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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스트하우스, 일제강점기 땐 요정이었죠
 
조현지   기사입력  2019/01/07 [14:11]

목포 구도심, 근대의 중심지로

목포역에서 항구를 향해 뻗은 영산로를 600m쯤 걸으면 큰 사거리(초원호텔 교차로)가 나오고, 거기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간판이 '창성장'이다. 일본식 이층 목조 건축물이 늘어선 노적봉 남쪽 동네에 자리 잡은 이 게스트하우스는 요즘 20대들이 물어물어 찾아오는 명소. 이끼 낀 담벼락을 따라 20~30㎝ 간격으로 심은 청죽(靑竹), 중남미에 흔한 붉은 외벽과 푸른색 페인트를 칠한 내벽까지 어느 하나 예사롭지 않은 건물이다. "일제 강점기 요정이었대요. 해방 후 줄곧 창성장이란 이름의 여관으로 있다가 20년 전부터 빈집이었죠." 거친 갯가 사내들의 숱한 야합과 음모가 벌어졌을 밀실은 깔끔한 객실 10개로 바뀌어 손님들을 맞았다.

32국을 여행했다는 디자이너 출신 주인장 이재원(46)씨는 일본식 후원과 중정을 커피가 어울리는 공간으로 꾸몄다. 자개로 장식한 객실과 화장실 손잡이, 거실 한편 낡은 브라운관 TV가 세월을 입고 이방인을 환대했다.

◇개발 비켜간 구도심이 20대 여행지로

창성장 인근, 개항기 건물들이 몰려 있는 목포 구(舊)도심으로 요즘 여행자들이 몰리고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목포 만호동·유달동 일대 11만4083㎡(약 3만4497평)를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하고, 다양한 역사문화 체험이 가능한 지역으로 개발키로 했다. 특히 KTX나 SRT를 이용하면 서울에서 2시간 만에 닿는 목포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 지역이라 찾는 이들이 부쩍 많아졌다.

조선일보

일제 강점기 요정으로 지어졌던 건물은 게스트하우스(맨 위 큰 사진)로 변신했고, 목포항을 내려다보는 높은 언덕 위에 지어진 일본 영사관은 근대역사관(가운데)으로 바뀌었다. 예술 공방으로 바뀐 번화로 상가(아래 왼쪽)와 아치형 창문과 옥탑 장식을 강조한 해안로의 한 수퍼마켓도 인기다. /목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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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고종의 칙령에 따라 개항한 목포는 부산·원산·인천에 이어 구한말 네 번째로 문을 연 항구다. 노적봉 아래 일본인 조계지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지어진 일본영사관(현 목포근대역사관 1관)이나 수탈에 앞장선 동양척식 목포지점(근대역사관 2관), 한때 갤러리로 쓰이다 지금은 버려진 목포 화신연쇄점 석조 건물, 목포문화원으로 변신한 호남은행 등은 당시 이 지역의 부(富)와 위세를 보여준다. 바깥에서 보면 비좁기 짝이 없지만 하나같이 잘 꾸며진 뒤뜰이 있고, 집집마다 수돗물이 나왔다고 한다. 문화해설사 전영자씨는 "일본인 관광객들도 깜짝 놀라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개발의 풍파를 비켜간 덕에 구도심은 많은 것이 보존될 수 있었다. 임진택 목포시청 문화예술과 계장은 "1980년대 이후 목포 동북쪽에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사람과 돈이 모두 떠난 뒤 구도심은 사실상 버려져 있었다"고 했다. 개항이 곧 수탈로 이어진 역사의 치부(恥部)를 보고 싶지 않은 무의식도 작용했으리라.

◇영화 '1987'에 나온 '연희네 슈퍼'도

구도심을 이루는 3개의 도로 중 하나가 '번화로'다. 한때 잘나갔던 건물들은 이제 시민들이 살아가는 일상 공간이 됐다. 개간사업을 펼친 일본 기업 '후쿠다(福田)농업'의 사택으로 지어진 2층 목조가옥은 문구점이 되어 코흘리개들이 찾았고, 2층 목조 강당을 가진 심상소학교(현 유달초) 복도에는 국내 유일의 남한 호랑이 박제가 포효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민족자본으로 세운 동아부인상회는 목포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나무숲'이라는 창작센터로 사용하고 있었다.

목포는 지도 한 장만 들고 나서면 하루 만에 노적봉·유달산·목포진에 이어 개항기 거리까지 돌아볼 수 있는 여행지다. 영화 '1987'을 찍은 서산동 '연희네 슈퍼'도 단골 방문지. 얼마 전 당일로 목포 여행을 다녀온 홍희남(45·서울 반포)씨는 "밀집해 있는 근대 건축물들을 돌아보면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했다"고 말했다. 목포의 근대가 새롭게 조명받으면서 작년 10월까지 목포근대역사관을 찾은 관광객은 8만9000여명으로 전년도 연간 방문객 숫자보다 1만5000명 이상 늘었다. 목포시는 지난해 근대역사관 방문객이 사상 처음으로 1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공희정씨는 "덕수궁 복원이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흥행 등 근대적 풍물을 즐기는 것이 트렌드가 된 이후 비슷비슷한 역사를 가진 여러 도시들이 자기 이야기를 찾아가고 있다"며 "기성세대에게 근대란 무겁고 슬프기만 한 역사였던 것과 달리, 젊은 세대에겐 그동안 배척되고 주목받지 못한 요소들을 새롭게 발견하는 재미가 큰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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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1/07 [14:11]  최종편집: ⓒ 정책평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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