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역의 옛 이름이 ‘제구실’?···전염병은 그래서 무섭다

최윤옥 | 기사입력 2019/02/04 [10:21]

홍역의 옛 이름이 ‘제구실’?···전염병은 그래서 무섭다

최윤옥 | 입력 : 2019/02/04 [10:21]

 어떤 감염병은 예방 백신이 있기도 하지만, 평소 위생 수칙을 잘 지키거나 발병한 후 환자 격리 등 신속한 조치를 취하는 것 외엔 달리 예방 방법이 없는 감염병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감염병의 특성 때문에 보건 당국은 감염병의 종류를 1군에서 4군까지로 나눠 각기 다르게 관리한다. 최근 한국에서 수십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홍역은 2군 법정 전염병에 해당한다. 예방접종을 통해 예방 또는 관리가 가능해, 국가예방접종사업의 대상이 되는 전염병이 2군으로 분류된다. 1군 내지 4군 전염병 외에 유행 여부의 조사를 위해 감시활동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전염병은 ‘지정전염병’으로 관리된다.

세균과 바이러스에 대한 지식이 희박했던 과거엔 현재와 같은 전염병 관리는 꿈도 꿀 수 없었다. 백신 접종 한 번으로 간단히 물리칠 수 있는 전염병도 치명적인 결과를 낳곤 했다. 어떻게 보면 전염병을 앓고, 극복하고, 새로운 전염병과 또 맞닥뜨리는 게 인류 역사의 매 페이지마다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제구실 하는 사람이란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만큼, 몇몇 전염병은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홍역을 치른다’는 표현이다. 과거 홍역은 전파성이 매우 강하고 사망률도 높았다. 백신이 개발되기 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발진 등 홍역 증상을 보이는 사람을 배에서 바다로 던지거나 마을에서 곧장 격리하는 장면을 이따금씩 만날 수 있다. 그만큼 한 공동체에서 홍역을 치른다는 것은 엄청난 위험이었다.

여기서 ‘제구실한다’는 말도 생겨났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제구실’에는 ‘어린 아이들이 으레 치르는 홍역 따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란 뜻이 있다. 어렸을 때 홍역을 한 번 앓았다 살아남아야 비로소 어른, 사람이 된다는 의미가 담겼다. 흔히 알고 있는 뜻인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나 책임’과 맥이 닿는 부분이 있다. 홍역은 어려서 한 번 앓으면 평생 면역이 생기기 때문에, 홍역을 치른 사람이 제구실을 하게 된다는 말이 틀린 건 아니다.

한 개인 뿐만 아니라 공동체에서도 홍역에 면역을 가진 사람이 많아야 홍역을 치를 가능성이 낮아진다. 백신이 상용화된 현대 사회가 ‘제구실’을 하려면 구성원들이 적시에 예방접종을 받아 집단면역을 형성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꼭 홍역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흑사병이 아직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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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르 브뤼헐이 1562년에 그린 ‘죽음의 승리’는 당시 만연했던 흑사병 때문에 벌어진 지옥 같은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유럽 인구가 많게는 50%까지 사라졌던 때가 있다. 14세기 흑사병(페스트)이 유행했을 시기다. 흑사병은 병에 걸리면 피부가 검게 썩은 채 사망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고, 정확히는 페스트균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 열성 전염병이다. 야생 설치류, 박쥐 등과의 접촉에 의해 발생하며 페스트균은 숙주 동물인 쥐에 기생하는 벼룩에 의해 사람에게 전파된다. 페스트균을 보유한 벼룩이 사람을 물면, 페스트균이 림프절이나 혈액을 통해 감염되는 식이다.

흑사병은 전염성이 아주 강하고, 림프절이 부어오르고 조직이 괴사하는 등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고부터 상당히 빠른 시간 내에 사망했다는 특징이 있다. 페스트란 뜻의 ‘plague’가 ‘역병’을 의미하는 일반적인 표현이 됐을 정도로, 흑사병은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다.

한국인 대부분은 흑사병을 세계사 교과서에서 접했을 것이다. 역사 이야기 속에서나 들어봤기 때문에, 흑사병이 완전히 퇴치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종종 나온다. 그러나 흑사병은 아직 아프리카·아시아·아메리카 등에서 발병하고 있다. 1989년부터 2003년까지 마다가스카르, 탄자니아, 콩고, 베트남, 모잠비크, 나미비아, 페루 등 25개국에서 3만8310건의 흑사병 발병건이 보고됐다. 미국에서는 1970년부터 2007년까지 주로 뉴멕시코주, 애리조나주, 콜로라도주에서 59명의 사망자를 포함한 415건이 발생했다. 중국에서도 2009년 흑사병이 돌았고, 한국인이 신혼 여행지로 찾는 셰이셸에서도 흑사병이 발병한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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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 나무. 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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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유행도 이따금씩 일어난다. 지난 2017년 마다가스카르에서 8월~10월 동안 500명이 흑사병에 걸려 54명이 숨졌다. 최근에는 마다가스카르에서 9건명 확진자가 나왔다. 2016년을 기준으로 한국을 찾은 마다가스카르 국적자는 약 3100명이었다. 마다가스카르는 1980년대 이후 매년 흑사병 발병이 보고되고 있다.

흑사병 증상을 발견하고 2일 내에 치료하면 항생제 등으로 조치가 가능하지만, 이 시기를 놓치면 치사율은 최고 60%까지 치솟는다. 흑사병은 인수공통 감염병이기 때문에 흑사병 발병 지역에선 쥐를 비롯한 설치류, 야생 동물과의 접촉을 피하는 것이 좋다. 흑사병 뿐만 아니라 해외로 출국할 때는 방문 지역의 전염병 유행 상황을 확인해보고 사전에 예방접종이나 대처 방법을 알아두는 것이 안전하다. ‘설마 이 전염병이 아직도 있겠어?’ 싶지만, 전지구적으로 완전히 퇴치된 전염병이란 의외로 드물기 때문이다.

■설 연휴 해외 방문 전, 신경써야 될 전염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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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김민 기자

 


그렇다면 이번 설 연휴에 해외로 갈 경우 각별히 주의해야 할 전염병은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홍역이다. 최근 한국에서 발병한 홍역 산발사례 대부분은 동남아 여행 이력이 확인됐다. 홍역은 지난해부터 유럽, 남미, 동남아 등지에서 유행이 지속되고 있다. 아시아에선 특히 필리핀이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 필리핀의 홍역 환자는 3058명으로, 재작년(251명) 대비 1118% 증가했다. 태국에서도 환자 총 5419이 발생했다. 말레이시아(1531명), 중국(3358명)도 재작년 대비 환자수가 줄긴 했지만 여전히 홍역 전파가 이어지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2014년~2018년 홍역환자 국내 주요 유입국은 필리핀,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몽골, 태국 등”이라고 밝힌 바 있다.

중동 지역에서도 메르스 감염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들어 1월 한 달 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메르스 환자 7명이 나왔고, 한국에서도 지난달 1일부터 23일까지 의심환자 33명이 발생했다. 이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이스라엘, 요르단 등을 방문한 이력이 있다. 이들 전부가 음성 판정을 받긴 했지만 중동 지역을 방문한 후 메르스 의심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신고해야 한다. 지난 2015년 메르스가 한국에 유입됐을 당시 초기 대응이 허술해 큰 피해를 낳았다. 당해 5월부터 11월까지 총 186명이 감염돼 이중 38명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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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관리본부 주간 감염병 동향

 


태국 등에선 뎅기열 감염도 늘고 있다. 지난달 1일부터 20일까지 태국 전역에서 총 1056명 환자가 발생했으며, 지난해에는 8만명 이상 환자가 나왔다. 뎅기열은 통상 감염된 모기에 물린 후 3-12일 안에 갑작스런 열, 두통, 근육과 관절통, 발진 등의 증상이 발생하나, 무증상인 경우도 있다. 뎅기 바이러스를 죽이거나 억제하는 치료제는 없으며, 증상을 경감해주는 치료 방법을 택하게 된다. 발생 지역에선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모기기피제를 사용하거나 긴 팔 옷을 착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하늘은 슷로 돕는자를 돕는다 지성이면 감천 민심이 천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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