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달려라 황금돼지야, 풍요와 다산의 새해를 열어주렴
 
최윤옥   기사입력  2019/01/01 [11:13]

 

우리 문화로 보는 2019년 기해년

구석기유적서 뼈·화석 다수 나와

예부터 신에게 올린 제물로 사용

탐욕·나태는 돼지 이미지의 일부

배변 가리고 배부르면 그만 먹어

70년대부터 삼겹살 소비량 껑충

양돈업 총생산액은 쌀보다 많아

지능지수 75~85, 개보다 똑똑해

의학·생체산업 연구 소재로 각광

중앙일보

예부터 우리 민족은 보다 풍요로운 삶을 기원 하는 마음을 돼지에 투영해 왔다. ‘동물화가’ 사 석원 작가의 ‘태양과 황금돼지’ (2018, 캔버스에 오일, 72.7X91㎝). [사진 가나아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은 돼지띠의 해다. 한국 전통문화에서 돼지는 ‘두 얼굴’로 묘사된다. 복과 재물의 대명사인 동시에 탐욕과 게으름의 상징이다. 기해년을 앞두고 지난 연말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우리 생활 문화 속 돼지의 의미를 살펴보는 학술강연회가 열렸다. 이날 ‘돼지, 복인가 아니면 게으름의 상징인가’를 주제로 발표한 김종대 중앙대 민속학과 교수는 “돼지에 대한 우리 민족의 인식은 매우 긍정적이었다”며 “역사에서 돼지는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등장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게으름과 탐욕 등 부정적인 상징은 돼지의 생태적인 모습을 읽어낸 결과”라며 “이것으로 돼지가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각인된 사실을 뒤집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왜 ‘황금돼지 해’인가=돼지는 12띠 동물 중에서 가장 끝에 있다. 12간지 중 ‘해(亥)’는 돼지를 뜻하는 것으로, 시각으로 보면 오후 9시에서 11시 사이, 방향은 북북서를 의미한다. 그런데 왜 올해를 ‘황금돼지의 해’라고 하는 것일까. 명리학에 따르면 띠 앞에 붙는 색깔에도 규칙이 있다. 한 해의 색깔은 10간(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여기서 ‘기’(己)는 누런색인 ‘황’(黃)을 상징하고 ‘해’(亥)는 돼지를 일컫는다. ‘누런 돼지’를 ‘황금돼지’로 풀이한 것은, 새해를 맞이하며 보다 풍요로운 삶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열망을 반영한 것이다.

정해년인 2007년에도 일각에서 ‘600년 만에 돌아온 황금돼지의 해’라는 얘기가 있었다. 당시 한국역술인협회 백운산 회장은 “정해(丁亥)년은 뜨거운 불을 뜻하기 때문에 누런색보다 오히려 붉은색에 가깝다”며 “밝다는 의미가 ‘황금’으로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옛 문헌에는 ‘황금돼지 해’를 별도로 기록한 대목이 없다. ‘황금돼지’는 우리 마음에 있는 셈이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제물=김종대 교수에 따르면 돼지는 사람들에게 신의 뜻을 전하는 신성한 동물이자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었다. 돼지가 한반도에 서식하기 시작한 시기는 구석기 시대로 추정되는데 현재 평남 검은모루동굴과 덕천 승리산 유적, 충북 청원 두로봉 유적 등에서 멧돼지의 뼈와 화석이 출토된 바 있다. 『삼국사기』에는 돼지를 제사에 제물로 올렸다는 기록이 나온다. 한 예로, 『삼국사기』 고구려 유리왕편에는 제물로 바치기 위해 기르던 돼지가 달아났다는 얘기가 나온다. 유리왕은 이를 현재의 도읍이 적당하지 않다는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도읍을 옮겼다. 요즘도 산신제를 열거나 무당이 굿을 할 때 통돼지나 돼지머리를 중요한 제물로 올리는 것은 이런 전통을 이은 것이다.

중앙일보

‘십이지신도’의 돼지 해신 ‘비갈라대장’. 의복이 없는 이에게 옷을 전하는 선한 신이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재물과 복의 상징=돼지는 한꺼번에 많은 새끼를 낳는 습성 때문에 다산과 풍년을 상징한다. 김 교수는 “우리 민족은 돼지를 복을 가져다주는 동물로 여겨왔다”며 “꿈에 남의 돼지를 끌고 와도 재물이 들어온다고 믿었는가 하면, 돼지를 끌어안으면 명예가 상승하는 길조로 여겼다”고 말했다. 1970년대 이발소에 많은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돼지 그림이 유난히 많았던 것도 사업이 번창하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였다. 돼지 새끼가 확 불어나듯이 재물이 빨리 불어나기를 기원한 것이다. 또 정월 첫 돼지날(亥日)에 개업하면 부자가 된다고 믿어왔다.

◆탐욕과 게으름의 이름=돼지는 탐욕과 게으름, 그리고 더러움을 대표하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돼지우리’란 말은 아주 더럽고 물건이 뒤죽박죽 뒤섞인 곳을 가리킨다. ‘돼지는 우리가 더러운 줄도 모른다’ ‘돼지는 흐린 물을 좋아한다’ 등의 속담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일에는 굼벵이요, 먹는 데는 돼지다’는 속담은 탐욕스럽고 게걸스럽게 먹는 것을 조롱할 때 쓰는 말이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나 ‘돼지발톱에 봉숭아물’이라는 속담은 격에 맞지 않는 일을 가리켜 비아냥거릴 때 쓰는 것으로, 역시 돼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같은 인식은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 S Mill, 1806~1873) 역시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고 했다.

◆고구려 ‘도시’, 고려 ‘돗’, 조선 ‘돝’=돼지는 언제부터 ‘돼지’라 불렸을까. 그 어원에 대해선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돼지 울음소리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옛날에는 돼지 울음소리를 ‘도도’ ‘돌돌’ ‘똘똘’ 등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고구려 시대에는 ‘도시’, 고려 시대에는 ‘돗’, 조선 시대에는 ‘돋’ 또는 ‘돝’이라고 했다. “멧돝 잡으려다 집돝 잃는다”는 속담처럼 본래 ‘돝(猪)’이 ‘돼지’를 이르는 말이었고, ‘돼지’는 ‘돝의 새끼’(돋-아지)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돼지’가 ‘돝’의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경남 창원에는 섬의 형태가 누운 돼지와 같다는 ‘돝섬’이 있다.

중앙일보

돼지 모양 저금통. 돼지는 재물과 복을 상징한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돼지에서 이름 딴 지명들=경기 이천시 ‘저명산’(도드람산)도 돼지에서 따온 이름이다. 병든 홀어머니를 모시던 효자가 절벽에서 약초를 뜯던 중 산돼지 울음소리를 듣고 추락사고를 면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하늘이 돼지 울음소리로 효자를 살렸다는 뜻이다. 마을 모양이 돼지머리를 닮은 이유로 돼지 관련 지명이 붙은 곳도 있다. 충남 보령시 ‘도투머리’와 충남 태안군 ‘둔두리’ 등이다. 유기윤 국토지리정보원 원장은 “오랜 세월 우리 삶과 함께해 온 돼지는 다양한 유래와 전설로 우리 국토 속 지명에 자리 잡고 있다”며 “앞으로 지명을 지속해서 발굴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해 가치 있는 문화자산으로 보존하겠다”고 말했다.

◆식탁 위의 돼지=국립축산과학원에 따르면 농경생활이 시작되면서 멧돼지를 순화시켜 가축으로 키워 오늘에 이르렀다. 돼지는 식성이나 환경에 대한 요구가 다른 동물에 비해 까다롭지 않고, 한 번에 10여 마리 이상을 낳기 때문에 인류의 정착생활에 매우 적합한 동물이었다. 제주도 터줏대감이 된 제주 흑돼지도 고구려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돼지고기가 우리 식탁에 부담 없이 오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부터다. 서민들은 돼지고기를 먹으며 단백질을 섭취하고 영양을 보충했고, 근로자들은 고된 하루를 정리하며 삼겹살과 함께 소주잔을 기울였다. 1인당 돼지고기 연간 평균 소비량은 2005년 17.8㎏에서 2010년 19.3㎏, 2015년 22.8㎏, 2017년 24.5㎏으로 계속 늘어났다. 2017년을 기준으로 1인당 연간 육류별 소비량을 보면 돼지고기 24.5㎏, 쇠고기 11.5㎏, 닭고기 13.6㎏ 등으로 단연 돼지고기가 앞선다.

◆돼지고기에 대한 오해=국립축산과학원은 황금돼지해를 맞이해 ‘돼지에 대한 진실’을 발표했다. 흔히 돼지를 멍청한 동물로 여기지만 IQ가 75~85 정도로 개보다 높다고 한다. 훈련을 통해 반려견 수준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용민 국립축산과학원 연구사는 “돼지는 충분한 사육공간이 제공되면 잠자리와 배변 공간을 구분할 정도로 청결하고 똑똑한 동물”이라며 “잡식성이지만 일정량을 섭취하면 그 이상으로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진기술연구소 양돈기술혁신센터 곽승현 팀장은 “양돈업은 농업총생산액 1위의 산업(2위 쌀)”이라며 “돼지는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의학 및 바이오산업까지 두루 활용되는 귀중한 동물 자원”이라고 했다. 특히 돼지의 장기 형태는 인간과 가장 유사해 선진 각국에서 바이오 장기 생산연구 매체로 활용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엔 동물복지 축산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동물복지는 동물도 사람처럼 고통·스트레스·슬픔 등을 느끼는 만큼 동물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곽승현 팀장은 또 “일부에선 ‘동물복지=방목’이라는 인식은 오해”라며 “방목은 동물복지 축산물 생산을 위한 하나의 형태일 뿐이다. 동물들에게 적정한 생활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악의 화신 멧돼지, 마을수호신 되다
중앙일보

표충사 대웅전 추녀마루의 저팔계 잡상.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기해년 돼지띠의 해를 맞아 기획전시실에서 ‘행복한 돼지’ 특별전을 열고 있다. 돼지 관련 유물과 사진 등 70여 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원시사회로부터 두려운 존재였던 멧돼지는 처음엔 ‘악의 화신’으로 여겨지다가 ‘마을의 수호신’으로 거듭났다. 『서유기』에 나오는 인격화된 악신 저팔계가 삼장법사를 만나 불교에 귀의해 선한 수호신이 된 것도 한 예다. 불교 약사여래신앙과 관련해 해신(亥神) 비갈라대장(毘乫羅大將)은 가난하여 의복이 없는 이에게 옷을 전하는 선한 신이다.

전시 1부에선 비갈라 대장을 비롯하여 지킴이로서의 신성한 돼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김유신(595~673)묘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십이지신상 호석 가운데 하나인 돼지신의 형상을 탁본한 ‘십이지신상 탁본’, 밀양 표충사 대웅전 추녀마루의 ‘저팔계 잡상’ 등을 볼 수 있다. 잡상은 사찰 건물에 사악한 것들을 물린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3부에선 ‘돼지저금통’‘이발소 돼지 그림’ ‘돼지저금통’ 등을 통해 다사다난했던 현대사를 반영한 돼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의 포스터도 볼 수 있다. 영화는 슈퍼돼지 옥자를 차지하려는 탐욕스러운 세상에 맞서 가족처럼 살아온 옥자를 구출하려는 미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전시는 3월 1일까지.

이밖에 경기도 이천시 ‘돼지박물관’도 돼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해주는 공간이다. 23개 나라에서 모은 다양한 돼지 소품과 작품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한 돼지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한다.

하늘은 슷로 돕는자를 돕는다 지성이면 감천 민심이 천심이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9/01/01 [11:13]  최종편집: ⓒ 정책평가신문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