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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작은 아바나, 영도를 걷다
 
서장훈   기사입력  2019/02/22 [11:44]

 국내 수리조선 1번지 깡깡이 마을

한국전쟁 피난민들이 만든 흰여울 마을

마을길 너머 진기한 바다 풍경 만나

부산 영도 서쪽 해안길 따라 도보여행



한겨레

 


부산 영도에서 2년 전 방문한 쿠바 아바나를 떠올렸다. 영도의 한 아파트 건물 외벽 벽화엔 아바나 혁명광장 내무부 건물 외벽의 체 게바라 조형물이, 50년 역사의 선박수리 공업사 안마당에선 차 주인이 ‘올드 카’를 직접 해체해 수리하는 골목 풍경이, 오래된 마을 담벼락 너머 바다 풍경에선 수십 년 낡은 건물들 사이로 보이던 아바나의 대표 명소 말레콘(방파제 겸 해안길)이 겹쳐졌다. 영도는 바다가 섬의 역사를 품고 있는 아바나를 닮았다. 지난 2월12일 부산 남쪽 영도대교 건너 영도에 갔다.

부산역에서 차로 10분이면 영도 들머리다. 들머리 바로 오른편, 버선 모양의 마을이 있다. 깡깡이예술마을(영도구 대평동 1, 2가·이하 ‘깡깡이마을’)이다. 지난 2월12일 오후 2시, 깡깡이마을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대평로에 들어서자 짠 내와 쇠 냄새가 뒤섞여 진동했다. ‘치지직’ ‘지이잉’ 선박 수리 공업사들은 용접과 그라인딩에 한창이었다. 깡깡이마을은 1970~80년대 국내 수리조선업 1번지로 불렸다. 마을 이름은 ‘깡깡’ 소리에서 왔다. 배를 수리하면서 철판을 망치로 두드려 녹과 따개비를 떼어 낼 때 나는 소리다. 그 망치질을 ‘깡깡이질’, 그 일을 하는 여성들을 ‘깡깡이 아지매’, 그리고 이 마을을 ‘깡깡이마을’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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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큰 길을 걷다 뒤돌아보면 커다란 ‘깡깡이 아지매’ 얼굴이 보인다. 약 40년 된 12층짜리 동네 아파트 한쪽 벽 전체에 그려진 벽화다. 2017년 여름, 깡깡이예술마을사업단 초청으로 방문한 독일 예술가 핸드릭 바이키르히가 그렸다. 벽화 속 인물은 멀리서 볼 땐 아련했고, 가까이서 올려다 보면 강인해 보였다. 2년 전 쿠바 아바나 혁명광장에서 본 혁명가 체 게바라의 부조 조형물이 그랬다. 위대해 보이면서도 슬픈 얼굴, 혁명가와 선박 수리 노동자의 얼굴이 겹쳐진다. 마을엔 아직 깡깡이 아지매가 있다. 기계로 작업할 수 없는 좁은 공간은 여전히 아지매 손이 필요하다.

국내 수리조선 역사를 간직한 깡깡이마을은 지난 2~3년간 예술마을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100년 역사의 옛 영도도선장(배들이 바다 건너 자갈치시장을 오가던 장소) 자리엔 ‘깡깡이 안내센터’가 들어섰다. 센터 앞 물양장(소형선박 주차장)엔 예인선 하나를 선박체험관으로 꾸며놓았다. 옛 마을회관 자리엔 마을의 역사와 깡깡이 아지매들의 삶을 소개하는 마을박물관을 만들었다. 마을 골목 곳곳에서 건물 외벽 벽화를 볼 수 있다. 마을은 지금도 수리조선 마을이다. 국내 최초 근대식 선박을 만든 옛 다나카조선소 자리에선 이날도 400톤급 원양어선으로 보이는 배 두 척을 수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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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깡깡이마을을 빠져 나와 흰여울문화마을(영도구 영선2동 15, 16통·이하 ‘흰여울마을’)로 향했다. 영화 <변호인> 촬영지로 널리 알려진 마을이다. 깡깡이마을과 흰여울마을은 폭 2m, 거리 850m 바다 산책길(갈맷길)로 이어진다. 길 바로 옆은 바다다. 삼발이 방파제(테트라포드)가 파도를 막아 준다. 남항대교 너머 지평선까지 선박 30여척이 떠 있다. 여기 선박들은 깡깡이마을 물양장에 떠 있는 작은 배들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 배들이 물, 기름, 부식, 부품, 엔지니어 등을 실어다 준다고 한다. 배들이 정박하는 바다를 ‘묘박지’라고 부르는데, 남항대교 너머 묘박지를 품고 있는 마을이 흰여울마을이다.

흰여울마을은 절벽처럼 가파른 봉래산 기슭에 집들이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다. 부산 육지에 자리 잡지 못한 한국전쟁 피난민들이 산기슭 묘지 주변으로 모여들어 마을이 생겼다. 봉래산 물줄기가 흰여울 치며 바다로 쏟아져 내린 탓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항상 물이 부족했다고 한다. 마을은 이제 흰여울마을이라고 불린다. 과거 흰여울 치던 물길은 운치 있는 좁은 골목길이 되었다. 오래된 가옥들의 슬레이트 지붕은 초록, 파란 페인트로 칠해져 있다. 파랑, 분홍, 옥색으로 외벽을 치장한 아바나의 낡은 주택들처럼 마을은 오래되서 가치 있는 장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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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30분, 평일 오후에도 흰여울길은 붐볐다. 여행객들은 길 담벼락 너머 배들이 정박한 바다를 쉼 없이 바라봤다. 흰여울길 중간 지점은 영화 <변호인> 촬영지였던 흰여울 안내소다. 이곳 창문 없는 창틀을 액자 삼아 사진을 찍으려고 여행객들이 줄을 선다. 마을 아래 바다 풍경을 넓게 조망할 수 있는 이송도 전망대와 흰여울 전망대, 흰여울길 지나가는 곳마다 쉽게 만나는 카페에도 여행객들이 붐빈다.

마을주민에게도 마을은 아름답다. 흰여울마을에 사는 진순여(65)씨는 이 마을이 “아주 귀한 동네”라고 했다. “이 마을 집들은 변함이 없는데 바다와 하늘 색은 시시각각 다르다. 요즘도 속이 답답하면 옥상에 올라 바다를 바라본다”는 거다. 해질녘 말레콘으로 나와 바닷 바람 쐬며 휴식을 취하는 아바나 시민들처럼, 여기 주민들도 흰여울길 담벼락 너머 바다를 바라보며 한숨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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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처음 터 잡은 한국전쟁 피난민들 자식 세대에겐 ‘이송도’라는 마을 이름이 익숙하다. 마을 바다 건너편 해수욕장 있는 송도가 1송도, 이곳이 2송도다. 그만큼 풍광이 아름답다는 뜻이다. 진씨는 최근 마을 경관을 해치며 공사 중인 건물들과 여행객들이 두고 간 쓰레기들을 보면 속이 답답하다고 했다.

오후 3시50분, 흰여울마을을 뒤로 하고 해안산책길을 따라 걸었다. 흰여울 해안터널을 지나 돌밭과 폭 1m 정도의 좁은 계단들이 이어진다. 길이 헷갈려 행인에게 물으니 “노래미 낚시터 가는 길은 막혀 있으니 75광장 쪽으로 가라”고 귀띔했다. 가파른 계단에 지쳐 해안가로 내려가는 지름길로 접어들었다가 길이 끊겨 다시 계단을 올랐다.

오후 4시50분, 팻말을 따라 중리해변으로 갔다. 팻말 속 말 달리는 그림이 이제야 눈에 들어 왔다. 영도의 옛 이름은 ‘절영도’. 삼국시대부터 국마장(나라가 말을 관리하던 곳)이던 이곳 말들이 하도 빨라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는 뜻(그림자가 잘린 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해방 이후 절영도를 줄여 영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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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20분, 어느덧 해는 오른쪽 귀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중리해변에서 공사 중인 해녀촌 건물 옆 산길로 들어섰다. 태종대 입구 감리해변까지 1.13㎞ 남았다. 숲길 언덕에 서서 앞 바다에 떠있는 배들을 우두커니 바라봤다. 깡깡이 마을에서 흰여울마을을 거쳐 태종대 입구까지 영도 서쪽 해안길 10㎞. 걷다보면 배들이 점점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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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깡깡이마을에서 태종대 입구까지

깡깡이마을은 부산역에서 택시로 10분, 버스를 타면 영도경찰서에 내려 10분 정도 더 걸어야 한다. 깡깡이안내센터(부산 영도구 대평북로 36)부터 거리박물관, 깡깡이 마을공작소, 깡깡이마을박물관 순으로 둘러보고 마을 입구로 나오면 된다. 여기서 흰여울마을로 가려면 빨간색 남항등대 위치를 물어 찾아야 한다. 등대 앞에 바다 옆을 걷는 ‘갈맷길’이 있다. 그 길을 가다보면 흰여울마을 아래 절영해안산책로가 보인다. 흰여울마을을 둘러보고 이 해안 길을 따라 흰여울 해안터널~75광장~중리해변~감지해변~태종대 입구 코스를 걸을 수 있다. 깡깡이마을에서 태종대 입구까지는 약 10㎞다. 대평추어탕(비빔밥·추어탕 각 7천원, 대평로 16), 흰여울마을 영선아구찜(아구찜·대구뽈찜 2만5천원부터. 절영로 224-1), 중리해변 해녀 좌판(멍게·해삼·소라 등 한 접시 3만원부터. 중리해변) 등 곳곳이 먹을 곳이다. 김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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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2/22 [11:44]  최종편집: ⓒ 정책평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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