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숭례문에 못 쓴 아교, 언제 어떻게 사라졌을까

국민정책평가신문 | 기사입력 2019/05/03 [10:49]

취재후] 숭례문에 못 쓴 아교, 언제 어떻게 사라졌을까

국민정책평가신문 | 입력 : 2019/05/03 [10:49]

 

 

 


명맥 끊긴 전통아교, 생산 방식 복원돼

 

문화재청 산하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연구진이 그동안 명맥이 끊겼던 전통 아교의 생산 방식을 복원해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아교는 소가죽을 오래 끓여 젤리 형태로 만든 천연 접착제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 등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천연 접착제입니다. 실제로 사용해본 적은 없어도 아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으실 겁니다. 사진에 있는 아교는 큰 덩어리를 작게 잘라 놓은 것으로 엿과 비슷한 모습인데, 오래 끓여 농축된 재료를 굳혀서 만드는 과정도 엿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통 복원' 숭례문 단청은 왜 갈라졌나

아교는 2013년에도 뉴스에 등장한 적이 있습니다. 불탄 숭례문을 5년 만에 복원해 공개한 것이 2013년 5월이었습니다. 그런데 채 6개월도 지나지 않아 복원된 숭례문 단청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새로 한 단청이 마치 오래된 단청처럼 갈라지고 들뜨는 '박락(剝落)' 현상이 나타난 겁니다. 당시 감사를 진행한 감사원은 숭례문 단청에 합성 접착제와 일본산 아교를 뒤섞어 사용한 것이 박락 현상의 주된 원인이라고 밝혔습니다. 목재에 물감을 칠하는 단청은 물감을 종이에 바르는 회화와 달리 물감과 접착제를 섞어서 발라야 합니다. 그런데 접착제마다 접착력이 다르다 보니 아교를 바른 부분과 합성 접착제를 바른 부분이 따로따로 벌어져 버린 겁니다. 결과적으로 아교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탓에 숭례문 단청은 공사가 끝나자마자 복원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갈라져 버렸습니다.

왜 이렇게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을까. 2008년 숭례문 방화 사건은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고 마치 대대로 물려받은 가보가 사라진 것 같은 상실감을 줬습니다. 상실감을 극복하려면 원래 모습을 되찾는 게 중요했습니다. 모두의 관심 속에 당시 문화재청은 전통 방식 그대로 원형에 가까운 숭례문을 복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복원에 쓸 모든 자재를 전통 방식으로 만들고 심지어 현장 작업자들이 한복까지 입고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전통 건축의 공법과 자재 상당 부분이 이미 현대화된 상태에서 갑자기 조선 시대 방식을 적용하겠다고 한 결과가 숭례문 단청으로 나타났습니다.

 


'본드'에 밀려 사라진 아교

1974년 문화재청의 전신인 문화관광부 문화재관리국은 '문화재수리 표준시방서'라는 것을 만듭니다. 문화재 수리에 쓸 재료와 공법을 표준화한 것인데 여기에 접착제로 사용할 수 있는 재료로 '합성수지교착재 기타'라는 항목이 들어 있습니다. 흔히 '본드'라고 부르는 합성접착제를 문화재 수리에 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현재 쓰는 '표준시방서'에는 단청작업에 아교를 쓰되 담당원의 승인을 받아 합성 접착제도 사용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아교에는 몇 가지 조건이 붙습니다. '맑고 투명한 최상품'이어야 하고 '찌꺼기가 있으면 걸러내야' 하고, '여름에는 변질되지 않도록 보관해야' 합니다. 합성 접착제에는 없는 까다로운 조건을 지켜야 하다 보니 아교는 문화재 수리 현장에서 점차 쓰이지 않게 됩니다.

대전시 무형문화재 단청장으로 이번 전통아교 생산 복원에도 참여한 김성규 장인은 "1980년대까지는 아교를 구할 수 있었는데, 1990년대부터는 아교를 파는 곳이 없어 구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1974년 표준시방서 이후, 쓰기 까다로운 아교가 외면받기 시작하면서 아교를 만들던 소규모 작업장들도 사라져 20년쯤 지나서는 아교를 만들어 파는 곳이 완전히 없어져 버린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숭례문 복원에 전통 방식을 쓴다고 선언해놓고 아교를 구하지 못하자, 당시 작업자들은 여전히 전통 아교를 만드는 일본에서 아교를 구해왔습니다. 아교는 구해왔는데 문제는 아교를 써본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1970~80년대부터 단청을 해온 장인이 아니면 아교를 처음 보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교를 써본 적도 없고 쓸 줄도 모르니, 일부에는 합성 접착제를 바르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통 아교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이번에 복원된 전통아교 생산방식은 말로 하면 아주 간단합니다. 소가죽을 오래 끓인 다음 수분을 제거하고 농축해서 식히면 끝입니다. 만들기 어렵거나 복잡해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잘 안 팔려서 만드는 곳이 없어졌을 뿐입니다. 전통문화대학교 연구진은 생산 방식만 복원한 것이 아닙니다. 연구를 주도한 정용재 교수는 "복원된 아교와 일본산 아교의 특성을 분석해 접착력과 농도 등을 계량화하고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단청 장인들이 실제 단청에 사용해 보고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2023년까지 아교와 관련된 표준시방서와 기술교범도 마련할 계획입니다. 아마 여기에는 '고품질'의 아교를 '잘 걸러서' 쓴다는 추상적인 표현이 아닌, 수치화되고 계량화된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갈 것입니다.

이 작업이 잘 끝나야 실제 문화재 복원에 아교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전히 마른 논처럼 갈라져 있는 숭례문 단청도 조금 더 옛 모습에 가깝게 수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으로 숭례문을 잃어버린 상실감에서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겠지만, 최소한 아교와 합성 접착제가 뒤섞여 엉망이 된 단청을 그대로 두는 부끄러움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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