍송한은 공조판서-형조판서, 조카인 홍낙성은 형조판서-이조판서, 조카 홍낙명은 이조참의-대사간-대사헌을 지냈습니다.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한 집안이 요직을 독점하는 현상이 벌어진 셈입니다. 그만큼 사도세자 사후 영조가 홍봉한 집안에 의존했습니다. 이런 정황은 많은 학자들에게 풍산 홍씨 가문이 임오화변 당시 사위를 보호하는 대신 당파적 이해를 택했다고 보게 만든 배경이 됐습니다.

사실 노론이 사도세자를 미워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사도세자는 노론이 만든 왕(영조)의 아들이고, 처가는 노론이었습니다. 세자가 유년시절엔 노론계 인사들이 칭찬하는 발언도 적지 않습니다. 그랬던 양측이 반목하게 된 것은 사도세자의 대리청정이 시작되면서부터입니다.

연유가 있습니다.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긴 영조 25년은 ‘토역 정국(討逆政局)’이라고 불리던 시기였습니다. 영조는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준 노론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면서도 자신을 반대했던 소론도 일부 등용하는 탕평책을 썼습니다. 노론 측으로선 부아가 치밀었겠죠. 시간이 갈수록 경종을 지지했던 ‘역적(소론)’을 토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혜경궁 홍씨 가문, 영향력 위해 사위 외면

사도세자가 정치 전면에 나선 건 바로 이런 분위기가 고조되던 시기였습니다. 학계 일각에선 영조가 골치 아픈 문제를 피하려고 세자에게 떠넘겼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혈기왕성한 사도세자는 노론 측이 내민 ‘토벌’ 요구를 일축했을 뿐 아니라 이들의 특권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소론계 인사들과 가깝게 지내며 노론을 자극했죠. 또한 소론 측의 역모 혐의가 발견된 ‘나주 벽서사건’에서는 처벌을 최대한 온건하게 이끌어 노론 측을 격분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임오화변이 노론-소론의 갈등보다는 노론 내 계파 갈등에서 더 커졌다고 보는 시각도 많아졌습니다. 사실 영조 시대에 소수 세력인 소론은 노론에게 위협도, 경쟁도 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권력을 독점한 노론 내 분열과 갈등이 더 심각했습니다.

당시 노론은 세자의 장인인 홍봉한을 따르는 부홍파(扶洪派)와 홍봉한을 공격하는 공홍파(攻洪派)로 나뉘어 다투었습니다. 공홍파 입장에선 세자와 세손을 배경으로 권력을 독점한 부홍파를 어떻게든 끌어내려야 했습니다. 따라서 세자가 폐위되면 홍봉한도 몰락할 테고, 공백 상태가 된 조정의 권력을 접수하겠다는 것이 공홍파의 계산이었죠.

이런 시각엔 임오화변의 결정타가 된 ‘나경언 고변사건’이 영향을 줬습니다. 1762년 4월 나경언이라는 인물이 사도세자의 각종 악행을 과장해 고발한 사건입니다. 격분한 영조는 “이젠 (세자에게) 남은 희망이 없다”며 사도세자에게 자결을 명했습니다. 당시부터 배후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훗날 공홍파가 사주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처럼 조선 시대 당파 안에는 계파 간 알력이 존재했고, 이런 계파 간의 대립이 때로는 당파 간의 대립보다 치열했습니다. 노론뿐 아니라 소론도 준론(峻論)-완론(緩論) 세력이 서로 반목했고 남인은 청남(淸南)-탁남(濁南), 북인은 대북(大北)-소북(小北)으로 나뉘어 권력을 잡고 난 뒤엔 반드시 처절한 내전을 벌였습니다.

조선 후기엔 당내 계파싸움이 더 치열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와 볼까요. 홍봉한과 그의 집안은 왜 임오화변(壬午禍變)을 방관했을까요. 사실 홍봉한은 “전하(영조)께서 평소에 너무 엄격하기 때문에 동궁(사도세자)이 늘 두려워하고 위축되어 제대로 말씀드리지 못한다”고 말하는 등 한때 사위를 보호하려고 나름 애를 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는 점차 악화될 뿐이었습니다. 사도세자의 돌발 행동도 분명 한몫을 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히기 몇 달 전 평양에 몰래 다녀왔는데 넉 달 후 알게 된 영조는 노발대발합니다. 영조가 사도세자의 평양행을 두고 반역을 의심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 때 사도세자는 혜경궁 홍씨에게 “이번엔 아마도 무사치 못할 듯하니… 나는 폐하고 세손(정조)은 효장세자의 양자로 삼으면 어찌할까”라며 사실상 체념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풍산 홍씨 집안은 왕의 마음이 떠난 사위를 지키며 반대파(공홍파)로부터 공격을 당하기보다는 유력 차기주자인 외손자(정조)를 보호해 정권을 재창출하고 가문의 영향력을 지키는 ‘플랜 B’를 선택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혜경궁 홍씨가 『한중록』에서 사도세자의 비극적 최후가 그의 ‘광기(狂氣)’ 때문이라고 한사코 강조한 것도 이해가 됩니다. 사도세자가 죽은 뒤 궁중엔 ‘죄인지자 불가승통(罪人之子 不可承統·죄인의 아들은 왕위 계승이 불가하다)’는 말이 떠돌았습니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를 겨냥한 정치적 마타도어였습니다. 하지만 사도세자가 그저 ‘미치광이’라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죄인의 아들은 왕이 될 수 없지만, 미치광이의 아들은 제약이 없습니다.

여당 노론, 외부 위협 아닌 내전으로 자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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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도’에서 사도세자로 연기한 배우 유아인(왼쪽)과 ‘혜경궁 김씨’ 논란으로 여당에서 탈당을 요구받은 이재명 경기지사.

 

최근 이재명 경기지사를 두고 논란이 한창입니다. 이 지사가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시각도 있고, SNS에 글을 올린 문제로 검찰 수사까지 갔어야 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또 일각에선 여권 내부의 권력 투쟁 양상으로 보기도 합니다. 공교롭게도 문 대통령과 경선에서 경쟁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이어 이재명 경기지사가 곤경에 처하게 되자 일종의 ‘음모론’이 힘을 받는 분위기입니다. 여권 내 유력 주자들이 타깃이 됐다는 의미로 ‘안(희정)·이(재명)·박(원순)·김(부겸)’이라는 조어도 만들어졌습니다. 이 지사 측이 문 대통령의 아들 준용씨의 과거 취업 의혹을 꺼내들자 논란은 더욱 가열되고 있습니다.

실제 배경이 무엇이든 이 때문에 야기되는 혼란을 놓고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국정 수행에 아주 매진해야 할 때인데 자기들끼리 이런 갈등 양상을 보이는 것은 대통령 국정 수행 동력을 떨어뜨리고 대통령 리더십에 상처를 주는 것”이라며 “수습하지 못할 경우 진짜 레임덕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참고로 집권 세력 노론을 몰락시킨 건 반대파인 남인이나 소론이 아니라 그 자신이었습다. 정조 때 노론은 벽파(壁派)와 시파(時派)가 대립하다가 순조 초반 교대로 집권하면서 숙청을 가해 양쪽 모두 궤멸됐습니다. 역사는 반복되기에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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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2/06 [09:51]  최종편집: ⓒ 정책평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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